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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un 11. 2017

동네맥주



작년말 사러가 마트에 정체 불명의 맥주가게가 들어섰다. 수제맥주인데 테이크아웃이란다. 맥주도 테이크아웃이 되는구나? 싶은 호기심이 일어서 들어가봤다. 테이크아웃이라는 간판에 걸맞게 엉덩이 붙일 곳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맥도날드마냥 간판이 있고 뭐뭐 주세요 하면 그 자리에서 플라스틱 병에 담는다. 그러곤 여기 말고 집에 가서 마시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비밀 봉다루에 담아준다. 이름은 KEG STATION. 주유소가 아니라 주주소다. 술떨어지면 들러서 채워가는 이곳. 과거 할아버지들이 술을 떼어다 마시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근데 왜 이걸 연희동에?



가게에 대한 호기심은 사장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언제 오픈했나요? 라며 가볍게 농을 걸었다. 문을 연지는 3일째. 연남동에서 펍을 운영하며 연희동에 살면서 보니 이런 분위기의 동네라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맥주가게가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단다. 아 그래요? 라 답했지만 맥주가게가 지역사회랑 어떻게 호흡을 한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내 물음표를 인지하셨는지 사장님은 "COMMUNITY SUPPORT BREWERY" 라며 "소규모 크래프트비어가 살아남으려면 지역 밀착형이 되어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민들께 되돌려 드리구요." 연남동에서 운영 중인 크래프트원은 실제로 특정 맥주의 판매금 일부는 연남동 주민센터에 기부하며 지역사회와의 공생을 도모하고 계신다고 덧붙여 주셨다.



그래도 긴가민가했으나 일단 맥주가 맛있다. 그럼 된거지 뭐. 가볍게 테이스팅하고 나서 선택한 맥주가 플라스틱병에 담기는데 푸쉭~~ 하며 특유의 소리가 난다.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 느낌이랄까? 포트계열을 좋아하는 나는 다윗과 사장님 추천해 주신 아이홉소를 골랐다. 다윗과 아이홉소라니, 맥주 이름도 참 독특하니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술을 떼어와서 집에서 은재형과 만두와 함께 들으켰다. 괜찮은 경험.


그 후로도 종종 퇴근길에 들러 맥주를 떼어오곤 했고,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거나 남의집 프로젝트를 할 때면 으레 케그스테이션의 맥주를 공수해 오게 되었다. 사장님의 말에 세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이게 말야 연희동 지역 맥주야. 연희동에 놀러 왔으니 이걸 마셔야 해~" 하고 하면 손님들도 아. 그렇구나~ 하며 수긍한다. 이렇게 시나브로 우리집은 케그스테이션에 락인되었다.


이런 인연 덕에 남의 집 동네가게에 케그스테이션을 섭외한 건 나로선 자연스러웠다. 사장님도 취지를 들으시곤 흥쾌히 응해 주셨다. 되려 "저도 연희동 주민분들께 궁금한 게 많아요." 라시며 더 적극적으로 특강을 준비해 주셨다. "맥주 이야기인데 맥주도 마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운을 띄우니 "시음도 같이 하죠!" 라시고. "참석자들이 집에 가는 길에 맥주 좀 들고 가면 좋을 것 같고..." 라고 한번 더 운을 띄우니 "그럼 몇병 더 들고 가죠!" 라며 쿨내를 팍팍! 덕분에 남의 집 맥주특강의 구색이 그럴싸해졌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홍보페이지가 나왔고 오픈하자마자 바로 매진되었다. 동네가게 프로그램 중 가장 빠른 매진을 기록!


[네이버 예약] 남의 집 동네가게_케그스테이션

동네주민을 위한 동네가게 사장님 특강쇼! 가게 아이템에 대한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정보를 전해 드립니다. 세번째 동네가게는 연희동에 위치한 테이크아웃 수제맥주집 '케그스테이션'입니다. 과거 어르신들은 '술을 떼어다 마신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하셨죠. 요샛말로는 테이크아웃이죠. 케그스테이션은 직접 양조장에서 제조한 수제맥주를 떼어다 집에서 마시는 가게입니다. 상대적으로 고연령대의 거주민이 많은 연희동에서 수제맥주를 테이크 아웃으로 판매하는 것은 혹시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전략일까요?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ㅇ 이야기 꾼 - 정현철 대표 (케그스테이션, 크래프트원 대표) ㅇ이야기 거리 - 케그스테이션 창업 이야기 - 수제맥주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이유 - 수제맥주에 대한 이모저모 ㅇ이야기 대상 - 맥덕 - 수제맥주가 궁금하신 분/ 직접 만들고 싶으신 분 - 라거와 IPA의 차이점을 알고 싶은 분 ㅇ 일시 6월 6일(화) 오후 7시 30분 (소요 예상: 90분) ㅇ 장소 - 연희동 116-8번지 (케그스테이션이 아닌 남의 집에서 진행) - 주차불가 ㅇ 입장료 - 1만원 (음료 포함) - 노쇼방지를 위한 장치이며, 쏠쏠한 혜택으로 돌려 드립니다. ㅇ 쏠쏠한 혜택 - 특강 중: 케그스테이션 수제맥주 시음 - 귀가 길: 케그스테이션 수제맥주 증정

