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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6. 2020

시민의 자유와 정치 엘리트의 권한

시민이 선출한 정치 엘리트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역설 

문제의 제기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과 제1조 및 제4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 나타난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토대로 대한민국은 건국되었다. 국가 주도형 근대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근대화 과정을 비난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권력 획득과 유지를 도모하거나 국가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의도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치 엘리트는 국민의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되돌아볼 때, 정치 엘리트의 권한 행사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혼합된 정치원리로써, 국가기관으로부터 간섭을 줄여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정치원리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국가기관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기 위해 다수의 정당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정치과정에 반영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률에 근거하여 일한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행정부의 잘못된 행정작용이나 국회가 만든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한다. - 자유민주주의 부연 설명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자유와 정치 엘리트의 권한과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산업화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시민사회의 형성과 정치 엘리트,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의미를 살펴본 후에 대한민국의 건국 및 산업화 과정과 그 함의를 생각해 보자.





시민사회의 형성과 정치 엘리트, 그리고 대의민주주의


정치학적 의미에서의 시민사회는, 봉건사회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써 신분적 구분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자유·평등·독립이 보장된 사회를 의미한다. 사회복지학적으로는 근대 시민혁명을 계기로 자각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격으로서의 시민이 소유물을 교환하거나 의사를 소통하거나 하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은 자유이며, 대한민국에서는 1949년 농지개혁으로 지주와 소작농의 주종관계를 혁파한 것이 이를 위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농업 중심의 농경사회가 공업 중심의 산업화 사회로 변모되어 가면서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 문맹률 퇴치를 위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소수 특권계층의 전유물이던 학문의 기회가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었다. 의무교육으로 문맹률이 낮아짐에 따라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자기를 대표할 정치 엘리트를 선출하는 투표행위에 적극 가담하게 되면서 시민사회의 형성이 더 가속화되었다.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은 개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서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출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을 신임한다. 그들의 통치행위는, 내가 부여한 권한에 의한 것이므로, 그들이 나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대표하는 그들, 즉 정치 엘리트들이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을 원하지만, 그들의 통치행위가 내 개인적 자유를 영위하는 영역까지 침해할 정도로 강력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정치 엘리트란 정치 분야에서의 지위·지식·기능 등이 일반인보다 우월하여 독점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개별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 엘리트를 선출해 정부나 국회를 구성하여 정책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적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에게 국가에 대한 헌신이나 희생과 같은 공적 이익을 강요하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개인의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이다. 또한 정치이론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며 실천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론과 실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신분에 따른 삶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으므로 학문도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평등사회에서는 학문을 적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으므로 그만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국회의원 부연 설명 -


여기에서 첫 번째 제기한 문제였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또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 엘리트의 권한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시민사회가 형성되면 시민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로 개념이 확대되고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평등한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자신을 대표하는 정치 엘리트를 선출하고, 그에게 자신의 정치·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적 차원의 통치 권한을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한다. 정치 엘리트는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여 행정부 또는 입법부의 수장이나 구성원으로서 국가 행정을 통할하거나 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한다. 이와 같은 대의 민주주의 구조 속에서는 정치 엘리트가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확대하거나 그것의 사용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치 엘리트의 권한 확대를 위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성이 있는 행위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국가를 건설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찬반양론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과 산업화 과정그리고 그 함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건국과 동시에 조선왕조(Dynasty) 체제가 해체되면서 투표를 통한 합의의 결과로 정치조직의 최고 권력자를 세우는 공화정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한 사람으로 현실적 체험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배웠으므로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최초부터 공화정을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정신이 헌법에 반영되도록 하였다.


해방 전후의 한반도에는 훗날 북한과 종북 세력의 사상적 기반이 된 사회진화론, 정치적 낭만주의, 공산주의 등과 같은 사상이 창궐하였다. 반면, 이승만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서양 문물을 익혔으므로 이러한 부류의 사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자유민주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그의 사상은 대한민국 건국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 이승만 부연 설명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에 걸친 농업사회가 1961년에서 1987년에 걸쳐 산업사회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 같은 산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사회 형성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한, 정치 엘리트 이승만의 노력한 결실이다. 그는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와 소작농과의 주종관계가 사라진 평등 사회를 구축하였다. 교육 기회균등 사상에 입각한 의무교육과 같은 교육개혁을 통해 문맹률을 줄였고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시민권인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또 합법적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근대국가 형성의 기초를 다지기 위하여 경찰력을 구축했고, 산업화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6억 불 규모의 대일 배상권을 청구하는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1973년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군사비 충당이 가능해졌다.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시절의 대한민국 회계연도는 6월 1일 시작되었다. 미국의 원조액이 결정된 이후 국가의 예산 편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 산업화 혁명 부연 설명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권리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상호 간의 계약에 의해서 회사·학교 등과 같은 조직사회에서의 상하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계약에 의한 것일 뿐 사적 영역에서는 대등한 관계를 의미한다. - 평등 사회 구축 부연 설명


의무교육으로 13세 이상 문맹률이 1945년 80%에서 1959년 15~20%로 낮아졌고, 초등학교 취학률은 1946년 53.4%에서 1958년 95.2%로 증가하였다. 또 1948~1960년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률이 4배 이상 증가했고, 대학교는 19개에서 68개로 급증하였다. - 의무교육 부연 설명


국가의 내우외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당화된 폭력이 필요하다. 내우에 대비하기 위한 경찰력과 외환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력은 근대국가 형성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건국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당성을 가진 폭력이 필요하였으나, 당시에는 군대도 없고 경찰도 없었으므로 일제 강점기의 총독부 경찰 출신을 사용하여 경찰을 조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추후 이승만이 친일파였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 합법적 폭력 독점 부연 설명


근대국가 역할을 위한 기반 확립 차원에서 산업화를 위해 외자 도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추후 이승만이 제국주의의 매판자본을 도입해서 미국의 종속 국가로 만들었다는 이념 투쟁의 발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외교적 수완으로 도입된 6억 불이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을 위한 기초 자본으로 사용되었다. 종속이론은 미국과 남미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그 타당성이 인정되지만, 유럽 등 여타 국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므로 일반화될 수 있는 이론은 아니다. - 외교력 발휘 부연 설명


이와 같이 건국과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 엘리트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반공주의 사상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하였으며, 토지개혁과 교육개혁 등을 통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산업화의 기반을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건국은 힘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여러 사람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적 기초 하에 공화정이 수립되도록 하였던 것처럼 건국을 주도했던 정치 엘리트 한 사람의 사상적 기반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일본·싱가포르·대만 등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의 사례를 살펴보면, 국민적 합의를 통한 정책결정 같은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쳐서 경제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 또는 특정 정치 엘리트의 주도 하에 개발이 계획되고 집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제 개발의 연속성 보장을 위해 정치 엘리트의 권한은 강화되고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기도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기 위하여 정치 엘리트를 선출하여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대리인인 정치 엘리트는 자신의 권한 확장을 위해 시민의 자유 영역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 엘리트의 모든 행위는 시민이 부여한 권한에 의한 것이므로, 그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를 할지라도 이것은 시민에게 복종하는 행위의 표출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즉, 시민은 국가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자유의사로 선출하여 권한을 위임한 정치 엘리트에 의해서 시민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도 있다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글은 정치 엘리트인 이승만, 박정희 개인의 업적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어떤 행위를 했는가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당시 선거 방법이 어찌되었든, 시민의 투표에 의해 그들이 정치 엘리트가 되었다는 전제 하에, 시민이 선출한 대리인에 의해 시민의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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