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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ul 17. 2017

남의집 음악감상실 2부

음향의 판타지

인터미션을 마치고 음악감상 2부를 시작했다. '음향의 판타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2부에서는 재즈, 팝, 가요를 LP로 감상하며 다양한 음향의 색채를 감상했다. 쳇베이커부터 시작해서 잭존슨, 퀸시존스, 아바 등을 거쳐 마지막엔 이문세로 이어지는 음악 여행을 통해 LP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누군가 직접 제 귓가에 대고 노래하는 느낌이에요.


손님 중 한분이 이렇게 얘기하자 조성준 호스트는 그것이 아날로그의 힘이라고 답했다. 디지털 음원은 음을 0과 1로 잘게 쪼개서 전달하기 때문에 간극이 발생할 수 밖에 없지만 LP는 아날로그로 전달되기 때문에 음과 음 사이가 꽉 차있어 음향이 더욱더 풍성하게 들린다고 한다. LP감상에 대해 한 손님(@inuk.song) 이 인스타에 남겨준 후기를 아래에 발췌해 본다.


ABBA의 음악이나 최근 많이 들은 city of star 같은 곡들을 들을 때는 그냥 우와...만 연발.. 그동안 LP 매니아들을 바라본 나의 시선은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과거의 유물을 그저 감성으로 포장해서 놓지 못하는 것 같다는 식의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이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내가 틀렸단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기의 음색도 물론 깔끔했지만 바로 앞에서 부르는 것 같은 굉장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보컬의 사운드는 음질이 좋다라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그냥 다른 차원의 소리 같았다. 


독자분들께도 LP 사운드를 맛보여 드리기 위해 퀸시존스의 음악을 들려 드린다. 물론 동영상 작업 과정에서 음원이 디지털화되기 때문에 무의미할테지만 현장의 분위기도 전달할겸.



조성준 호스트는 음악이 시작되면 으레 거실 조명을 껐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러곤 턴테이블 앞에 앉아 다음 소개할 음악을 준비하는 듯 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취미로 삼아온 음악감상이니 소개하고 싶은 음악이 얼마나 많을까? 그 중에 엄선된 음악에 대한 정보와 스토리를 하나라도 더 전달하고 싶은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턴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그는 라디오 방송의 프로듀서이자 DJ였다. 그의 집이 방송국이요, 그의 거실은 스튜디오였다. 바로 앞에서 그가 들려주는 음악과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손님들은 청취자. 사연이나 궁금한 점은 손편지나 문자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DJ가 바로 앞에 있으니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다. 



음향의 판타지를 마친 후 오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눈앞에 펼쳐져 있던 수많은 오디오 기기들을 보며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그 궁금증을 풀어볼 차례. 평소 스마트폰과 이어폰만으로 음악을 듣던 내게 저 커다랗고 다양한 기기들은 슈퍼 컴퓨터처럼 느껴졌다.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보니 각각의 역할을 가진 슈퍼 오디오 시스템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요런 순서다.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

아날로그 신호가 프리엠프로 전달되어 작고 정교하게 음이 증폭됨

프리엠프에서 정교하게 증폭된 음이 파워로 전송된 후 지대로 증폭

증폭된 음을 스피커로 전달하여 음향을 발사!!


신기했던 건 전선을 둘러싼 스티로폼였는데, 이것의 용도는 음향으로 인한 거실의 진동을 막기 위함였다. 위의 프로세스에서 기기간에 전선으로 음신호가 전달되는데 이때의 음손실을 최소화하고자 거실의 진동으로부터 전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스티로폼였던거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



또하나 궁금했던 건 거실벽을 감싸고 있는 계란판들. 처음엔 방음효과 때문에 그런갑다 싶었는데, 음악감상실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전혀 다른 목적였다. 바로 음의 산란 효과를 위함. 음이 풍성해 지기 위해서는 음악감상실의 벽면들이 각각 구조적으로 반사와 흡수 기능을 적절하게 갖추어야 한다. 이쪽 벽면은 음을 잘 반사시켜야 하고, 다른쪽 벽면은 반사하지 못하고 음을 머금게끔 해야 음간 충돌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전문 용어로 피크 방지.


