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는 시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각자 다르다. 은재형은 만두요, 나는 우유다. 처음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장을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필요한 게 눈에 보여 '장을 봐야겠구나' 생각한다. 한데 가끔 서로의 바로미터와 무관하게 장을 봐야할 때가 생긴다. 집에 손님이 올 때다.
남의 집 프로젝트의 첫손님을 맞이하기 하루 전. 은재형과 메뉴선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뭐해줄까?"
"누군가 버섯 크림 리조또를 먹고 싶다던데요?"
"너 할 줄 알아?"
"안해봤는데, 파스타하는 것처럼 소스만들고 스파게티 면발 대신 밥 넣으면 되는 거 아네요?"
은재형 표정을 보니 아닌가 보다.
"메인은 멘토링이니까, 요리에 너무 손이 많이 가면 곤란해. 가볍게 카레 어때? 일본 출장길에 사온 카레가 있으니."
은재형 카레는 정말 맛있다.
"좋아요. 거기에 돈까스를 얹어 줍시다. 제가 도시락 을 싸들고 다닌 노하우로 돈까스는 또 기가 막히게 굽죠!"
"거기에 입가심으로 비빔면을 뙇!"
이렇게 메뉴 선정을 마치고 공덕 이마트로 향했다.
미리 정리해 둔 장거리 리스트를 꺼내들고 카트를 밀어본다. 근데 리스트를 보니 아까 논의한 것과 무관한 것들이 태반이다. 손님맞이 명분으로 걍 먹고 싶은 거 사는거다.
은재형은 야채류나 과일을 고를 때면 몇개의 후보군을 두고서 모양새며 무게 등을 확인한 후 카트에 넣는다.
"형 뭐 보고 고르는거에요?"
"이쁜 거"
수차례 장을 보면서 느낀건데, 항상 사는 것만 산다. 드넓은 마트의 공간이 무색할만큼 동선도 안바뀐다. 그래서 장을 보러가는 길에 '이번엔 새로운 걸 시도해 보자!' 하다가도 카트에 담기는 건 익숙한 것들 뿐. 아마존이 아마존 대쉬라는 버튼을 만든 건 이런 소비 행태 때문일게다. 그럼에도 이거살까 저거살까 하는 행복한 고민이 장보기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 행복한 고민은 이곳에 오면 절정을 이룬다.
맥.주.코.너.
둘다 맥덕이라 이곳에 올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브루어리를 보며 세계는 넓고 마실 맥주는 넘치누나 외친다. 실제로 지난 1~2년 사이 마트가 들여온 맥주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저가 맥주부터 한병에 1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맥주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연희동 브라더스가 최고의 가성비 맥주로 꼽아왔던 마튼즈바이젠 (아래 사진 왼쪽) 의 대항마를 발견했다. 킹덤오브벨지움 (아래 사진 오른쪽) 이라는 브랜드의 맥주. 마튼즈가 1ml당 2.58원인데 요놈은 1ml당 2.8원. 가격은 도긴개긴이니 마셔보고 가성비를 따져 보기로 했다. 아마 이마트에서는 우리같은 고객을 겨냥해서 요렇게 둘을 붙여서 디피해 놓은 것 같다. 여우같으니라고.
장보러 와서 상품을 비교할 때 이렇게 'ml 당 얼마', 'g당 얼마'로 셈하는 걸 쉐어하우스로 독립하면서부터 익혔다. 이전에 어머니따라 장보러 갈때는 더맛있어 보이게 포장을 했거나, 제조사의 인지도를 두고서 제품 선택을 해왔었다. 내 돈이 아녔기에 가격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허나 독립한 지금은 매우 중허다.
쉐어하우스를 하면서 식비는 어떻게 분담하는지 궁금해 하시는데, 우리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엔 결제할 사람의 순번을 정해서 장을 봤다. 뭐 먹는 게 편차가 크겠냐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운영을 해보니 장을 볼 때 결제 순번이 아닌 이가 결제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왕왕 발생했다. 매번 비슷한 걸 사지만 가끔 별미을 사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작게는 과자일 수도 있고, 크게는 고기일 수도 있다. 이걸 속시원히 말하지 못한다는 걸 서로 인지한 후로는 시스템을 바꿨다.
매달 식비 명복으로 추가 금액을 모으고, 그 금액으로 장을 보기로 했다. 내 하숙비에 식비가 더해져서 형에게 송금이 되고, 장거리는 형이 일괄로 결제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실제 결제된 금액을 보면 항상 우리가 계획했던 식비를 초과하게 된다. 그러면 은재 형은 항상 말한다. "형이 더 많이 버니까 더 내지 뭐!"
고마운 형.
오늘의 지출은 요렇다. 할인가가 에누리되어 잘 반영되었다. 형에게 배운 것 중 하나는 결제 영수증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거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하는 걸로 인지했던 나에게 형은 "할인금액이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야 해." 라며 똑순이 멋남으로 거듭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똑부러지게 영수증을 확인하며 마트를 나섰다.
남의 집 프로젝트의 첫손님 맞이 준비 과정을 남겨볼 요량으로 시작한 글인데 남자둘의 장보기에 초점이 맞춰져 글이 써내려 가졌다.
쉐어하우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장보는거니 기록과 공유의 차원에서 남겨보는 걸로!
아. 근데 계란을 안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