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집 프로젝트 6개월을 돌아보며
남의집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6개월째 거실을 남에게 개방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거실을 매번 다른 컨셉으로 기획해 이벤트를 열고 생면부지 남을 초대해 세상 어색하고 생경한 경험을 전하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친구집에 놀러가는 것도 흔치 않은 요즘 생판 남의 집에 놀러간다는 게 어떤 경험일까? 그리고그런 이들을 집에 들인다는 것이 집주인에겐 어떤 의미인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신다. 요컨대, ‘이런 거 왜 하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였다. 직장생활을 8년정도 하고 보니 월급쟁이로서의 한계가 명확히 보였고, 창업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직면할 필연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직장을 포기하기엔 일렀다. 밖은 추우니까.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창업의 경험과 가능성을 옅보고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현재 내가 가진 생산도구를 살펴보니 살고 있는 집밖에 없었다. 이 집을 활용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심지어 내 소유가 아닌 남의 집으로.
3년 넘게 친한 형과 쉐어하우스로 살고 있다. 형이 전세로 집을 구하고 난 그 집에 하숙을 하는 구조다. 처음엔 이태원의 전세집에서 아는 동생까지 남자 셋이 쉐어하우스로 살았다. 그러다 집이 팔려서 동생은 부모님집으로 돌아가고 형과 나는 연희동에 있는 현재의 집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동거주 생활을 이어온 탓에 다양한 손님들이 집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거실을 공공재로 보는 경향이 짙어졌다. 거실이 밥상/술상으로 찰 때도 있고, 책을 보는 서재였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남의 집 프로젝트는 우리의 사적인 경험을 상품화하는 과정였다. 그동안 '우리집에 놀러와~ 술먹자!' 혹은 '같이 만화책이나 보자.' 라며 지인들을 꼬시던 경험을 '남의 집 술상', '남의 집 만화방'으로 치환하는 식이다. 한데 맥락없는 술상이나 만화방 컨셉이 상품성을 가질 리 만무하다. 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집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엣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거실에서 진행하는 것과 핏이 맞아야 한다.
무슨 이벤트를 열까 고민을 하며 다양한 컨셉의 아이템들을 거실에 올리는 상상했다. 이 과정을 통해 거실이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는 가설을 세웠다. 거실이라는 놀이터가 열려 있고 거기에 식당, 강연 등등의 다양한 오브젝트들이 올려지면서 기존의 식당, 강연과는 차별화된 경험이 전달되는 거다. airbnb가 침실을 겨냥했다면 이건 거실을 겨냥한 플랫폼인거다. 거실 플랫폼에 제일 적합한 아이템이 무얼까는 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이것저것 다 저질러 보자 마음먹었다. 그리하야 6개월간 총 4가지 콘텐츠가 거실에 담겼다.
남의집 도서관
현재까지 최고 히트 상품은 도서관였다. 우리집 거실은 1천여권의 책이 즐비하고 큰 차창을통한 채광이 훌륭해 독서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를 도서관으로 명명하고 남들에게 개방했다. 처음보는 남남이 생전 와본적 없는 연희동 구석에 위치한 남의 집에 모여 다같이 책을 읽고 있는 광경. 내가 초대했지만 되려 묻고 싶을 정도로 생경했다. '왜 여기서 책을읽고 있어요?' 가정집이 주는 어색한 편안함 덕분인지 3시간동안손님들은 오롯이 책에 집중한다. 나는 그들의 독서 환경을 최적화 하기 위해 말을 최소화하고 손님들이원하는 음료와 먹거리를 채우는 정도만 유지하며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러곤 나도 주방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끄적였다.
남의집 멘토링
평소 후배들에게 취업/이직 상담해주던경험을 살려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처음엔 직접 밥도 해주고, 술도주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그런 컨셉였다. 한데 너무 두루뭉술하게 느껴져 좀더 엣지있는 멘토를 섭외했다. IT업종에 종사하는 나의 인맥을 동원해 카카오톡 아이폰 개발자와 카카오페이지 서비스 기획자를 거실로 모셔와 관련 분야에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이어주었다. 강연 콘텐츠를 처음으로 거실에 올려본 경우였는데 가정집이 주는 편안함 덕분인지 멘토와 참석자간 자연스레 이야기가 가능해져 여느강연과 달리 오고가는 교감이 많았다.
