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네 가족의 무료 임대주택
어린 시절 나의 집은 시골 공소였다. 천주교회에서 공소라는 단어는 신부와 수녀가 상주하지 않은 시골의 작은 성당을 의미한다.
한 울타리 안에 공소와 우리 집이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공소의 관리자였다. 주말에 미사 드리러 사람들이 오기 전에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소를 청소하셨고 아빠는 회색 그레이스 봉고차를 끌고 성당 사람들을 데리러 갔고 예배 후에는 집에 데려다주셨다. 친절하며 싹싹하고 봉사정신 투철한 하느님의 심부름꾼의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그런 아빠를 따라 빛바랜 그레이스 봉고차에 타서 드라이브를 하며 그 작은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곤 했다. 아빠는 요셉, 엄마는 마리아, 오빠는 사무엘, 나는 엘리사벳이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세례명도 갖고 있었고 교리 공부도 했다. 하얀 미사포를 쓰고 두 손 모아 미사를 드렸던 엄마의 모습, 가늘고 높은 음조로 성가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평화로운 장면들이었다. 누가 종교를 물을 때마다 천주교라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는 성당이 우리 가족의 큰 믿음이 깃든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청소를 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뒷정리를 하는 엄마에게는 그 일요일이 지긋지긋한 일주일의 하루였다. 쉬고 싶어도 사람들을 맞이하러 가야 했으며 신을 믿지 않아도 경건하게 미사를 지내야 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해야 했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그 공소에서 두 분이 열심히 타인들의 종교활동을 도운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무료 임대 주택에 대한 대가였다.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성당에서 채 5m도 떨어지지 않은 방 2개의 아담한 집. 하느님을 모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늘 종교생활을 헌신적으로 돕는 엄마였지만 엄마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 경건한 성당 옆에 살던 우리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의 싸움이 일어났다. 부부싸움이 시작되기만 하면 엄마는 아빠한테 죽도록 맞았다. 팔이 부러져 읍내 정형외과에 가야 했고, 온몸에 피멍이 들은 적도 많다.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두껍고 힘줄이 솟은 팔로 아빠는 엄마의 머리채를 붙잡아 넣었다 뺐다 하며 물고문도 했다. 아빠는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툭하면 집어던지고 깨부수었다. 폭풍 같은 싸움이 지나고 나면 나는 깨져버린 그릇들과 부서진 물건들 사이에서 널브러져 있는 이쑤시개를 골라 잡아 통 안에 다시 넣곤 했다. 이쑤시개는 왜 그렇게 많던지, 왜 그렇게 작던지, 매번 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았었다. 깨진 그릇과 물건들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치우면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우리 가족관계도 제대로 찾아가는구나 싶었다. 아니다 그렇게 여겼다기보다는 그렇게 바랬던 것 같다.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기를, 엄마의 고통이 마지막이기를,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사과와 미안함이 진심이기를 말이다.
오빠와 나의 몸집이 커가면서 우리도 맞기 시작했다. 그나마 딸인 나는 오빠에 비해 덜 맞았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시작되면 오빠와 내가 막고는 했는데 그때 개같이 맞고 벌벌 떨던 오빠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자꾸 아빠의 폭력에 방해가 되자 우리를 방에 넣고 가둔 적도 있는데, 내복만 입고 높은 창문을 너머 옆집에 도움을 청하러 가던 오빠의 모습은 사진처럼 선명히 기억난다. 그 높은 창문을 넘어 오빠가 발을 디딘 곳은 그 먼 옛날 쓰던 커다란 LPG 회색 가스통이었다. 그 회색 가스통을 밟고 낙엽이 떨어져 있는 땅을 밟고 오빠는 또 다른 공소에 딸린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울며 또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가 엄마를 또 때려요." 수 없이 반복된 오빠의 절규와 부탁 속에 진심으로 도와주려던 그 노부부는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었다. 내복 차림의 열 살도 되지 않은 그 어린 시절의 나의 오빠는 마음이 얼마나 시렸을까.
그런 부모님의 싸움 속의 대화에는 공소에 대한 말도 들렸다. 엄마는 지긋지긋한 성당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청소도, 사람들도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종교의 경건함, 안정감, 평화로움보다는 아빠의 폭력과 엄마의 울음과 상처들로 가득했던 공소에 딸린 우리 집. 한없이 나약했지만 보호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오빠와 나. 엄마가 정말 우리를 버리고 갈까 두려워 끈으로 엄마와 내 손을 묵고 잤던 여러 밤들. 아름답지 못한 아빠의 추악함만 가득한 어린 시절의 집. 그 집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떠났다. 식당에서 번 엄마의 돈으로 2천만원의 읍내 2층짜리 연립으로.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위해 기도하고, 죄를 씻기 위해 고백성사를 하고, 하느님과 마리아의 조각상들이 가득했던 그 경건한 성당 옆에서 왜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야 했고, 악마와 함께 했어야 했던 걸까. 그 지긋지긋한 잡일과 성당에서 벗어났어도 왜 우리 엄마는 평생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
성인이 된 엘리사벳의 나는 종교가 없다. 나는 무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