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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ul 31. 2017

남의집 건축학개론2


망했네. 싶었다. 건축학개론이 열리는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안그래도 남의집 4호는 멀고(동백지구), 접근성도 떨어져서(대중교통 불편) 어느 정도의 노쇼를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비까지 내리니 저조한 참석율이 불보듯 뻔했다. 나라도 귀찮아서 안온다. 


불안한 마음에 예약자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남의집 구경가기 좋은 날씨네요' 라는 억지성 오프닝으로 시작해 '집주소는 어디어디구요. 불라불라.' 로 약을 친 후 '혹시 못오시거나 늦으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라고 본론을 꺼냈다. 근데 아무도 온다만다 답이 없다. 더 불안.



폭우에 젖은 남의집 4호 마당.


남의집 4호에 들어서니 다이닝룸의 구조가 바뀌어 있다. 가운데 놓여져 있던 테이블을 창가로 붙여서 그 위에 TV를 올려놓고 남은 공간을 의자로 채웠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런 배치는 처음 해봤는데 나름 괜찮네. 뒤져보니 우리집에 의자가 은근 많더라고." 라는 이재헌 호스트. "지난주 음악감상실 보니까 호스트분이 직접 샌드위치도 만들고 했두만~ 반칙이야 반칙. 우린 공산품으로 승부볼겨!" 라며 오정민 호스트와 함께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직접 커피도 내릴 준비를 하고, 쿠키며 베이비슈, 과일 등등을 정갈하게 접시에 담는다. 


"근데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 어쩌냐? 날을 잘못 골랐네." 이재헌 호스트도 날씨가 얄궂은 모양이다. "그러게요. 그래서 참석자분들께 못오면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못오신다는 분은 없네요" 라고 답했다. 팩트이긴허다. 손님 맞이를 위해 구석구석 청소상태 점검을 하는 두분을 보니 더더욱 좌불안석. 노쇼는 아니되오~~



손님맞이로 분주한 두 호스트


근데 왠걸. 예약한 10명이 모두 참석했다. 단 한명의 노쇼도 없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이렇게 멀고, 불편한 곳에 위치한 집까지 폭우를 뚫고 모두 모일 줄이야. 건축학개론은 신청단계에서부터 남다른 조짐을 보였다. 정원의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신청을 했고, 그 중 노쇼를 감안해 10명으로 오버부킹했음에도 전원이 참석하여, 최다 신청자/최다 참석률/최다 참석자 등 모든 지표를 갱신. 그만큼 집짓기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방증하는 듯 했다. 집짓기라는 별도의 사업 아이템으로 스핀오프를 해야하나 고민할 정도.


참석자들의 자기소개 시간.


본격적으로 건축학개론을 시작하기 전 어떤 생각으로 남의집을 찾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호스트를 비롯한 이집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남의집 프로젝트가 단순한 강좌 프로그램이 아닌 네트워킹으로의 가능성도 전하려 했다. 신청단계에서 나이, 전공/업무를 고려하여 집짓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게끔 참석자를 구성했다. 덕분에 집짓기에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는 신혼부부, 실제로 집지을 땅을 알아보며 본격적으로 준비 중인 분,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등 다양한 분들이 각자 남의집 4호에 찾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이재헌 호스트가 본인과 가족들 그리고 이 집에 대한 소개를 했다. 본격적인 집짓기 이야기는 이 집을 직접 둘러본 뒤에 나눠야 이해가 빠를 것 같아 소개를 간단히 마치고 바로 하우스 투어를 시작했다. 거실과 각 방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어떤 의미로 각각의 장소를 만들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아래 동영상은 빨래에 얽힌 다용도실 이야기.



