철퍼덕철퍼덕 물에서 처녀귀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1981년 여름,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방학을 맞아 하숙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집에 내려갔다.
동네 친구들과 야영장비와 낚싯대를 자전거에 싣고 숲이 우거진 장지리 저수지로 놀러 갔다.
텐트를 쳐놓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낚싯대를 물에 드리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서울 친구들과 놀던 얘길 했고, 친구들은 전원생활을 들려주었다. 친구들은 날 부러워하는 듯했지만 난 그들이 부러웠다.
서울에선 좀처럼 타기 힘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사를 돕기 위해서라지만 여하튼 그들이 부러웠다.
피라미, 붕어, 잉어 등 세 친구가 저녁 메뉴로 매운탕을 끓이기에 충분한 물고기를 잡았다.
버너와 코펠을 꺼내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고 민물고기의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 후 라면과 함께 끓였다.
흰쌀밥과 매콤한 라면 매운탕이 준비되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데 낚싯대 하나가 심하게 흔들렸다.
달려가 보니 월척이 걸려있었다. 팔뚝만큼 커다란 잉어다. 산채로 집에 가져가서 자랑할 생각으로 망에 넣어 물에 담그고 줄을 길게 연결해 나무에 묶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린 기타를 치며 여름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날이 어두워졌다. 시골의 밤은 서울보다 빨리 찾아왔다.
우리 셋은 텐트에 나란히 누웠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이 저수지에 얽힌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밤에 가끔 처녀귀신이 나타난다고 했다.
첫사랑에게 버림받은 어느 처녀가 한적한 이곳에 와서 자살했는데, 젊은 남자들이 놀러 오면 그녀의 혼령이 출몰한다는 얘기였다.
오싹한 느낌에 무더위가 싹 날아갔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시원하게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잠이 깼다. 오줌이 마려웠다. 텐트 밖을 내다보니 아직 어둠 속이었다.
그 순간, 저수지 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철퍼덕, 철퍼덕, 철퍼덕, 철퍼덕,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머리털이 쭈뼛했다.
어젯밤에 친구가 얘기해 준 처녀귀신이 생각났다.
혈기왕성한 남자 셋이 놀러 온 걸 안 그녀가 찾아온 것이었다.
소변을 보러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자는 친구들을 깨우자니 서울남자 모양이 빠질 것 같았다.
날이 밝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철퍼덕, 철퍼덕, 철퍼덕, 그녀는 매우 규칙적인 걸음을 걷는 듯했다. 철퍼덕, 철퍼덕.
텐트를 살짝 열고 내다보니 드디어 사물의 형체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다.
날이 밝았는데, 처녀귀신이 아직 있겠나 싶어서 텐트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철퍼덕, 철퍼덕 소리가 들렸다.
용기를 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분명히 물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가까이 가보니 그녀가 아니었다. 어제 잡아 놓은 월척이었다. 망 속에 든 잉어가 철퍽 대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그날 밤의 일을 털어놓은 건 오랜 시간이 흐르고 우리 모두 어른이 된 이후였다.
고교 시절, 어느 여름밤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