booking.naver.com

 


맥주수업은 밤에 해야 제 맛. 우둑해질 초저녁에 남의 집에 모인 맥덕 8인. 이 중에 이미 남의 집 도서관 때 방문해 준 손님이 두분이나 계셨다. 서비스로 치면 재방문 혹은 리텐션이니 뿌듯했다. 남의 집 매력에 빠진게지~ 에헴!  이렇게 오늘도 역시나 어색한 분위기로 특강은 시작되었다. 특강은 요렇게 구성되었다. 보기만 해도 술침이 돈다.


1. History of Beercompany One 
2. 크래프트 비어란 무엇인가? 
3. 에일과 라거 
4. 자체 맥주 탄생 비화 
5. 연희동 프로젝트 




크래프트비어라는 말을 몇 년전부터 적잖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기껏해야 수제맥주 정도? 사장님덕에 그 진의를 알게되었다. 크래프트비어는 크게 3가지 정신이 깃들여야 한단다.


1) SMALL

연간 생산량이 7억리터를 넘기면 아니되오.


2) INDEPENDENT

외부 자본이 25%를 넘겨서도 곤란하지.


3)TRADITIONAL. 

특이하더라도 도를 넘어서는 아니되느니라.


크래프트 비어 스피릿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



크래프트비어 가게는 두가지로 나뉜다. 맥주생산을 위탁하느냐, 직접 만드느냐. 케그스테이션은 후자다. 브루원이라는 양조장을 통해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한다. 남의 양조장을 통해 생산하게 되면 제품 퀄리티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차별화된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사장님은 과감히 고양시에 양조장을 세워 제품 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하신다고 한다. 현재 브루원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맥주는 케그스테이션과 크래프트원 등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모든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실 처음 케그스테이션 특강을 준비할 때 특색있게 양조장에서 진행을 해볼까 검토를 했었다. 케그스테이션에게는 양조장도 집과 다름없을테니 실제 맥주가 양조되는 장소에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현장감이 더해지겠다는 기대때문였다. 한데 교통비부터 여타 고려할 사항들이 적지 않아서 접었다. 사장님도 "양조장에서 고기구워 먹으면서 맥주마시고 이야기 나누면 재밌겠네요~" 라시며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주셨으니 나중에라도 여건이 마련되면 남의집 양조장도 기획해 보리.



연희동에서 맥주를 떼어다 마시는 사람은 어떤 분들일까? 에 대한 궁금증이 항상 있었는데 이에 대한 얘기도 해주셨다. 아무래도 연희동은 고연령대의 거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과연 그분들이 크래프트비어를 마실까? 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은재형의 아버지만 해도 크래프트 비어 (특히 IPA)를 맛보시고는 너무 강하다며 부담스럽다는 평을 내리셨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카스나 하이트의 라거 맥주에 익숙하시기 때문에 홉이 강한 맥주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케그스테이션 단골 중에 한분은 70대의 할머니라고 하신다. "다른 건 싱거워서 못마시겠어~" 라며 IPA 류의 맥주를 항상 떼어다 가신다고 한다. 사장님도 이런 손님을 접하며 보람을 느끼고 케그스테이션이 연희동에 작지만 의미있는 가게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셨다고 한다. "만약에 저희 가게가 테이블이 있는 술집였으면 할머님은 안들어 오셨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연세에 가게에서 혼술하시기 부담스러우실테고 하니. 근데 저희는 집에 가져다 마실 수 있으니 할머님은 더욱 부담없이 본인이 맛보고 싶은 맥주를 떼어다 즐기시는거죠."