"이건 꼭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라며 소개하는 필살 아이템. 비상 탈출용 봉. 이재헌 호스트 방의 바닥에서 아랫층 다이닝룸으로 봉이 내려져 있다. "집안에 불한당이 쳐들어오면 가족들이 이 봉을 타고 도망갈 수 있게 하려고 만들었죠." 라고 소개하는데 내가 볼 땐 남자들의 여러 로망 중 하나인 봉타고 어딘가로 출동하는 동심의 발로였다. 비상 탈출 뭐시기라는 남편의 허울을 눈감아 준 오정민 호스트의 너른 아량을 느낄 수 있었다ㅎ



투어를 마치고 다시 다이닝룸에 모여 본격적인 건축학개론을 이어갔다. 먼저 남의집 4호 도면을 펼쳐놓고 눈으로 둘러본 이 집에 대한 구조와 평수 등등을 소개했다. 남의집 4호는 2가구가 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이재헌 호스트 가족과 친한 동생의 가족이 살고 있다. 두 가정이 분리된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출입문 (아래 도면의 파란색 화살표) 역시 다른 쪽으로 만들어 하나의 대지를 두 가정이 효율적으로 분할해 사용하고 있었다. 


남의집 4호 1층 도면. 다락까지 총 3층으로 설계되어 있다.


동백지구에 지어진 대부분의 집들이 이처럼 2가구 거주를 목적으로 지어져 있고 이를 통해 입주자는 비용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몇년전 집짓기 열풍을 일으켰던 땅콩집 1호 역시 동백지구에 위치해 있는데 이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재헌 호스트는 땅콩집을 보고 내 집을 짓는 것이 꼭 은퇴 후에 어마어마한 자산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남의집 4호 구조에 대한 소개


분당에서 십수년간 20평대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남의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내집짓기에 대한 열망이 키운 이재헌 호스트는 집짓기를 위한 본격적인 재정계획을 수립했다. 융자내서 서울에서 전세집에 입주할 예산으로 동백에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는 그의 건축 예산은 아래와 같다. 건축학개론 현장에 있던 참석자,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 대다수가 가장 궁금한 내용일게다. 


남의집 4호 건축 예산 및 비용 구조


이 예산에서 감안할 점은 이재헌 호스트와 오정민 호스트가 직영공사를 했다는 것. 즉 호스트가 직접 건축 현장 소장의 역할을 했다. 두분이 모두 건축 전문가여서 손수 설계를 하고 목공,미장,벽돌 등의 각종 공정을 직접 컨트롤 했기 때문에 별도의 시공사없이 공사가 진행되었다. 덕분에 시공을 위한 간접비용(수수료)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쳐도 '2억으로 내집짓기' 라는 카피를 뽑을 수 있을만치 솔깃한 이야기였다. '이건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데 부담이 없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냐?' 고 반문할 수도 있다. 현재 이재헌 호스트는 경기도 용인에서 직장이 있는 이태원까지 왕복 80KM를 출퇴근하고 있다. 이런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상쇄할만치의 만족감을 남의집 4호에서 얻고 있다고 하니 그는 집짓기가 꼭 강남, 분당권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옵션이 아님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던게다.


집짓기 예산에 대한 이야기


"남의집에 오면서 가장 궁금한 점은 좀 풀리셨죠?" 라는 이재헌 호스트.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집짓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온터라 참석자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이런 집짓기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는 저 외에도 전해줄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도 제일 궁금해 하실테니 먼저 말씀을 드렸구요. 이제는 집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라며 그가 가장 나누고 싶은 주제를 꺼냈다.


남의집 프로젝트 섭외단계부터 그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나누고 싶어했다. 오피스, 캐릭터샵,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만들며 각 공간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을 대하는 태도 역시 여타의 집장사치들과 달랐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처음 집을 짓는 분들이시라 그들이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혹은 그들이 원하는 집의 형태에서 산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경험인지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요." 때문에 이재헌 호스트는 먼저 그가 가진 집에 대한 생각을 고객들에게 전하며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서로의 눈높이 맞추는 작업을 선행한다고 한다. 건축가와 고객의 궁합이라고나. 그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고찰은 이렇다.



남의집 4호를 예로 들자면,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가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접점을 고민했고 이재헌 호스트는 그것을 여행지가 전하는 낯설음에서 찾았다. 집에서 낯설음을 줄 수 있는 오브젝트를 카페로 잡아 카페같은 집, 집같은 카페를 목표로 이 집의 1층을 꾸몄다고 한다.


공간 UX에 관한 이야기


문득 나는 어떤 집을 원하는가 생각해 봤다. 3년간 쉐어하우스로 살아왔고,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이집,저집을 경험하는 사이 형상화된 내 집에 대한 그림. 나는 눕기에 최적화된 집을 짓고 싶다. 와식을 즐겨하는 나는 누워서 책을 읽고, 누워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심지어 (신체 구조가 허락한다면) 누워서 밥도 먹고 싶다. 


