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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ul 05. 2017

남의집 프리퀄

사기맥주

앞서 빅이슈에 기고한 글에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연유를 끄적이며, 연희동 이전에 거주했던 이태원에서의 쉐어하우스 이야기를 언급했었다. "이태원 라이프가 궁금해요!" 라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들 속으로 궁금하셨을거라 짐작하며 그 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본다.


이태원 시절을 소개해 보자면, 3살 터울의 30대 미혼남들이 쉐어하우스 형태로 한집에 모여 살았다. 큰형 은재, 둘째 성용 그리고 막내 원석이 이태원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1년간 동거했다. 집안에서 어떤 만행이든 허용했지만 지킬 건 지키자는 의미로 딱 하나의 룰만 만들고 살았다.


서로의 성기는 노출하지 말 것.


원석, 성용, 은재 


남자 셋이 이태원에 모여 살다보니 다양한 손님들이 집에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좀더 재밌게 놀아볼 수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며 서로 작정하고 손님을 끌어들였다. 독서토론도 하고, 프리마켓도 하고,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도 하며 집에서 놀아볼 아이템은 죄다 해봤다. 덕분에 호스팅 경험치가 배가되었고 이것이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작한 영감의 원천이며, 지금까지 이어온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이태원 브라더스 시절을 남의집 프로젝트의 프리퀄이라 명명하고 싶다.


이태원 브라더스 시절에 벌린 일 중 가장 창의적이며, 쓰잘데기 없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해 본다. 당시에 끄적였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더미를 그대로 옮겨본다.






"요새 우리가 좀 뜸했지?"


은재가 말했다. 성용와 원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연스레 각자의 스케줄을 체크하기 시작하며 일정을 맞춘다. 이것이 그들의 하우스 파티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컨셉은 뭘로 할까요?"


원석은 바로 업무에 착수한다. '각자의 회사 동료를 부르자' '이태원 주민들에게 문을 열자' 등등 필터링되지 않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 뒤 결론이 났다.


"열운 애들을 불러서 냉장고에 묵혀둔 식재료들 한번 싹 털자!"


열운은 이들 셋이 만나게 된 삼성그룹 대학생 기자단, 영삼성의 열정운영진을 일컫는 말로 실제로도 다방면으로 열정 충만한 아해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석이 바로 페이스북 영삼성 그룹에 공지를 날린다. 요렇게.



장난기가 발동한 은재가 갑자기 창고에서 빈병을 꺼낸다. (그는 병에 대한 환타지가 가득하다.)


"우리 이 병을 예쁘게 라벨링해서 맥주를 넣어보자"


라더니 포토샵으로 무언가 뚝딱뚝한 만들기 시작한다. 맥주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을 시작하자마자 성용이 말한다.


"요새 총기테러를 당한 언론사 때문에 '내가 샤를이다' 는 운동이 유럽에서 한창이라던데요~"


이에 은재는 


"샤를? 그거 들으니 샤를 드골이 떠오르는데!! 샤를드골 어때?"


'뭔 의식의 흐림이 저래?' 라고 생각한 성용이지만 형이 한말이기에 맞장구치며 엄지척! 이에 은재는 신나게 디자인을 시작한다. 샤를드골 맥주를.


"라벨지에 뭔가 문구를 그득하게 적고 싶은데...뭐가 있을까? 아하! 위키피디아 내용을 복사하자ㅎㅎ"


며 자문자답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은재는 폭풍 포토샵에 빠져든다. 그렇게 뚝딱뚝딱 작업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샤를드골주 1호가 완성되었다.


사를드골주 프로토타입


감탄한 성용은 막던진다.


"여성용 맥주로 독일 총리, 메르켈도 만들어 봐요!"


이에 질세라 은재는 


"그러면 아베신조 꺼도 만들어 보자! 뒤에 핵폐기물 워터마킹까지 해서ㅋㅋㅋ"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이렇게 멋들어진 하우스비어 라벨링이 탄생했다!!



이제 맥주를 넣을 차례. 평소 이들이 이마트에서 사다 마시는 벨기에 맥주 3종 세트, MARTENS BELGIAN GOLD/WEIZEN/PHILSENNER 를 넣기로 했다.


사진상으로는 공업용 염산을 만드는 품세지만
절대 청결을 유지하며 제조하였음


그렇게 탄생한 세계 정치가 맥주 3종 세트가 완성!!!


샤를드골주, 메르켈주, 아베신조주


보라. 이 창의력 잉여의 끝판왕을.


완성하고 보니 장난기가 더욱 발동한 은재는 말했다.


"파티에 오는 애들한테 이 맥주는 직접 이 집에서 가공한 수제 맥주라고 뻥을 치자!"


이에 질세라 성용은 판을 키운다.


"각나라 대사관에 납품할 예정이라고 하시죠!"


그렇게 그들의 쇼타임은 준비가 되었다.



파티에 모인 이들. 얼추 16명의 손님이 방문했다. 주인장 포함 총 19명이 운집한 대규모 파티. 은재,성용,원석은 각자의 주특기 요리를 하나씩 선사하며 냉장고의 묵은 식자재를 차근차근 털어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올랐을 무렵, 우리의 정치가 맥주를 공개했다.


" 우리의 쉐어하우스 블로그를 본 지인으로부터 각국 정상들에게 줄 수제맥주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G20때 선물할 아이템이고 다음주에 프로토타입만 제작해서 각국 대사관에 샘플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그중 독일,프랑스,일본 샘플만 특별히 너희들에게 공개하니 영광인 줄 알아라"


라는 말도 안되는 개구라를 치는 성용.

근데, 이들은 철썩같이 믿더라.


"오~ 메르켈이 좀더 쌉싸름하니 맛있네!"

"나 샤를 드골 좀 한잔 더 줘봐~"

"흠.. 아베가 이상하게 끌리네ㅎ"


이러며 우리의 사기 맥주병들이 여기저기 불티나게 먹혔다. 

심지어 OB맥주에 근무하는 동생왈


"형~ 이런 맥주는 처음 마셔봐요"


넌 이마트도 안가봤냐?



"형...어뜩하지 애들이 진짜로 믿네요;; 그래도 사실대로 털어놓아야겠죠?"


라고 마음착한 성용은 은재에게 묻는다. 이에 쏘쿨 은재는.


"걍 냅두자~"


기왕 이래된거 사기맥주들고 단체샷이나 남기자 싶어 찰칵!



이렇게 그들은 이태원 브라더스의 대사관 납품용 사기 맥주를 겁나게 들이키며 서로의 비전과 야망에 대해서는 개뿔, 남자얘기 여자얘기만 그득ㅎ


사기쳐서 미안하다. 얘들아~~ 그래도 진짜 맛있었지?


다들 나중에 드골, 메르켈처럼 멋진 리더가 되면 이태원 브라더스 덕분인 걸로!! (아베는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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