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케이브
처음에는 막연히 집짓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던 재헌이형(이하 이재헌 호스트)이 동백지구에 집을 짓고 산다는 얘기를 건네듣고 집짓기 관련 콘텐츠를 전하는 호스트로 섭외하면 재밌겠다 싶었다. 집짓기가 전공인 호스트가 직접 설계하고 거주하는 집에서 듣는 집짓기 이야기, 남의집 프로젝트로 풀어보기에 그럴싸했다.
은재형을 통해서 이재헌 호스트께 남의집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했고, 흥쾌히 응해주어 남의집 4호가 탄생했다. 며칠 뒤 현장 답사를 위해 4호가 위치한 경기도 용인의 동백 지구로 향했다. 연희동에서 동백까지 2시간이 소요되니 거의 여행 수준.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아 라스트 마일은 택시로 10여분을 이동해야 했다. 연희동을 벗어난 첫번째 남의집 프로젝트치고 꽤나 멀리갔다.
동백지구의 단독주택들은 각양각색였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집부터 유럽을 머금고자 만든 펜션 느낌의 집들까지 집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의집 4호의 외형은 그 중 가장 심플했다. 직선으로만 구성된 직육면체로 그 내부가 어떻게 생겼을지 감잡을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왔구나!" 이재헌 호스트의 환대를 받으며 직육면체 안으로 빨려들어가니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현관이 차고다. 오토바이 두대와 자전거가 자리를 잡고 그 주변으로 각종 공구들이 즐비하다. 벽면에는 'Garage House'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래! 남의집 타이틀을 달려면 이 정도의 임팩트는 있어야지. 남의집을 발굴하는 나의 동물적 감각에 감탄하며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예감했다.
맨 케이브(Man Cave) 라는 말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동굴같은 곳, 쉽게 말해 짱박힐 수 있는 아지트를 일컫는 단어다. 특히나 가족들과의 거주지에서 남편 혹은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는 남자들에게 소구되는 공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자신에게 몰입하고 싶은 동굴에 대한 욕구가 비단 남자에게만 있겠는가? 남의집 4호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맨 케이브가 충실히 반영된 집였다.
현관의 차고는 오토바이를 즐겨타는 이재헌 호스트의 동굴였다. 차고가 딸린 집에 사는 기분을 상상해 보니 어렸을 때 즐겨본 로봇만화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로봇에 탑승하기 위해 비밀의 문에 들어간다. 예측불허의 장소에서 출구가 열리며 주인공이 탑승한 로봇이 출동한다. 이재헌 호스트도 집안의 차고를 나설 때 오토바이를 로봇삼아 어딘가로 출동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까? 목적지는 직장이겠지만서도.
현관을 지나니 이재헌 호스트 아내분인 오정민 호스트의 동굴이 펼쳐졌다. 카페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거실 겸 다이닝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부엌이 위치했는데 식탁을 바라보며 요리를 할 수 있는 구조여서 호스트와 게스트가 항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한창 브런치를 준비 중이신 오정민 호스트가 부엌에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와이프가 성용 온다고 신경을 많이 썼네." 라며 이재헌 호스트가 치켜 세우자 오정민 호스트가 수줍게 웃는다.
건축 사무소에서 만나 결혼하신 두 분은 모두 건축을 업으로 삼고 계셨다. 이재헌 호스트는 공간 인테리어 전문가로 네이버 SPX(space experence) 팀에서 네이버 사옥인 그린팩토리부터 연수원,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지금은 라인프렌즈에서 전세계 라인프렌즈샵의 인테리어를 총괄하고 있다. 오정민 호스트는 설계 전문가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옴니 디자인'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의 설계를 담당해 오셨다. 두 분의 업력을 놓고 보니 직접 집을 짓고 사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만날 남의집만 짓다보니 내 집짓기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지.
집구경, 아니 집투어를 시작했다. 워낙 독특한 구조여서 여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당이 딸린 구조로 2가구가 입주하는 형태로 설계하여 일부는 지인에게 전세를 놓고 있었다. 2층에 로프트까지 더해 총 67평에 달하는 공간에서 이재헌 호스트, 오정민 호스트, 중학생 아들 거기에 웰시코기 강아지 '키로'가 살고 있는 남의집 4호의 가장 큰 특징은 문이 없다는 거.
저희 가족은 문이 필요없어요. 아들녀석이 더 크면 문을 달아달라고 할지도
그러고 보니 요새 한창 방영 중인 '효리네 민박'을 떠올리니 효리네도 문이 없다. 방에는 으레 문이 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고정관념였구나 싶었다. 그만큼 가족 구성원들끼리 숨길 것이 없다는 방증이겠지. 물론 방문이 꼭 필요한 집도 있다. 가정마다 라이프스타일은 제각각이니. 때문에 이재헌 호스트가 다른 이의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선행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들과의 인터뷰다.
집짓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본인들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간 몰랐던 가족구성원의 성향을 발견한다고 한다. 처음엔 '우리 가족들은 열려 있는 공간을 좋아해요' 라고 말했지만 가족 구성원들과 각각 얘기를 나눠보니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머물기를 원하는 성향이 이 강하다는 걸 발견하여 집의 컨셉이 변하기도 한단다.
"너 먼저 들어가." "고고!!" 집투어를 하다보니 어디선가 애띤 목소리가 들린다. 중학생 아들이 한창 오버와치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락방 한켠에서 게임에 한창 빠져있는 아들을 보니 이것이 진정한 맨 케이브구나 싶었다. 미국 영화에서 보면 꼬맹이들이 다락방에 본인의 왕국을 만들고 부모들의 접근을 금하곤 하던데, 이 다락방은 사뭇 다른 히스토리가 있었다. 이재헌 호스트 왈.
원래 내 놀이터로 만든 장소인데 언제부턴가 아들녀석의 PC방이 되어 버렸네.
집투어를 마치고 나니 다른 손님이 방문했다. 이재헌 호스트의 회사 동료 부부인데 집짓기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어 상담차 놀러왔다고 한다. 마당에 심으라며 블루베리 나무를 화분에 담아왔는데 이런 집에 살면 선물받는 스케일도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블루베리 나무라니!
신혼부부인 이들이 이재헌 호스트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남의집 프로젝트의 윤곽을 그려봤다. 집짓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일지, 이들이 이재헌 호스트에게 궁금한 것은 무엇이며, 이재헌 호스트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등등. 어찌보면 그에 대한 영감을 불러 일으켜 보고자 때맞춰 이 부부를 초대했겠다 싶었다.
"집짓기를 꼭 은퇴를 앞둔 시기에 할 필요는 없다. 땅콩집이 등장했듯이 잘 찾아보면 서울에 전세로 입주할 금액으로 본인의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이걸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전하고 싶다" 는 이재헌 호스트는 덧붙여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도 더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잠겨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그의 바람이 느껴졌다.
답사를 마치고 연희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프로젝트의 얼개를 잡아봤다. 집짓기 전문가와 집짓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남의집 프로젝트 네이밍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문득 건축학개론이 떠올랐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집을 설계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남의집 프로젝트로 풀어보자는 취지의 작명였다.
이런 기획의도가 제대로 먹혔는지 아래와 같이 홍보페이지를 제작해 오픈하자 며칠만에 정원의 5배에 달하는 이들이 참가신청을 했다. 그간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반응이 좋았다. 집짓기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이정도로 뜨거울 줄이야.
그리고 몇주가 흘러 장대비가 내리는 7월의 주말에 남의집 건축학개론이 문을 열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