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의집 문지기 Jul 14. 2017

남의집 음악감상실 1부

역사로 듣는 클래식

폭우가 쏟아질거라던 일기예보와 다르게 흐리기만한 날씨였다. 다행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남의집 3호에서의 음악감상실 이벤트가 열리는 오늘, 폭우로 인해 손님의 발길이 묶여 버리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 언제라도 물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만치 검은 구름이 무겁게 하늘을 채우고, 그에 걸맞은 습도를 그득 머금은 꿉꿉한 날씨. '남의집에서 음악감상하기 딱인 날씨네요!' 라며 신청자들에게 카톡을 날려 오시라오시라 주문을 외웠다.


'저 죄송한데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참석을 못할 것 같네요.' 라는 톡이 날라왔다. 불과 이벤트 시작 2시간 전이였다. 왠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다시 한번 신청자들에게 남의집 3호의 상세 주소를 담은 카톡을 날렸다. 노쇼는 아니된다. 아니된다. 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연달아 3명에게서 당일 노쇼 통보 메시지를 받았다. 무려 1/3의 노쇼. 아.. 다들 갑작스런 사정들이 있으셨겠지만, 주최자 입장에서 참으로 힘이 빠졌다. 게다가 이번 행사는 내가 아닌 다른 분이 호스트가 되어 진행하시기에 더욱더 마음이 무거웠다.


비에 젖은 남의집 3호


남의집 3호에 도착하니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호스트분들께서 손수 만드신 샌드위치, 젤로, 비스킷이 테이블에 가득했다. 그걸 마주하니 더더욱 마음이 천근만근. "날씨가 꾸질꾸질해서 그런지 몇몇 분들이 참석할 수 없다고 하시네요."라며 운을 띄우며 "조촐하면 음악듣기 더 좋죠 뭐~ 하하하!" 라고 억지춘향도 부려본다.


엉엉! 엉엉! 이 집의 골든리트리버, 마루가 짓는다. 이내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고 마중을 나가니 3분의 가족이 오셨다. 안녕하세요~ 하고 환대를 하는 나를 보자니 웃겼다. 여긴 내집도 아닌데. 나도 손님이잖아? 아빠 손님께서 선물이라며 빵봉지를 건네주신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받으려다 아차 싶어 "아. 저도 손님이라서요. 집안에 호스트분이 계시니 직접 전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 하니 아빠 손님도 어색해 하신다. 우리집에서 할 때보다 남의집 프로젝트가 전하는 어색함의 농도가 진해졌다. 어색함이 핵심가치이니 뭐.


아빠, 엄마, 아들이 세트로 방문해 주신 이분들은 신청단계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라? 가족 단위가 다같이 남의집에 방문하면 어떤 그림일까? 그리고 이분들은 왜 신청하셨을까? 자의일까 아니면 이 셋중의 누군가의 강한 종용에 의함일까? 후자라 추측했고 종용의 주체는 당연히 아빠일거라 생각했다. 오디오에 꽂힌 한 중년남성이 가족들에게 오디오 취미에 대한 동의 혹은 결재를 받기 위한 사전작업 정도? 근데 웬걸, 이야기를 나눠보니 주동자는 엄마 손님였다.


"우연히 용기사 브런치를 보다가 음악감상실이 너무 궁금해서 신청했어요. 우리 가족들이랑 같이 즐기고 싶어서 아빠랑 아들을 꼬셨죠. 근데 오늘도 갑자기 아들 녀석이 안가겠다고 하길래 용기사 브런치에서 본 케그스테이션 맥주를 사주겠다고 해서 겨우 데려왔네요~호호호"


띵동! 소리와 함께 다음 손님이 오셨다. 남녀 세트로 신청하셔서 연인 혹은 부부로 추측했으나 친구사이라고 소개.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신다는 그분들께 남의집 프로젝트를 어찌 알고 신청하셨는지 여쭈니 우연히 홍대쪽 맥주가게를 검색하다가 케그스테이션 강연 브런치를 보고 남의집 프로젝트를 처음 접하셨단다. 이래저래 케그스테이션 덕을 보는구만.