남의집 미술관
내 거실이 아닌 다른 이의 거실에서 남의집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남의집 도서관에 놀러오신 동네주민분 중 한분이 남의집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아 본인이 운영하는 고기집 2층을 미술관으로 기획했다. 원래는 신진 미술가들의 작업실로 후원되던 공간인데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신진 미술가들의 개인전이 열리는 미술관으로변신한 것이다. 지금까지 두번의 개인전이 개최되었는데, 홍보를 위해 고기집 사장님이 사비로 현수막을 제작해 고기집전면에 걸어두실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셨다. 고기집에서감상하는 미술 감상, 남의집 프로젝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공감각 문화활동이라 하겠다.
남의집 동네가게
연희동 주민으로서가진 문제인식을 남의집 프로젝트로 풀어본 케이스다. 요새 연희동에는 ‘핫한’ 동네가게가 많이 들어선다. 이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타지분들이 연희동을찾지만 정작 연희동 주민들은 그런 가게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집거실을 동네가게와 동네주민을 이어주는 가교로 활용했다. 지금까지 ‘노마드목공방’, ‘밤의 서점’ 그리고 ‘케그스테이션 (테이크아웃 수제맥주가게)’ 총 3개의 동네가게 사장님들이 우리집 거실에서 그들의 가게 이야기를연희동 주민들에게 들려주었다. 가게를 시작하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연희동을 사업장으로 택한 이유까지그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강연 콘텐츠가 동네 주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주민들도 동네 민심 공략법 등의팁을 전해주며 화답했다. 가정집에서 지역상권의 뿌리가 깊어지는 묘한 광경을 목격하니 반상회 느낌도 났다.
이렇게 4개의 아이템으로 15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총 85명이 우리 집 거실을 방문했다. 방문하신 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남의집 프로젝트에 참석한 분들께 매번 방문 후기를 받아 보았는데 어떤 아이템이건 만족도는 높았다. 후기를 종합해 보면 주인장과 교감하며 색다른 콘텐츠를 즐기고 처음 보는 옆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의 총체가 만족감으로 이어진 듯 했다. 남의 공간이 주는 낯선 따스함. 남의 집을 찾아온 이들은 그것을 소비한 것이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내가 가진 무언가가 남들에게 콘텐츠로 소구되는 경험이 뜻깊었다. 나에게 흔한 공간, 일상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색다른 경험으로 소비되는 걸 보면 되려 나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목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다음 스텝을 향한 원동력으로 이어진다.
남의집 프로젝트덕에 만남의 기럭지도 늘어났다. 목수, 수의사, AI 개발자, 러시아어 교수 등 이번 기회가 아녔으면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업종 종사자분들을 만났다. 심지어 그들이 나의 집으로 찾아와 주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 공간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로 가득차는 경험. 그리고 그들과의교제 역시 호스트로서의 값진 결실였다.
수익면에선 어떤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노쇼 방지 차원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으나 운영을 위해 들이는 음료값, 간식값 거기에 내 인건비까지 더하면 마이너스다. 고민이자 딜레마다. 찾아주는 이들은 만족하고 프로젝트 취지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긍정적이지만 최소한 호스트가 금전적으로 손해보지는 않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갖추기 위한 수익모델이 필요하다. 남의집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내 집을 활용해서 스스로 돈을 버는 경험을 해보자’였던 나였기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물론 나로선 앞서 말한 호스팅의 장점들이 금전적 비용을 상쇄할만큼 매력적이지만 이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테니.
지난 6개월은 나 스스로 거실에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해 남의집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만드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앞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의 공간에서 남의집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이미 남의집 미술관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으며 실제로 몇몇분들이 본인의 공간을 남의집 프로젝트로 공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걸로 손님들을 모실 수 있을까요?’ 라는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본인이 가진 콘텐츠의 가치를 미처 인지하지 못했거나 과소평가하고 계셨다. 이처럼 전국에 숨겨진 엑스맨들을 찾아내 남의집 무대에 올리는 것이 남의집 프로젝트의 다음 스테이지다.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나 공간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신청 혹은 제보해 주시길. (신청방법: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남의집 친구추가 후 톡톡!)
*본글은 빅이슈 159호에 기고한 글의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