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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6. 2020

반론 기술을 이용한 여론의 구조 분석

여론 조사 결과는 조작되고 왜곡될 수 있다.

문제 제기


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응답자들의 정보량이나 지식이 각각 다르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갖고 있지 못한 채 조사에 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조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두 부류가 있는데, 여론조사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부류와 여론조사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이다.


그중 하나인 베렐슨(Berelson), 캠벨(Campbell) 등 최소 주의자(minimalist)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명확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의 특징을 다음의 4가지 관점으로 요약하고 있다. ① 대중의 정치적 관심과 지식은 최소 수준이다. ② 정치 개념에 대한 이해력이 저조하다. ③ 정치적 선호가 지속적이지 못하다. ④ 정치적 태도의 일관성이 최소이다.


다른 하나인 스나이더만(Sniderman) 같은 반 최소 주의자(anti mimimalist)들은, 유권자는 자기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코 무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론을 보다 정확히 포착하고 정확한 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 응답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한 설문지를 고안하고 조사 여건을 실제 상황에 보다 근접하도록 설정한다. 즉, 여론조사를 할 때 면접원이 응답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논쟁과 토론을 하게 해서 숙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여기서는 반 최소 주의자들이 사용한 기법을 활용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통해 여론의 특성을 새롭게 파악하고 규명하였다.     





여론의 개념 재정의와 새로운 여론조사 방법론


고전적 의미의 여론은 개방된 사회 환경 속에서 숙의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사회적 의지이며, 기계적인 여론조사의 데이터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여론의 의미는 여론조사의 결과이며, 이러한 여론조사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르디외(Bourdieu)는 여론조사의 근간이 되는 대표성이 정치적인 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쟁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① 일반 대중과 정치 엘리트 간의 의식세계에는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설문과 선택지는 정치 엘리트의 언어와 관심만을 반영한다. ② 일반적 여론조사는 통계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견의 중요성이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③ 여론조사를 통해서 본 여론은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


잴러(Zaller)에 의하면, 여론조사는 여론을 잘 측정하지 못한 채 일반시민의 소리를 통계적으로 집적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르디외와 젤러의 공통적인 주장은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이 정치 엘리트에 의해 조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두 학자에 따르면, 여론조사는 일반 대중이 조사 당시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좌우되어 확고하지 않은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며,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능력의 반영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서 여론조사는 면접원과 응답자 간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하이만(Hyman)이 여론조사에 처음으로 상호작용을 도입한 이후 킨더와 샌더스(Kinder & Sanders)가 이를 응용하여 반론 기술을 개발하였다. 반론 기술의 주요 특징은 여론조사를 토론의 장으로 이용하여 정치문제를 논의하는 상호작용 과정을 재현하는 점이다. 정치 토론의 역동성은 참가자 자신이 갖고 있는 초기 의견과 정치능력, 제시된 반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자력발전과 일본인의 여론 동향


일본인의 의식 속에서 원자력발전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 경험을 가진 나라다. 28개 현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소비 에너지의 30% 이상 원자력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다. 원자력발전 기술을 수출하고 있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도 있어서 원자력발전은 일본인에게 중요한 정치적 이슈다.


일본인은 누구나 원자력발전에 대한 자기 의견을 갖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원자력발전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표면적 이유를 기본으로 한 반론을 제시한다면, 이 두 개의 반론을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견의 확신도와 원자력발전의 정보 인지, 원자력발전과 정치에 대한 관심, 정치 지식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원자력발전은 일본 정부가 국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와 의견의 확신도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위 질문으로부터 아래의 가설을 설정했다.

a) 응답자는 내용이 있는 반론과 표면적 반론을 구별할 수 있다. 즉, 내용이 있는 반론보다 표면적 반론에 직면했을 때 의견이 변화하기 더 어렵다.

b)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보 인지와 정치 지식이 높으면 의견이 변화하기 어렵다.

c) 원자력 발전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으면 의견이 변화하기 어렵다.

d)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면 의견이 변화하기 어렵다.