어쩐지 음악감상실 시작 전에 호스트께서 거실 바닥 군데군데 방석을 배치하셔서 의아해 했더랬다. 그 방석들은 음의 반사를 막기 위한 흡음장치였던 게다. 남의집 3호의 거실은 이런 음의 반사와 흡수가 정교하게 계산된 공간인거다. 그리고 가운데 배치된 의자가 반사와 흡수 결과 음이 딱 떨어지는 스팟. 떨어지는 음의 각도에 맞춰 의자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 부러 의자 다리를 톱질로 조정하셨다고 한다. 



나에게 맞는 오디오는 어떻게 구매해야 하는가? 라는 실질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여기에 조성준 호스트의 답은 명쾌했다.

먼저 음악을 많이 들으셔야 해요.


음악을 많이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음을 좀더 듣고 싶은데.'  혹은 '이 부분에서 고음이 잘 표현되면 좋겠다.' 등등 본인의 니즈가 명확해 진다고 한다. 그 니즈를 발견했을 때 거기에 맞춰서 오디오 기기를 장만해야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무얼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는 것은 문제 정의도 하지 않고 문제를 풀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니 얻는 만족도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판매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구매가 가능하다고 호스트는 강조했다.



1,2부에 거쳐 음악을 듣고, 오디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 30분. 무려 3시간 30분간 음악감상실이 진행되었다. 처음 본 이들과 낯선 공간에서 이토록 오랜시간동안 함께 한 호스트와 손님 모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보통 오디오 동호회 회원분들이랑 같이 음악을 들으면 4시간은 금새 가죠~"라는 조성준 호스트는 얼마든지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에너지로 가득 차있었다. 손님들도 막차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떠나기를 아쉬워하고, 정성스럽게 음악감상실을 준비해 주신 호스트분께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 고마움과 음악감상의 감흥을 이렇게 후기로 남겨주셨다.



음악감상실은 '우리집이 아닌 다른 이의 집에서도 남의집 프로젝트가 가능하다.' 라는 가설로 시작되었다. 남의집 2호에서 미술관을 진행한 적이 있었으나 고기집이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진행되었기에 남의 가정집으로의 확장은 이번이 첫 케이스였다. 때문에 기획자 입장에서 손님보다 호스트에게 더 집중했던 프로젝트였다.


음감실 오픈을 며칠 앞두고 호스트분께 "준비는 잘 되어가시나요?" 라고 슬쩍 여쭈니 "아~ 빨리 해야하는데 요새 바빠서 말이죠. 잘 준비해 볼게요!" 라고 답하셨다. 괜한 부담을 드린 건가 싶어 죄송한 마음이 일었으나 남의집 무대에 선 호스트를 보니 기우였단 걸 깨달았다. 본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 감상에 대한 이야기에 흠뻑 취한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준비한 분량도 얼마나 많던지 3시간 30분간 행사를 이끌고 가기 위한 스크립트가 수십장에 이르렀다. 유럽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화성악과 음의 파장 원리까지 음악 감상을 위한 모든 것이 집대성되어 있었다. 이 모든 지식은 이번 행사 준비를 위해 급하게 짜깁기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생 전반에 걸쳐 한겹두겹 쌓아 올려진 음악감상의 결과물였다. 



"재밌었어요?" 라고 묻는 호스트의 얼굴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지금껏 남의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매번 가졌던 그 복잡 미묘함을 그도 느낀게다. 본인의 사적인 일상과 공간을 남들에게 콘텐츠로 전달한 후에 오는 감정,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매력이 있다. 나의 일상을 경험한 남을 통해 재발견되는 나의 일상. 


손님들의 후기를 전해들은 조성준 호스트는 "뿌듯하네요."라고 답했다. 그 답을 들으니 나 역시 뿌듯했으며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다른 이의 집에서도 남의집 프로젝트가 가능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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