누워서 일상을 누리려면 집안의 모든 구조가 누웠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져야겠지? 집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이동을 해야하니 방문도 내키에 맞춰져 가로가 세로보다 길어야 할테고. '눕기의 기술' 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 가 필요할게다. 빨리 돈을 모아 이재헌 호스트에게 수평적 집을 의뢰해야겠다. 그리고 남의집 눕기를 기획하여 호스트와 게스트가 누워서 하루를 살아보는 체험을 해보는 거다. 


참석자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머리속에서 나처럼 집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듯 했다. 내가 아닌 대중의 기호에 맞춰서 잘팔리는 집을 짓고 싶은 분도 있을게다. 집짓기의 목적이야 다양할테니. 이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이재헌 호스트 왈 "너무 개인의 취향을 담는 것도 지양해야 해요. 이 집에서 평생 살겠다는 전제보다는 언젠가는 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니." 


집짓기로 인해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 집을 지은 후 새롭게 갖게 된 생활 습관 혹은 생각이 있나요?" 라는 참석자의 질문에 이재헌 호스트의 답변은 명쾌했다. 


집돌이가 되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요소들로 갖춰진 공간에 살게 되니 밖에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캠핑도 3년째 안하고 있단다.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원하는 것을 마음껏 영위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이재헌 호스트. 가족 구성원이 각자 원하는 공간을 갖게 되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원래 다들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는데 이렇게 각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니 셋이 집안에 있으면 너무나 조용하다는 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활환경에 맞춰 이렇게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게 되는 것을 보니 집짓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재헌 호스트는 강한 확신으로 말을 이어갔다. "자식들이 다크고 은퇴한 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크면서 부모와 어울리며 자라나는 지금이 가족구성원들의 기호에 맞춰 집을 지어야 하는 최적기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건축학개론을 통해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핵심였다.



어느새 나도 참석자 마냥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보통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이를 콘텐츠로 남기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두는 편인데 이번엔 시나브로 넋놓고 앉아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그만큼 집이라는 주제가 일상과 밀접하기 때문이리. 다른 참석자들은 어땠을까? 한 분의 후기는 이랬다.



이렇게 건축학개론은 2시간 30분간 진행되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남아서 호스트와 개별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 받는 참석자도 계셨고, 별도로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는 분도 계셨다. 그만큼 그가 전파한 집짓기에 대한 여운이 공간에 그득하여 참석자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못했다. 


"재밌네~ 재밌어." 소감을 여쭈니 이재헌 호스트가 방긋이 웃으며 답한다. "근데 확실히 다들 초면이라 어색해서 그런지 본인들 얘기를 적극적으로 꺼내지는 않으시네." 그는 참석자들이 꿈꾸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전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참석자들이 모두 한마디씩은 말할 수 있게 이재헌 호스트는 참석자들을 한명한명 지목하며 질문을 했더랬다.


나도 그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의 역량 탓이겠으나, 10명이라는 최다 참석자들이 모여 있다보니 그들의 참여 혹은 소통을 유도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여타의 강연이였다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지만 남의집 프로젝트는 호스트와 참석자 그리고 참석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큰 중점을 두기 때문에 꼭 집고 넘어갈 문제이다. 이재헌 호스트도 남의집 프로젝트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소통을 원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으리라. 


그런면에서 직전에 진행했던 남의집 음악감상실은 노쇼가 많아 적은 인원이 참석했던 만큼 호스트와 참석자들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그만큼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노닥거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남의집 프로젝트다웠다고 자평해 본다.



"엄마, 나 배고파." 그동안 남들에게 다이닝룸을 빼앗겼던 중학생 아들이 계단에 걸터앉아 배를 만지작거린다. 그 순간 남의집 4호는 예의 우리집이 되어 이재헌 호스트 세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성용씨도 저녁먹고 가요~" 라는 오정민 호스트의 따뜻한 손사래를 마음으로만 받고 남의집 4호를 나섰다. 그리곤 휴대폰을 들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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