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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Oct 20. 2022

보자기

산책 길에 들른 박물관에 보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보자기를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커다란 보자기를 목에 묶고  뒤로 날개처럼 휘날리며 동네를 뛰어다녔다. 황금박~, 어디 어디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박~. 날아다니는 만화 주인공인양 보자기를 두르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가 발을 다치기도 했. 장난감이 흔치 않던  시절엔 보자기  장만으로 온종일   있었다.


인심 좋은 아저씨가 이발기로 동네 아이들의 머리를 빡빡 깎아 줄 때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곤 했다.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도 보자기로 덮여 있었고, 할머니는 지금의 가방 같은 용도로 보자기를 사용하셨다. 시골에서 자란 동년배들은 책을 보자기에 싸서 책가방 대신 책보로 메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추억을 소환해 준 보자기가 박물관에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보자기의 네 귀에는 끈이 있다. 우리 세대에서 사용해 온 끈 없는 보자기보다 훨씬 실용적으로 보였다. 언제부터 끈이 없어졌을까?



이어령의 [보자기 문명론]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가방에 붙어 다니는 동사는 넣다와 메다 뿐이지만, 보자기에는 이렇게 싸다, 메다, 가리다, 덮다, 깔다, 들다, 이다, 차다와 같이 가변적으로 복합적인 무수한 동사들이 따라다닌다." 보자기에 붙는 수많은 동사가 보자기의 여러 가지 쓰임새를 잘 설명해준다.


박물관 벽면에 적힌 보자기의 용도가 정말 다양하다. "기럭아비는 나무 기러기를 싸서 신부집으로 가고, 예물도 담아 보내고, 튼튼한 옷감에 짐을 꾸려 한양으로, 이삿짐도 보자기로 단단히 묶어 메고, 예쁘게 선물도 포장하고, 젊은이들의 가방도 되고, 서류도 보관하고, 양손 가득 선물을 싸 들고 고향으로,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 손질도 하고." 어디 이런 용도뿐이겠는가? 찾으면 찾을수록 보자기의 쓰임새가 이보다 많이 있으리라.



보자기의 유래도 알게 되었다. "보자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삼국유사] 육가야 시조 설화에 홍폭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옷감 폭 전체를 사용하여 만든 붉은색 보자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조선시대 궁중의례에 사용되는 복식과 기물을 기록한 [상방정례]와 행사별 물품 목록인 [궁중발기(궁중건기)]에서는 용례에 따라 사용된 궁 보자기의 다양한 색, 소재, 크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보자기를 표현하는 한자는 다양하다. 조선시대에는 '보(褓)'와 '복(袱)을 함께 사용했는데, 18세기까지는 보자기는 '복(袱)'을, 포대기를 의미하는 강보에는 '보(褓)'를 사용했다. 19세기 말부터는 두 글자가 혼용되다가 20세기부터 '보(褓)'와 '보자(褓子)'에 명사형 접미사인 '기'가 붙어 오늘의 '보자기'가 되었다."


보자기 전시관을 이리저리 돌고 나니, 글감이 생기고 옛 추억이 떠오른다. 보자기 덕분에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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