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의집 문지기 Jun 20. 2017

남의집 3호

음악감상실


우리 집에선 음악감상을 해볼까?


목공방 특강에 참석했던 연희동 주민분이 흘리듯 던진 한마디. 남의 집 거실에서 생판 모르는 남들이 모여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경험이 마음에 드셨는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무심결에 내뱉으셨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분들께는 테이블에 올려진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였을테지만 내게는 북마크 대상였다. '섭외하자!'


원래 이분과는 연희동 마을계획단의 교통분과에서 함께 분과장과 간사로 활동하며 친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분이 분과장, 내가 간사). 유년시절부터 연희동에 거주하셨고, 마루라는 이름의 골든리트리버를 기르시며, 취미로 음악감상을 즐겨하신다는 조성준 선생님(이하 분과장님). 종종 주말에 뭐하며 쉬셨나고 여쭈면 "음악 들으며 쉬었어요."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당시 내게 음악은 출퇴근, 글쓰기, 책읽기를 위한 BGM에 가까웠기에 음악을 들으며 쉰다는 것이 어떤 그림인지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런 음악감상이라는 아이템을 남의 집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싶다는 분과장님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한데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방 하나를 CD,LP로 가득채우고, 고가의 오디오가 놓여 있겠지 정도. 고가의 오디오 음질이 어떤 건지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겠다 정도의 기대치를 갖고 분과장님께 남의 집 프로젝트 참여를 권했다. 관심과 긍정의 메시지로 답하는 분과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근데 제가 음악감상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감이 잘 안와서요~" 라고 여쭈니 "그럼 일단 우리집에 놀러와요."라신다. 나중에 깨달았다. 우문현답이였다는 걸.


남의집 3호 마당과 현관.


연희동에 즐비한 담벼락 높은 집들을 보며 이런 집엔 누가 살고 있지 싶었는데 분과장님댁이 그런 집였다. 큰 길가에서 보면 4층짜리 상가 건물인데 뒤로 돌아와보면 1층이 마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이하게도 초록색 벽돌 건물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상 아늑한 마당이 나를 맞이했다. 마당 한켠에선 거대한 골든리트리버가 왈!왈! 이 아닌 엉!엉! 이렇게 짖는다. 항상 궁금했던 연희동 저택의 담벼락 이면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였다. 은재형은 항상 "우리집이 연희동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야."고 했는데. 형. 이 집에 와보니 진짜 그런 것 같아...


이런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집안에 들어가니 세상에 거실이. 거실이 없다. 바로 음악감상실이다. 딱 봐도 고가인 듯한 스피커 두대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를 잡고 그 뒤에 뭔지 모를 음향장비들이 즐비하다. 전선은 뭐그리 많은지 스티로폼으로 가지런히 정돈하려 했으나 넘치는 전선을 주체할 수 없어 보였다. 턴테이블, 진공관 등등 처음 접하는 음향 기기들도 신기했지만 가장 강력하게 시선을 끈 것은 이들을 둘러싼 계란판들. 계란판 모양의 무엇무엇이 아닌 진짜 레알 계란판이다. 흔히들 방음벽 설치할 때 계란판을 붙인다고들 하던데 이렇게 정말 계란판을 두른 것을 보니 경이로웠다.



음악감상실 전경


거실 옆 거실(이라고 해야 하나? 내 눈엔 둘다 거실)에는 그랜드 피아노와 LP판들이 즐비해 있다. 음악 감상실에서 이어지는 공간에 피아노와 LP라니. 이집은 정말 음악에 최적화되어 있다. "LP가 전부 몇장이에요?" 라고 여쭈니. "몰라요. 안세어봐서." 라신다. 영어로 직역하면 uncountable 이니 그 규모가 짐작이 되련지.


그랜드 피아노는 이집 사모님께서 평일에 동네 아이들 대상으로 피아노 레슨을 할 때 사용하신다고 한다. 집안을 이렇게 꾸미신 분이 음악을 전공하셨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맥락. 1년에 한번 레슨받는 아이들의 연주회가 열린다. 이 거실에 아이들 부모님을 초청해 작은 음악회를 열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신단다. 음악회이자 동네 잔치의 느낌. 가정집에서 실내연주회가 열리는 건 바로크 시대에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건만 바로 지금 동네주민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집안 광경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분과장님께서 음악을 들어보라며 의자에 앉히신다. "이 위치가 음악 듣기에 최적의 장소에요." 라며 특별히 자리잡아 주신 의자였다. 그리곤 턴테이블에 라라랜드 LP를 올려주신다. "이 노래는 많이 들어보셨을테니 차이를 좀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자. 일단 다같이 아래 동영상으로 감상!


촬영 초반 '와우~' 소리가 자연스레 내뱉어질 정도의 충격적 사운드


내 귀에 꽂힌 라라랜드 OST의 음향은 이 공간이 주는 시각적 충격보다 강력했다. 입체적 사운드라는 게 어떤 걸 두고 하는 얘기인지 실감했다. 눈 앞의 계란판 여백 위에 오선지와 콩나물들이 춤추는 듯 했다.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음악에 맞춰 실연자들도 눈앞에 보이는 듯 했는데, 이는 마치 영화 서편제의 원작인 '선학동 나그네'에서 선학동 만조의 비상학을 보는 눈먼 여인의 심정이렸다. 어떻게 음악 감상이 이럴수가 있는거지? 그동안 난 이어폰으로 무엇을 듣고 있었던거야!!



이런 장비와 음반을 갖춘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건 콘서트장의 현장감에 더해 음악을 상상하며 듣는 두가지 재미를 전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디오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구나. 노래를 듣는 것보다 경험하는 시간. 이를 남의집 프로젝트에 담는다는 희열감이 치솟았다.


분과장님과 음악감상 진행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분과장님은 가끔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음악감상회를 몇차례 진행해 보신 경험을 갖고 계셨더랬다. 이렇게 준비된 분을 두고서 '어떻게 집에서 음악감상을 하지?' 라며 긴가민가해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과장님의 경험치를 녹이니 행사 구성이 금새 잡혔다.


그리하야 아래와 같은 예약 페이지가 완성되었다. 눈으로 듣고, 귀로 감상하는 공감각 음악감상! 남의집 음악감상실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를 클릭해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예약해 주이소~ (6.25까지 접수)



남의집 3호이지만 우리집이 아닌 실제 가정집에서 진행되는 건 첫케이스다. (남의집 2호는 고깃집였으므로) 분과장님께서는 호스트로서 이런 거실 공유를 어떻게 느끼실런지 궁금하다. 나로선 남의집 확장의 가능성을 옅볼 수 있어 뜻깊은 준비과정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맥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