음악감상 배치도

   

이렇게 총 6명의 손님들을 모시고 음악감상실 문을 열었다. 오디오 세팅 구조상 최적의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는 지점에 의자를 배치하고 손님들이 둘러 앉았다. 한명씩 돌아가며 가운데 의자에 앉는 기회를 점유하는 몰빵구조라고나 할까?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거리상 큰 차이가 없기에 뭐가 다르겠어? 싶을 수 있으나 노노. 천지차이다. 저 의자에 앉으면 턴테이블에 올려진 음반의 콩나물들이 일제히 나의 귓구멍을 관통해 오장육부를 휘젓는 듯한 짜릿함이 든다. (이 표현은 좀 오바려나?ㅎ)



조성준 호스트가 음악감상실을 꾸미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드린드를 위한 발라드'를 듣고 음악감상에 푹 빠져버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디오와 음향 기기들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오디오 기기에 대한 관심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부분에서 음향이 개선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이였죠."

 

음악감상은 크게 2타임으로 진행되었다. 1부는 역사의 흐름에 따른 클래식의 변천사를 귀로 체험하는 시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일련의 음악들을 역사적 배경에 맞춰서 들었다. 제사의식의 도구로 쓰였던 음악이 종교개혁과 함께 회중이 함께 하는 합창으로, 이후 낭만주의 사조의 등장으로 인간의 슬픔과 분노까지 표현하게 된 것이 클래식의 역사였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하게 된 합장 소개


개인적으로 낭만주의를 소개하며 들려준 슈베르트의 음악이 가장 충격적였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 슈베르트 음악은 상당히 밋밋할 거라 생각했으나 슬픔을 표현했다던 그의 음악에서 슬슬 차오르는 슬픔의 격앙과 폭발, 체념 등 복잡다난한 인간의 감정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클래식이 이런 음악이였어? 하며 뒷통수를 쒜려 맞는 느낌.


손님 중 한분은 가장 인상깊게 감상한 음악이 낭만주의 시대의 베토벤 작품였다고 했다. 분노를 담은 음악이였는데 첫소절부터 으아!!! 하는 절규와 빡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저 시대의 어르신도 저렇게 감정에 충실하신 분이였구나.' 생각하며 그와 함께 열받고 성을 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이 감정이 정화되는 듯 했다.


남의집 거실에서 남들과 함께 남의 음악을 듣고 있다.


불협화음이 들어간 현대 클래식까지 듣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만 들었는데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날 수 있나? 싶어 스스로 대견해 했다. '나 클래식 듣는 남자야. 음헐헐!!' 다른 분들도 시간을 보며 깜짝들 놀라는 눈치다. 여기서 다시 주지할 사실은 지금 이들은 남의집 거실에 모여앉아 처음보는 누군가 소장한 음반을 생면부지 남들과 함께 듣고 있었다는 거.


'자 잠깐 쉬었다 갑시다' 며 호스트분께서 인터미션 타임을 알렸다. 호스트 아내분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다과를 함께 나누며 그간 감상한 음악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르네상스 시대에 들었던 음반 이름이 뭔가요?' 부터 '스피커는 얼마 짜리에요?'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 이때 나의 관심은 온통 비스킷에 쏠려 있었다.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 주신 정성이 담긴 비스킷. 보통 인터미션 때 대극장에서 짧은 시간 삼키듯 먹었던 디저트류와는 차원이 다랐다. 이런 경험, 남의집이기에 가능하리.


남은 비스킷은 봉지에 담아 건네주셨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이 금요일 밤 11시인데, 이 비스킷 사진을 보고 있자니 허기가 져서 일단 여기서 끊고 뭐좀 먹어야스겄다. 자. 글쓰기도 인터미션!! 2부로 커밍쑨.


2부에서는 '음향의 판타지'라는 제목으로 재즈, 팝송, 가요 LP 음악감상이 이어집니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고 싶은 이들을 위한 꿀팁도 공개될 예정이니 아래 링크 클릭 후 정주행 고고!!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집 프리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