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우리 맘대로.
선배랍시고 인생 조언 몇마디 던져준다. 자소서들고 찾아온 후배들에게는 빨간펜도 그어준다. 마지막으론 밥과 술로 배불려 보내며 화이팅을 외쳐준다. 이것이 그간 내가 해온 '멘토링'였다. 이걸 상품화해야했다.
유료 멘토링 상품 설계를 하자니 얼마를 받아야 하며, 무얼 제공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다른 유료 멘토링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참고하기 위해 취업 멘토링 관련 검색을 해봤다. 어라? 생각보다 멘토링을 제공한다는 서비스 혹은 아카데미들이 즐비했다. 몇몇은 유명 대입 학원을 연상시킬만큼 취업 멘토링 서비스들이 세분화되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멘토라는 분들의 프로필을 보니 말끔한 정장을 입고 'OO기업 HR 출신' 식으로 레벨링이 되어 있었다. 스타 강사의 느낌으로 잘 포장된 멘토링 상품였다. 그만큼 취업난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형형~ 이거 좀 봐요. 요새는 취업을 상담해주는 학원도 있어요!"
"취업시장이 진짜 어려운가 보네. 이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는 걸 보면.."
"취업 멘토링 시장이 이런 분위기이면 우리도 뭔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줘야 할까요? 돈내고 멘토링받으러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런 걸 기대할 것도 같고.."
"음. 모르겠고, 일단 우리 식대로 해보자. 후배들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하는 거 있잖아. 맛있는 거 해주고, 얘기 잘들어주면서 우리 의견 전해주는 거. 다들 좋아하두만!"
'이기는 싸움을 하겠습니다.' 울회사 대표님이 자주 꺼내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남들이 좋아해 주던 그거부터 해보고 반응을 살펴보자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일단 해보고 튜닝하면 되니. 그래서 잽싸게 CBT (Closed Beta Test) 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비공식적으로 멘토링 참가자를 모아서 우리 방식대로 진행해 본 후에 피드백을 받아 유료 멘토링 상품의 얼개를 갖춰보기로. CBT의 컨셉은 요랬다. 게다가 무료.
형들이 맛있는 밥 해주고,
커피랑 술도 팍팍 퍼줄게.
고민이 뭐니?
CBT 모집은 은재형과 내가 처음 만났고, 지금도 후배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영삼성'(삼성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기자단) 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설렘반(멘토링 신청 폭주), 걱정반(이 늙은이들은 누구지?)으로 영삼성 OB와 YB가 모여있는 페이스북 그룹에 글을 올리고, 네이버 예약 링크를 걸었다.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전화가 왔다.
"저기요..연희동 브라더스시죠?"
누군가 나를 연희동 브라더스라고 지칭하는 걸 듣자니 웃겼다.
"네. 제가 연희동 브라더스입니다."
나 스스로를 연희동 브라더스로 소개하는 건 오글오글.
"방금 페북에 올라온 거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벌써 마감이 된 것 같던데 혹시 추가로 또 하시나요?"
엥? 우리가 콜드플레이도 아니고 벌써 마감이 되었을리가 없는데.
"취직 멘토링을 받고 싶은데 15일은 예약 화면에 안나와서요. 22일은 아직 자리가 있던데.."
뭔가 쎄한 기분이 들어 네이버 예약 어드민에 접속해 보니 예약 가능일이 잘못 세팅되어 있었다.
"아! 세팅이 잘못되었네요. 하하. 이제 예약이 될 거에요! "
그리고 바로 문자가 왔다. 진짜 예약을 했네!!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상담을 받겠다고 우리집까지 찾아오네? 라며 들떠있을 때 또다시 추가 문자가 왔다. 이번엔 직장생활 멘토링 참석자였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고 준비된 6석이 전부 마감되었다. 아싸뵹!
짜릿한 성취감에 취해 멘토링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다. 참가신청해 주신 분들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대략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해 봤다. 학과, 회사, 취미 등등이 각양각색였다. 신청양식에 추가한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답변을 확인하며 어떤 음식을 준비할지도 고민했다. 대부분 '다 잘먹어요', '맥주만 있으면 됩니다' 로 적은 와중에 독특하게 '크림버섯리조또'라고 본인의 기호를 명확히 적은 분이 있었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이렇게 명확한 의사표현이 더 반가웠다. 근데 나 리조또는 해본 적이 없는데. 우짜냐.
이제 며칠 뒤면 연희동 브라더스가 첫손님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