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이 가장 휴먼적이다
삼양초등학교에서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바로 앤트러사이트 한림점.
택시기사님과 함께 1시간 가량을 대화를 나누며 들어왔다. 육지사람 같지 않았다는 이야기부터, 사투리 경연대회이야기. 혹시 선생님이세요? 라고 내 직업을 단번에 맞추시면서 자신은 촉이 좋다는 말씀. 나와 헤어진 그남자는 아마도 평생 땅을 치고 후회할꺼라는 위로의 이야기. 어딜가서든 사랑받을 것 같다고 걱정말라는 이야기, 딸아이의 취업걱정이야기까지. 기사님께서 마지막엔 오는동안 즐거웠다고 말씀해주시니 초딩친구와 기사님까지 괜시리 더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러다 이 카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폐공장을 개간했다는 건 알았는데, 이곳은 전분공장이였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나 감자가 많이 나서 전분으로 만들어 판매했나보다. 제주에서 서울 한남동까지 이어져있던 앤트러사이트. 엄청 기대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던 곳이다.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자 공간에 압도당했다. 압도당했다라는 말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런 자연스러운 곳이 있을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간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녔더니 제주에 있는 친구들이 연락을 준다. 혼자있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 이곳을 알려줬더니 나보다 더 빨리 도착한 친구가 있었다. 바로 감성깡패라는 네이밍을 지닌 기철. 크크 역시 내가 추천한 곳은 너의 취향저격공간이지?
도착하자마자 기철의 친척누나들에게 인사를 하니, 누나들이 사진을 찍어드리라고 한다.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신이났다. 내가 혼자 이곳에 갔으면 셀카만 있었을 텐데 말이다. 기철이 감사하게도 순간순간들을 남겨주었다. 그렇다. 내가 본능적으로 솟아났었던 욕망을 모든 이들이 느끼고 있던 것이다. 조화롭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공간을 모두 탐내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셔터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곳의 공간력은 어디서 나오고 있을까?
불현듯 작년 2015년 5월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난 2달간의 안식달을 보내고 인큐로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돌아가기 전 소정쌤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인큐로 돌아와서 무엇을 할 것이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의 답은 이랬다.
<인큐에 사람이 모이게 만들고 싶어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이 욕망에 의해 예술경험시장 을 만들었었다. 지금은 수요독서포럼이 지금 내가 꿈꾸는 모습 중 하나이다. 그 핵심엔 바로 편안함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괜찮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존재들의 모임들. 무엇을 표현하던지 자유로운 그런상태.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간이 되는 수요독서포럼. 이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인것이다.
공간이 예쁘니 그냥 찍어도 조화롭다. 돌, 나무, 잎사귀, 햇빛,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뒤섞여 하나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과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있는 상태. 편안함을 준다.
난 사람 을 좋아한다. 중시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인문학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것이다. 직접보니 알겠다. 이 카페에는 사람이 깃들여있다. 그래서 편안하다. 이 단순한 감각은 너무나 중요하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물리적인 장소에 사람을 모으려면 인터넷상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람이나 빛같은 자연이다. 우리는 이런 자연이 공존된 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곳은 충분했다.
이 공간의 한켠에는 책장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또 한켠에는 책이 팔리고 있는 가판대(?) 가 놓여져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물어보았다. (궁금한건 물어봐야한다! 하하)
" 이 책은 뭐에요? "
" 판매하는 겁니다. 현금으로만 구입이 가능해요.
저희가 그냥 정가에 사와서 파는거라서요."
"아 어떻게 셀랙 되어진 책이에요?"
" 저희의 취향에 맞춰서 선택됐어요."
아, 여기서 머리를 띵 맞았다. 이거였다. 이 공간의 힘. 취향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마감시간으로 분주해보이셔서 질문은 멈추었다.
쪽 훑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건축에 관한 고찰과 공동체적 주거, 집에 관련된 책들이 한가득 모여있다. 이것이 이분들의 취향인가보다. 동시에 충동 구매의 욕구가 샘솟는 순간이였다. 요즘 가장 알고싶은 관심분야에 대한 키워드가 제목으로 제시되어 있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다 한번 더 물어보게되었다. "혹시 이 책 뜯어서 볼 수 있어요?" 안된다고 하셨다. 그대신 책장에 샘플이 있을꺼라고 찾아보라고 하셨는데. 불행이도 내가 궁금하고 찾는 책은 없었다. "아 없네요. 분실됬나보네요." (방문자분들 훔쳐가지마세요 ㅠㅠ) 그래서 한번 더 여쭤보았다. "그럼 추천해주실 만한 책 있어요?" 그 이야기에 " 소설류도 있어요. 나쓰메 소세키 좋아하세요?" 사실 난 잘 모르는 소설가였다. "이 시리즈들 다 괜찮아요.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라는 책도 재밌구요. 음 이건 새 책이 없네. 책장에는 있을꺼에요" , "감사합니다"
귀여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어렸을때 비슷한 제목의 만화책을 본것만 같은데 그건 가물가물하다. 어떤 책일까. 너무 두꺼워서 읽지는 못하겠고 (오후 7시, 마감 5분전 시간 이였다.) 눈을 꾹 감고 나의 운명의 페이지야 나와라! 했더니 이 페이지가 나왔다.
<사생을 하다보니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물체의 형체며 색체의 세밀한 변화등이 잘 보이는 것 같네. 서양에선 옛날부터 사생을 중시했으니까.>
수채화 꿈을 꾸는 주인, 안드레아 델 사르토를 말하는 작가. 일기에 써놓은- 이라는 단어들. 아하 이런 느낌이 구나 이사람들. 미학적인 공기가 불었다. 취향이 뚜렷하고, 공간과 미학에 대한 관심. 좋아하는 소설가 이름을 원두 를 선택할 수 있는 이름으로 붙여넣어 끊임없이 부르고 표현하게 만든 장치까지. 매력적이였다.
오늘의 글은 순전히 나의 생각과 느낌에 의한 의미부여이다. 그들의 의도가 어떠한지는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영감을 받았던 곳이였다. 받을 수 있는 곳이였다. 무미건조함이란 없는, 세심한 특별함이 깃들여진 곳. 제주여행에 첫 의도된 목적지는 성공적이였다.
우리의 공간도,
편안함과 취향이 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