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Sep 04. 2023

팥빙수 단상

어린 시절엔 빙수 한 그릇, 아니 빙수 몇 숟가락 먹기도 쉽지 않았다. 리어카에 빙수기계를 싣고 다니는 빙수 아저씨가 기계에 그릇을 놓고 얼음을 간 다음에 단맛이 나는 빨간색이나 파란색 액체(?)를 뿌려주셨다. 아마도 식용 물감을 탄 설탕물이나 그와 비슷한 성분의 액체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빙수 한 그릇을 사면 여럿이 둘러앉아 두어 숟가락 먹는 게 고작이었다. 웹서핑으로 옛날 빙수기계를 찾아 보니 아래 사진이 나왔다. 빙수아저씨가 리어카에 싣고 다니셨던 빙수기계와 거의 흡사하다.


옛날 빙수기계@이목굿즈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빙수기계가 생겼다. 어머니께서 가정용 빙수기계로 얼음을 곱게 갈아서 팥과 유당을 적당히 넣어 만들어 주셨던 팥빙수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당시에 군것질 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더 맛있게 느꼈겠지. 요즘도 가정용 빙수기계를 판매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래 그림 같은 빙수기가 지금도 있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빙수기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옛날 가정용 빙수기계@https://m.blog.naver.com/jaspersutherland665


지난 양평 여행 때, 유명한 팥빙수 카페에 들렀다. 사장님께 팥빙수 먹으러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왔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저희 카페 손님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오셔요라고 하며 웃는다. 팥빙수 맛에 자신 있는 모양이다. 네 부부가 커피 넉 잔, 팥빙수 네 그릇을 주문했다. 팥빙수 그릇이 군함 모양이다.


커다란 군함에 얼린 우유를 갈아 빙수를 한가득 채운 다음, 팥을 잔뜩 넣고 그 위에 떡과 고명을 얹은 팥빙수 두 그릇이 먼저 나왔다. 빙수그릇이 너무 커서 얼음을 채우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다. 잠시 후에 두 그릇이 또 나왔다. 빙수와 팥을 크게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다. 앗!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팥빙수 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그래서 서울에서 양평까지 팥빙수를 먹으러 오나 보다.


양평 제로제 카페의 팥빙수


주일 예배 후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양평 팥빙수 얘길 했다. 오후에 양평까지 다녀오긴 멀고, 동네에 팥빙수 전문점이 있으니 그리 가자고들 했다. 팥빙수뿐만 아니라 각종 과일빙수까지 빙수만 판매하는 빙수전문점이었다. 그래서 카페 상호가 oo얼음인가 보다. 팥빙수가 나왔다. 그릇이 제법 큰데 팥이 조금 적었다. 다 먹고 나서 보니 팥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양평에서 먹었던 팥빙수 맛엔 미치지 못했다. 이 집은 빙수 가격도 3천 원 더 싸고, 서울이라 월세도 비싸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양평에 다녀와야겠다.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해 준 팥빙수를 찾아서.


00얼음 팥빙수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작고 소박한 우동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