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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9. 2022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1980년 5월 광주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자살 사고의 원인을 파헤쳐 보면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단기간 심각한 충격을 겪는 경험만이 아니라 장기간 반복되는 부정적 경험도 트라우마(trauma)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어디서나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몸살감기를 앓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집단도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현대 한국사에서 우리는 6·25전쟁, 4·19혁명, 유신체제, 10·26사태,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를 겪었다. 몸이 트라우마의 흔적을 기억한다. 사람의 뇌와 몸이 기억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세대가 트라우마를 기억한다. 그것은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치유해야 할 상처다. 그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이다.


그리스어로 상처인 트라우마(trauma)는 주로 정신적 외상(外傷)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트라우마는 경험했던 고통과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유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 증상이며, 당시 상황의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건 직후부터 증상이 있거나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납치·강간·폭행이나 전쟁에서 비롯된다. 특히 대인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는 심각하고 광범위한 후유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가장 흔한 후유증의 하나라고 한다.


심리치료사 재스민(Jasmin Lee Cori)이 말했다. “트라우마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우리 모두의 삶에, 그리고 온 세상에 가득하다. 사실 누구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즉, 트라우마는 우리가 외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다. 트라우마는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트라우마를 피할 수 없다면, 트라우마를 먼저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트라우마가 몸에 남긴 흔적, 몸이 기억하는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내가 피하고 싶었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1980년 5월, 친구를 찾아 나섰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주인공 동호는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으로 나와 동년배였다. 그 아이는 개인과 집단 트라우마를 남겨 준 사건의 중심부 광주에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서울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언론 매체를 통해 ‘사실’을 접했던 내게 ‘소년이 온다’는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소설은 사실보다는 사건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어서 소설가들이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믿고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작가 한강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동호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했다.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듯,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사회의 몸통에 새겨진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다. 카(Edward Hallett 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쓴 문장이 떠오른다.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며, 진보이다. 우리가 어딘가로부터 왔다는 믿음은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믿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미래의 진보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의 진보에 관한 관심도 이내 포기할 것이다.”


* [광주일보] 2022.5.9(월) 23면(오피니언)에 게재된 작가의 칼럼입니다.




위 칼럼의 글감을 더해 준 작가의 브런치글을 소개합니다. [트라우마, 몸은 기억한다 II]

https://brunch.co.kr/@yonghokye/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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