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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ug 26. 2021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격리되고 불가사의한 곳 중 하나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북한에는 카리스마 권력의 독특한 마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잘 아는 매우 능란한 정치지도자가 있었다. 이 지도자는 야심 찬 정치적 목표를 향해 대중들을 동원하는 데 이러한 권력이 효율적임을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시기를 넘어서까지 그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북한 정치체제의 수수께끼는 개인숭배의 관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행의 지속성에서 비롯된다. 통념을 벗어나 세대를 초월하여 오래 지속되어온 이 카리스마 정치를 오늘날 북한의 정치용어로 표현하면 "유훈정치" 또는 "그리움의 정치"다.


근대적 국민국가주의 이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민을 통합하고 공동의 국민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인쇄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강조했다. 그래서 현대 국가사회는 같은 신문과 책을 읽는 공동체다. 혁명적 사회주의국가의 정치에 대한 연구는 노래, 연극과 영화, 군중집회와 대규모 행사, 그 외 여러 가지 유사한 사상 보급과 선전의 도구 등 대중정치의 여러 기술에까지 탐구영역을 확대하곤 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선전 양식들을 폭넓게 "혁명예술"이라 부르며 이들의 보급방식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예술사가들은 그 나라의 혁명예술이 1970년대 초 중대한 혁명을 겪었고 이 혁명이 당시에는 미래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천재성과 영도력에 힘입어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이 이끈 1970년대의 예술혁명이 나라의 초대 지도자로부터 그의 장남에게 이어진 권력세습에 필수적이었다는 것은 북한 전문가들이 널리 인정하는 사실이다.


수십 년간 북한의 예술과 정치를 빚어낸 강렬한 정치적 열망에 대해 근래의 북한 문헌은 "유훈정치" 또는 "도덕 의리의 정치"라는 관용어와 "대를 이어 (유훈에) 충성하자"라는 슬로건으로 표현한다. 이 열망은 역사적으로 지속 가능한 초월적인 카리스마 권력의 추구이고, 이는 북한의 국가 진화과정의 중심 요소다. 이러한 열망의 외골수적 추구로 공공예술과 국가정치 간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 결과는 인위적 예술정치를 통해 카리스마 권력의 자연적 도태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강력한 현대적 극장국가의 탄생이다. 북한은 "사상의 힘은 한계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 한계가 없는 사상의 힘을 실현하려는 북한의 서사적 투장과 무한한 권력을 추구한 그 오랜 투쟁이 오늘날 도저히 넘지 못할 장벽에 직면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론

제1장 대국상

  유격대 국가

  가족국가

  새로운 가족극가

  그리움의 정치

제2장 현대적 극장국가

  과시적 권력

  꽃 파는 처녀

  피바다

  전통의 재발견

제3장 총대

  선군정치이론

  총이라는 선물

  총대 철학

  총의 힘, 사랑의 힘

제4장 혁명렬사릉

  북한의 국립묘지

  혁명열사들을 위한 기념물

  만주 빨치산의 정치적 사후세계

  세습적 카리스마의 완성

제5장 지도자에게 바치는 선물

  글로벌 조선

  국제친선전람관

  제3세계의 지도자

  북한예외론

제6장 도덕경제

  도덕경제

  고난의 행군

  공존의 윤리

결론


저자 권헌익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수렵 사회 환경의 역사에 대한 현장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고, 베트남 전쟁의 추모문화에 대해 연구했고,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족적을 탐구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공동저자인 정병호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일본의 교육과 소수민족에 대한 현장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인도적 구호활동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으며,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에서 북한 기근과 피해 상황을 연구했다.


이 책은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인류학 [학살, 그 이후](원제: After the Massacre: Commemoration and Consolation in Ha My and My Lai)를 탐독한 후, 저자 권헌익에 대한 관심이 생겨 그의 저작물을 찾던 중 읽게 되었다. 권헌익은 [학살, 그 이후]로 인류학의 노벨상인 '기어츠 상'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서두에  내용은 [극장국가 북한] 서론에서 발췌했다.  책은 김정일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북한의 문화예술은 혁명예술이다.  혁명예술이 북한을 극장국가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카리스마 권력의 세습을 위한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북한과 관련된 정치와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책이다.  외에도 북한을 연구하거나 북한에 관심 있는 이들도  번쯤 펼쳐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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