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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2. 2023

기관장 직무 대행

비로소 기관장의 고충을 이해하다

2년 계약기간 만료로 지난주부터 공석이 된 기관장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다. 휴가나 개인 사유로 기관장이 1~2주 잠시 자리를 비운 경우와 달리 1~2개월 이상 될 수도 있는 인사검증 기간 동안 기관장 직무를 대리 수행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무겁게 한다. 기관장과 동일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는 만큼 중요한 결정을 하기까지는 부서장 직무만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제야 비로소 기관장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참았을까?


퇴임한 기관장이 언젠가 들려줬던 재밌는 얘기가 떠오른다. 어느 편의점에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틈만 나면 점장 험담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점장의 입장에서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일을 했다고 한다. 몇 년 후, 점장 험담만 하던 아르바이트생은 여러 편의점을 이리저리 떠돌며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점장의 입장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서 했던 아르바이트생은 편의점 점장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떠날 때를 생각하면서 내게 직무대행을 준비하라고 들려줬던 것 같다.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으로 그 소속을 서너 차례 달리하면서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기관이다. 지난 2년간 우리 기관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 시스템이 혁신적으로 개선되었다. 기관장이 떠나기 며칠 전 차담을 나누면서 "당신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사를 함께 도모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뜻을 같이 하던 기관장이 떠났다. 나도 떠나야 할 것인가? 그와 함께 도모하던 바를 이어가야 할 것인가? 연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정부 프로젝트 두 개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때까진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지 알 순 없지만 신임 기관장과 다시 합을 맞춰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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