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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ug 29. 2023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이란 상호처럼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이었다. 개업한 지 10년도 넘었다는데, 늘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집인데도 한 번도 들른 적이 없었다. 이 자리에 이런 집이 있었다는 걸 아예 몰랐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주변의 식당을 두리번거리다가 이 집 안쪽에 앉아있는 동료를 보았다. 그저 동료를 보고 들어서보니 우동집이었다. 자리에 앉았다. 먼저 온 동료들에게 뭘 주문했냐고 했더니 냉모밀을 시켰다고 한다. 우리도 같을 걸로 주세요.


허기가 느껴지던 오후 네시쯤, 지난 주말에 결혼한 동료가 인사차 떡을 돌렸다. 떡을 두 개 먹었더니 출출한 기운이 사라졌다. 저녁식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늘 함께 식사를 하는 동료가 찾아왔다. 별로 생각은 없었지만 밤늦게 까지 할 일이 있는데 끼니를 건너뛰긴 애매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위해 두리번거리다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에 우연히 들르게 된 것이었다.


먼저 온 동료들과 같을 걸로 주문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사장님, 냉모밀을 반만 주시면 안 되나요?

아니, 7천 원어치만 주실 수 있나요? 냉모밀은 9천 원이었고, 7천 원은 특근매식비 카드의 일일 한도액이다. 한 그릇을 모두 먹기는 많을 것 같아서 그냥 던진 말이었다. 가게만큼 작고 소박해 보이는 여사장님이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을 했다. 1만 4천 원은 애매하니까, 그냥 두 분께 1만 3천 원어치를 드릴게요. 사장님은 1인당 몇 개니까 몇 개를 하면 되겠다는 혼잣말을 하며 냉모밀을 준비했다.


사장님, 음악 소리가 괜찮은데요. 네, CBS 라디오 방송인데 라디오가 스피커 전문회사 000 제품이에요. 낡아 보이는 라디오의 음향이 정말 좋았다.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의 그냥 작고 소박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쌓인 피로를 풀어줬다. 한쪽 벽면에는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이라는 시가 있었다.

아마도 지나던 손님이 써붙인 듯했다.



기다리던 냉모밀이 나왔다. 1인당 모밀 세 덩이였다.

1인분은 네 덩이인데, 세 덩이씩 2인 여섯 덩이다. 모밀 추가 한 덩이 2천 원씩 두덩이 4천 원, 1인분 4 덩이에 추가 두 덩이를 주문한 셈이다. 1인분 9천 원에 추가 두덩이 4천 원 합이 1만 3천 원이었던 것이다.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의 작고 소박해 보이는 사장님의 셈이 매우 합리적이다. 게다가 냉모밀 맛도 기대 이상이다. 왠지 가끔 들르게 될 것 같다. 그냥 작고 소박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하는 그냥 작고 소박한 냉모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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