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잎새 병상일지 22일 차

(휠체어에 앉혀 머리를 감기다)

by Yong Ho Lee

제22일 차 : 2016년 10월 09일 (일요일)

정막이 감도는 집안.

마누라 없는 쓸쓸함은 싸늘한 아침 공기처럼 내 마음을 심연 속으로 가라앉히고 있다.

새벽녘 거실에 앉아 아침을 기다린다.

순간 10층 아파트 베란다에 아기 햇살이 드리웠다.

지금 이 시각 나의 산우들은 설악산 신선봉아래 헬기장에서 일출을 맞고 있을 것이다.

어제저녁 겨우 달려 왈~!

"형~!"

"여기 설악산 신선봉 도착했는데 풍경 죽인다 죽여~!"

순간 나는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던 바람소리 마저 황홀했었다.

겨우 달려 그 못된 놈의 염장질에 난도당한 쓰린 가슴으로 맞은 일요일 아침

나 홀로 베란다에서 일출을 보며 나는 애써 부러움과 시샘을 달래 본다.

거기나 여기나 똑같지 뭐~!!!

아마 거긴 운무에 일출도 없었을꼬얌~!

좋았음 겨우가 또 사진까지 보내며 염장된 가슴에 확인 사살용 소금을 뿌렸겠지?

ㅋㅋㅋ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일출장면)



초간단으로 아침식사 후

마누라님 곁으로 향하던 나의 걸음을 KBS 명산 TV 화면이 붙잡았다.

빨려 들어만 갈 것 같던 나의 혼을 순간 핸드폰이 깨운다.

아이 깜작이야~!!!!!

이른 시각의 전화는 혹시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란 우려에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행히 밝은 목소리의 초록잎새다.

어젯밤 추워서 그러니 담요 한 장과 머리를 감게 드라이를 챙겨 오란다.


입원실.

휠체어에 앉히고 간병인과 힘을 합쳐 머리를 감겼다.

전보다 덜 하지만 역시 머리숱이 많이 빠진다.

이걸 어쩌나~!!!!

머릿결도 푸석하여 수세미를 만지는 느낌이라 안쓰럽다.

그래도...

씻겨 놓고 나자 내 여자는 한인물 난다.

그런데 초록잎새가 머리를 감고 나자마자 어지러움을 호소하여 침대에 뉘이자 금방 잠이 든다.

그렇게 강철 체력였던 여인이 저렇게 바닥을 보일 정도로 추락이라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점심식사 시간.

이쁘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제제와 빗소리님이 찾아왔다.

왜 이런 큰일을 당했으면서 알리지 않았냐는 원망을 듣는다.

그런 마음만으로도 우린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제제 & 빗소리님 고마우이~!

식사 시간이라 길게 머물지 못하고 제제 부부가 물러간 이후

오후에 잠깐 휠체어에 올라탄 초록잎새를 데리고 병원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1층 로비의 화원에서 화사한 꽃들과 싱싱한 관엽식물도 보고

따스한 창가에 햇살을 받기도 하다 밖으로 나가보려니 바람이 차갑다.

아직은 신체적으로 약한 몸이고 곧 또다시 담낭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몸이라 포기를 시켰다.

혹여 감기라도 들면 완전 낭패이기에...

잠깐의 산책도 아직은 힘이 드는 초록잎새라 얼른 병실에 뉘어놓자 또 잠이 든다.

식사 후라 나 역시 닭병이 들어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잠깐 쪽잠을 자다

병실로 들어오는 순간에 왕만두를 한 아름 들고 찾아오던 아래층 이숙자 님을 만났다.

우리 승순이 못 보면 일이 안 잡힌다는 이웃집 아줌마 덕분에 병실의

모든 사람들이 왕만두 한 개씩 맛보았다.


이후...

지루하게 흘러가던 시간을 처고모와 조카 지영이가 찾아와 무료함을 잊었다.

고모님은 처 작은 엄마에게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셨단다.

다행히 초록잎새가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 안심을 하시는 듯하는데

그래도 안타까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신다.

나이답지 않게 정말 순수하시고 때 묻지 않은 고모님이라

우리 마누라님이 제일 좋아하는 고모님은 다음에 또 오마 하시며 저녁 무렵 돌아가셨다.


저녁 식사 전...

인턴이 찾아와 팔목 수술부위와 함께 골반을 고정하기 위해

쇠꼬챙이를 박아놓은 곳을 소독 후 드레싱 하는 것으로 오늘의 치료는 끝이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도심은 어둠을 밝히는 조명들로 휘황찬란하다.

벌써 해가 이렇게 짧아졌나?

밤이 너무 길다는 초록잎새의 하소연에 쉽사리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 나를 마눌님이 내친다.

"이제 그만 돌아가서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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