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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r 09. 2023

당신은 품위 있는 사람인가요?

당신은 풍격(風格)을 갖춘 사람인가요?

얼마 전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를 봤다. 여주인공 서래(탕웨이 분)가 남편 살인혐의로 입건된 자신을 취조하면서도 친절하게 품위를 갖춰서 대해주는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 분)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해준은 서래에게 “내가 품위 있는 사람이라서 사랑한다고 했죠? 내가 품격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경찰로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한다. 서래도 품위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비록 그의 행동이 위법적이며 문화적 차이와 개인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 비난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며 해준을 위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려 한다. 해준이나 서래처럼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거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품격이 있다.


품격과 유사한 용어로 풍격(風格)이 있다. 풍격은 풍채와 품격을 의미한다. 풍채는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이라는 뜻이지만 주로 ‘풍채가 좋다, 풍채가 당당하다’ 등으로 ‘겉모습의 늠름하고 반듯한 기운’을 칭찬할 때 쓰인다. 품격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이다. 결국 풍격은 외양이나 내면의 격조를 의미한다. 풍격은 일정한 특성을 지닌 인물, 사물, 예술작품 등에서 느껴지는 특징적인 기운을 지칭하는 국문학 용어이자 미학 용어이기도 하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그곳에선 품격보다 풍격이란 단어를 더 많이 들었다고 한다. 외양과 내면을 모두 의미하는 풍격이 품격보다 격조 있고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40년도 훨씬 더 지난 소년 시절의 일화다. 어느 날 문득 품위를 갖춘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마다 “이 XX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나 자신의 품격이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 살던 당시엔 추임새처럼 욕설을 붙여야 남자다운 멋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말버릇을 고쳐야 젠틀맨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코 쉽진 않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면 철없던 시절의 다짐이 나 자신의 말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직업군인으로 정년 퇴역할 즈음엔 새로운 다짐을 했다. 나보다 계급이 낮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절친한 관계인 사람은 예외다. 자녀보다도 어린 군인들에게 존댓말을 하기가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군복을 벗고 나면 어차피 그들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습관을 들이고 나니 지금은 직장에서 학교 후배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경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고쳐야 습관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절친하다고 생각한 직장 후배에게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을 했던 것 같다. 허물없는 사이라서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던 내게 후배가 정색을 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제 나이가 오십인데 지금 저에게 그렇게 하시면 되겠습니까?” 고개를 숙이며 바로 사과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저의 일방적인 생각이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중히 사과합니다.” 그 후배가 곧바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오해를 풀라고 했지만, 여하튼 문제를 만든 건 내 탓이다.


지난해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빠가 퇴역하고 프리랜서처럼 지낼 때와 다시 정규직 부서장이 된 지금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아빠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카카오톡에서 아들을 부르는 호칭에서 직업군인 시절의 권위적 태도가 느껴졌다고 했다. 아내와 딸도 아들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직장 후배도 그런 내 모습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또 그는 내가 생각한 만큼 나와 절친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고 각방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좋지 않은 말버릇을 고치려고 애쓰던 어린 시절, 위계적 신분 질서가 있는 군대에서 자유로운 민간 사회로 삶의 터전이 바뀌던 순간에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리려고 노력했던 시간들, 재취업한 직장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주의적으로 변한 모습을 자성하는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내 나름대로 풍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시 자문해 본다.  "당신은 품위 있는 사람인가요? “당신은 풍격을 갖춘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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