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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Aug 13. 2017

남의집 영화관1

옥상에서 옥자

남의집 프로젝트를 하며 욕을 먹기도 한다. 주최자의 미흡한 기획에서 비롯되었던 생채기를 남겨본다.


남의집 프로젝트 초기에 어떤 이벤트들을 해볼 수 있을지 아이이디를 늘어 놓았을 때 내 마음 속 최애 아이템은 옥상 영화제였다. 집주인의 아량으로 집 옥상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운좋게도 옥상에 위치한 창고의 벽면이 스크린 역할을 하여 영화관의 형상을 갖출 수 있는 구조였다. 옥상이 있다는 것도 혹한데 거기에 영화까지 본다면 이보다 매력적인 경험이 어디있을까? 싶었다. 


남의집 영화관을 오픈할 타이밍을 보며 개봉작을 어떤 영화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관과 동시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점 때문에 이슈몰이가 한창였고, 급기야 CGV, 메가박스, 롯데 등 국내 빅3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옥자 상영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넷플릭스 외에는 옥자를 볼 장소가 마뜩지 않으니 남의집 옥상에 모여 넷플릭스로 옥자를 보자고 꼬시자! 


한켠에선 찝찝함도 일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허락을 해줄까? 싶어 넷플릭스 이용약관을 확인해 보니 걸리는 항목이 두개 있었다. 1) 영리를 목적으로 상영하면 아니된다. 2)대중을 상대로 상영하면 아니된다. 음.. 생각을 다듬은 후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1) 무료로 상영하면 되겠지 2) 대중의 정의가 불명확한데 10명 이내의 인원은 대중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적당히 불러 모으자


바로 상세 기획에 들어가 홍보페이지를 제작했다. 영화만 보고 헤어지면 아쉬우니 옥상에서 영화 관람을 마친 후에는 거실로 내려가서 뒷풀이를 진행하기로 했다. 뒷풀이의 주제는 옥자가 한국 영화산업에 던진 이슈를 가져와 '넷플릭스, 한국 영화산업의 트로이 목마인가?'로 잡았다. 뒷풀이 때 함께 할 술과 안주 준비를 위해 2만원의 입장료를 책정했는데 나중에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옥상 영화관의 로망을 이미지로 극대화할 요량으로 친동생을 술사주겠다고 꼬득여 옥상 영화관을 세팅하고 홍보 이미지 촬영용 모델 (말이 모델이지 외모는 모델이 아니다) 로 앉혔다. 옥상에 처음 올라와 본 동생이 이 집 옥상이 영화보기에 너무 좋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나도 고무되어 이 프로젝트 되겠네 되겠어~ 라며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어찌나 그림이 좋던지, 누구라도 혹할 이벤트라는 확신을 갖고 네이버 예약에 상품 페이지를 등록한 후 인스타, 페북에 포스팅했다.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넷플릭스의 존재가 깨름칙하여 해쉬태그로 넷플릭스를 걸어 두었다. 혹여나 넷플릭스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내릴 생각였기에 미연에 그들의 반응을 떠보자는 심산였다.

인스타에 올린 남의집 영화관 홍보 포스팅


포스팅을 올리고 3시간이 지났을 즈음 넷플릭스 코리아 인스타 계정이 나의 포스팅에 하트를 눌렀다. 어라? 넷플릭스가 좋아요를! 이러면 전혀 문제될 게 없겠네. 하며 마음을 놓았다. 혹시 넷플릭스는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감상하기를 권장하는 건가? 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 해맑았던) 생각도 해봤다. 


사람들의 반응도 평소보다 뜨거웠다. sns에서의 호응부터 실제 예약 신청건수 모두 이전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 지표를 갱신했다. '내가 기획 하나는 끝내주게 했고만!' 이라며 흡족해 했다. 허나 그 때가 폭풍전야였다.


불법인거 아시죠?

포스팅을 올린 그 다음날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다. 몇 분뒤에는 넷플릭스에 신고했다는 댓글이 달렸고 불만, 분노가 가득한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넷플릭스가 좋아요를 눌렀어요!' 라고 해맑게 답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이렇게 방치해 두면 논란이 증폭될 것 같아 넷플릭스측에 확인해 보겠다고 댓글을 다니 비난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요는 '넷플릭스가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저작권을 가진 배급사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안중에도 없냐?'


