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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Feb 20. 2023

링반데룽

ringwanderung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환상방황(環狀彷徨)이란 등산 용어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둥글게 맴도는 일을 말한다. 자신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똑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 게 환상방황이다. 등산을 하다가 밤이 되거나 악천후로 인해 목표가 잘 보이지 않을 경우, 광대한 지형을 곧바로 오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을 그리며 같은 곳을 돌게 되는 것으로써, 짙은 안개, 눈보라, 폭우, 피로로 인한 사고력 둔화 등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등산하다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즉시 행동을 중지하고, 방향과 위치를 확인한 후 조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일이 허다하게 발생한다. 오랜 기간 동안 온 힘을 다해서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고 생각될 즈음 초심을 잃어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거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서 무너지곤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부귀영화로 온 세상에 명성이 자자했던 솔로몬 왕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라고 말했다.


30여 년 전 현역 복무 중인 석박사들을 사령부로 불러 모아 2박 3일간 현안문제에 대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계획하고 시행했었다. 당시 군대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던 용어였기에 공문에 브레인스토밍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서 계획을 세웠다. 퇴역 직전의 어느 선배가 말했다.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해서 새롭고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말하자면 난상토론(爛商討論) 하자는 얘기였군!"


20여 년 전 사단 지휘관회의에서 어느 대대장이 멘토-멘티 제도를 도입해서 부대의 악습을 타파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군대에도 "멘토링(mentoring)"을 도입한다고 하니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사단장도 흡족한 표현을 짓고 있었는데, 회의 말미에 사단 주임원사가 한마디 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멘토링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새로운 제도라기보다는 군대가 창설되던 시절부터 있던, 선임병이 후임병을 돌보는, 제도와 다를 바가 없는데 명칭만 멘토-멘티라고 바꾼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주임원사 얘기가 맞는 말이었다.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보거나 직접 경험한 일을 돌아보면 인간의 삶은 링반데룽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2주 전 Chat-GPT 강연을 들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렇게 하는 분야도 많이 있다. 과연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과 대자연의 질서를 바꿀 수 있을까? 바벨탑을 쌓다가 무너져 인류의 언어가 나뉘었듯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가 아담과 하와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杞憂)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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