이 자료는 동경대학교사회심리학연구소가 실시한「행정의 신뢰와 원전 폐기물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다. 이 분석에서 주된 관심의 대상인 독립 변수가 종속 변수인 의견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는 초기 의견, 제시한 반론의 종류, 성별, 자녀 유무, 지지 정당,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보 인지, 원자력 발전과 정치에 대한 관심, 정치 지식을 변수로 하였다.


여기서 주요 관심 대상은 반론 효과 확인이다. 논거를 제시하고 반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응답자들이‘내용이 있는 반론(full argument)’과‘표면적 반론(empty argument)’에 직면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반론 후 의견의 변화 양상, 그리고 반론에 직면하여 어떤 유형의 응답자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 로지스틱 회귀분석(Logistic Regression Analysis)을 했다.


반론 후 응답자의 의견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로서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보 인지, 원자력과 정치에 대한 관심, 정치 지식, 지지 정당, 학력, 자녀의 유무, 수입을 포함시켰다.     





연구 결과


이 연구는 반론 기술을 이용하여 원자력발전에 대한 일본인의 여론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 시민의 정치 능력과 정치적 역할을 고찰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면접원이 응답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작용을 하도록 시도하였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반론 기술은 정치적 논의처럼 상호작용 과정을 살려서 응답의 추이를 비교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즉, 조사자는 응답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반론을 시키고 의견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의 결과, 의견 변화와 교육 수준, 정치 성향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최종적 의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정치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보인지, 정치 지식임이 드러났다. 이는 원자력 발전 관련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개적 논의를 통하여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소통하여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구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다수는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고, 확실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최소 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원자력 발전이라고 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일본인의 여론은 오히려 상당 부분 안정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반론에 직면해 의견을 기타로 바꾼 응답자들이 상당수이었는데, 이들의 초기 의견은 찬성하는 편, 반대하는 편으로, 본래의 자기 주장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반론에 직면해 의견을 보류하게 된 것은 원자력 발전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지 않은 채 조사에 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초기 의견이 찬성인 사람들이 반대인 사람들보다 의견의 변화가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자에게 반론으로 제시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위험성과 초기 의견 간의 교호 작용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즉, 의제 설정에 대한 연구자들이 이미 여론조사의 응답자들을 통해 공공 정책 이슈의 언론 보도의 양과 중요성과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잴러와 같은 구성주의자들은 여론조사의 응답은 설문의 프레이밍과 제시방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여론조사의 질문 항목에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낮거나, 정치에 대해 관심이 저조한 사람들에게는 필시 부합할 수 있으나, 모든 시민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를 통해 여론 조사를 공론장으로 이용하여 상호작용 과정을 재현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일반 여론조사보다 실제에 가까운 여론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론


이 연구에서는, 유권자는 한계는 있지만 자기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코 “무지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반 최소 주의자(anti minimalist) 들이 사용한 기법을 활용하여 일본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초기 의견이 반대이거나, 정치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심과 지식, 정보인지가 높을수록 의견이 변화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제시한 반론이 의견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문제에 관심이 없고 확실한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 최소 주의자(minimalist)들의 주장과는 달리, 원자력 발전이라고 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일본인의 여론이 상당 부분 일관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반론 기술을 적용하여 면접자와 응답자 간에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서 유권자는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바를 한국의 여론 조사 기관에서 도입하여 반론 기술을 이용하여 면접자와 응답자가 상호 작용할  있는 조사를 실시한다면 여론 조사의 근간인 대표성에 조금  근접하게  으로 생각한다. 또한 정부는 국가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공개적 논의를 통하여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소통하여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구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반면, 파나마의 노리에가(Noriega), 이라크의 후세인(Hussein) 제거를 위한 미국의 군사개입 사례를 제시하면서 촘스키(Chomsky)가 주장한 바와 같이, 소수 엘리트에 의해서 정보 제공 수단이 엄격히 통제되어 현실이 왜곡되고, 정부와 미디어의 조직적 선전(propaganda) 활동의 효과로 여론이 조작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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