당시 달린 항의성 댓글들.


불만을 표출하는 빈도가 잦아졌고 강도 역시 강해져 '불법상영' 운영자로 낙인이 찍히고 있었다. 급기야 내 개인 카톡으로도 이렇게 항의가 들어왔다. "님이 뭔데 옥자를 맘대로 틀어?" 내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항의할 정도로 분노했음에 대한 방증였다. (이후에 이분은 내게 카카오게임 초대 메시지를 그렇게 보내더라.) 


불특정 다수에게서 날선 비난을 받으니 섬뜩했다. '그들'의 분노지수를 보면 집이나 회사로도 항의방문할 기세. 휴대폰에 알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쉽사리 확인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악플을 처음 접해본지라 정신적 데미지가 적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남의집 프로젝트를 해왔나 싶은 자괴감도 들고..


이들의 격앙된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문제 제기된 내용은 전부 맞는 말였다. 넷플릭스의 하트는 내 불안감을 해소해 줄 안일한 수단일 뿐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고,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배급사와 저작권 관련 협의가 선행되어야 '합법적'인 영화관 운영이 가능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였다. 나는 이것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옥상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그림에 혹해 무작정 달린 꼴였다.


게다가 더욱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입장료였다. 영화 관람 후 뒷풀이 진행을 위해 2만원을 받겠다고 한 것이 '2만원을 받고 넷플릭스로 옥자를 틀어 재낀다' 는 프레임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억울한 마음에 상품 페이지를 다시 살펴보니 2만원의 목적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아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이래저래 나의 미흡하고, 꼼꼼하지 못한 기획의 소치였다. 


남의집 영화관 행사를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참가 신청한 모든 분들께 문자를 남겨 양해를 구했다. 사과문 작성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간 기업들의 사과문 작성 사례를 보며 차용할만한 내용과 지양할 것들을 참고하여 1) 본명을 밝히고 2) 나의 과오를 최대한 자세하게 기술하여 3)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남의집 프로젝트가 법인도 아닌데 사과문 작성은 오버가 아니냐고 볼 수도 있지만 나의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 분노하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응당 취해야 하는 절차라고 생각했다.


sns에 올린 사과문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삭이지 못한 분노를 댓글로 표출하시는 분도 계셨고, 힘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분도 계셨는데 급기야 이 분들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나에게 힘을 주시려던 분들의 말에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이 생겨나니 나로 인해 제3자가 얼굴을 붉히게 되는 상황였다. 당시 유구무언의 상태였기에 그분들께는 따로 DM을 드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며 나로 인해 다른 이들로부터 불쾌한 말을 듣게 된 점에 양해를 구했다.


이때 처음으로 SNS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남의집 프로젝트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게 되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남의집 계정을 팔로우하고 계신 몇백명의 사람들은 정도가 다를지언정 남의집 프로젝트의 지원자요 우군이었던게다. 실제로 비방성 댓글은 남의집을 처음 접하신 외부(?) 분들이 주를 이루셨고,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의 대부분은 남의집 팔로어셨다.


이 일을 겪은 후로 인친, 페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서비스로 치면 고객이요, 커뮤니티에선 회원인 분들이다. 시나브로 남의집 프로젝트의 취지에 동조해 주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니 포스팅 하나하나를 허투로 올릴 수 없고, 댓글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했다.

댓글을 올린 후 며칠이 지나니 더이상 분노하는 이도, 가타부타 언급하는 이도 없어졌다. 관련되서 이야기를 나눌 분들과는 모든 소통을 마쳤다고 판단되어 해당 포스팅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남의집 영화관 논란은 더이상 SNS상에서는 남겨져 있지 않지만 내 가슴에는 큰 교훈의 상흔으로 남았다. 


더욱더 면밀하고 촘촘하게 기획하자!


한켠에선 이대로 남의집 영화관 기획을 사장시킬 수 없다는 오기가 싹텄다. 옥자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 반드시 옥상에서 영화관을 오픈하고 말리라 다짐했다. 저작권이 문제였으니 저작권만 풀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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