이쯤되면 맥주가 등장할 타이밍. 도대체 어떤 맥주이길래 동네사람들이 떼어다 마시는걸까? 사장님이 공수해 오신 맥주를 테이블에 풀었다. "밀맥주의 부드러운 질감이 있으면서 홉에서 나는 향을 부각시키되 홉의 쓴맛을 줄여주는...." 이라는 복잡미묘한 소개와 함께 등장한 맥주 이름은 '밀땅'. 술이 테이블에서 돌고 돌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무뎌지고 참석자들의 표정도 한층 살아난다. 이 분들 그동안 맛보고 싶어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ㅎ 


흔히 크래프트비어 가게에서는 에일 계열의 맥주를 전면에 내세운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라거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벨라스트포인트의 IPA를 통해 크래프트맥주에 입문했더랬다. 에일을 한모금했을 때 입안이 쨍해지는 경험을 몇번하면 라거가 그렇게 밍밍할 수가 없다. 그런 첫 경험 때문에 에일의 주조 난이도가 더 높을 거라 지레 짐작을 했었다. 한데 실상은 라거를 잘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에일은 홉의 향으로 어필하는 반면 라거는 맛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라거의 퀄리티로 양조장의 가치가 매겨진다고 한다. 마치 바텐더들의 실력이 진토닉의 퀄리티에서 판가름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장님은 케그스테이션에 이어 두번째 연희동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시다. 연희동 한켠에 맥주공방을 만들어서 주민들이 직접 담궈 보고 싶은 맥주를 만들어 집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신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좀더 맥주와 친해지고 마을 모임이나 집안 행사 때 자연스레 케그스테이션의 맥주를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그런 동네맥주로 널리 사랑받고 싶다고 하셨다.


"프로야구단 같은 맥주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라며 "꼭 성적이 우수해서 프로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이유로 애정을 갖게 되고, 결과가 좋던 나쁘던 항상 응원하는 팬들이 있는 프로야구단들처럼 케그스테이션도 연희동에서 그런 동네맥주집이 되면 좋겠어요."


처음 케그스테이션을 찾았을 때 사장님께 내게 전했던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크래프트 비어'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니 그 진의가 와닿았다. 대기업 자본으로 생산될 수 없는 크래프트 비어만의 매력은 충분히 입증되었으나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역상권의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나 역시 케그스테이션의 고퀄리티 맥주를 계속 마시고 싶은 바람에 한번이라도 더 케그스테이션에 들러 맥주를 마시곤 한다. 나의 구매가 제품 개발로 이어져 더좋은 품질의 맥주를 맛보는 기회로 돌아오는 선순환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맥주를 마시며 맥주 강연을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남의 집 현장을 고스란히 불특정 다수에서 전달하고 싶었다. 즉흥적으로 인스타그램 생중계를 시도했다. (참고로 남의집 인스타그램은 instagram.com/naamezip ) 팔로어수가 쪼랩인지라 누가 들어와서 볼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몇몇 인친분들이 들어와 하트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 어색한 현장을 온라인으로도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니 설렜다. 앞으로도 남의집 프로젝트를 할 때 종종 생중계를 해봐야겄다.


인스타 생중계를 처음해본지라 촌뜨기마냥 신기했고, 신났으나 한편으론 생중계하는 동안 강연에 집중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즉흥적인 방송에 삼각대없이 직접 손에 들고 찍었던 탓이다. 생중계한 영상이 어딘가 저장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나중에 영상으로 다시 듣자며 과감히 촬영에 몰입했다. 알고보니 촬영 종료 후 저장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난 바로 종료를 했다. 결국 중요한 몇몇 강연 내용은 내 기억에도 영상으로도 남지 않았다. 현장에 계셨던 참석자들과 생중계로 함께 한 인친들에게 전달되었으니 그걸로 만족!



강연을 마치니 다른 때에 비해 유독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강연 내용도 알차고, 분위기도 좋아 사장님과 참석자들은 만족했으나 주최자 입장에서 충족되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와 참석자들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것. 이는 멘토링이나 동네가게 등의 강연 콘텐츠를 거실에 가져오며 내내 아쉬웠던 바였는데 오늘 특강 때는 특히나 인스타 생중계에 넋이 나가서 더더욱 참석자들을 챙기지 못해 교류가 전무했다. 심지어 으레 하던 참석자들의 소개 시간도 빼먹었으니 참석한 분들의 이름만 알뿐 어떤 분들이 무슨 연유와 기대를 가지고 이 거실을 찾았는지 모른채 시간을 보내 버렸다.


강연을 주최하고 제공하는 게 프로젝트의 목적였다면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결핍였을테지만 남의 집 프로젝트의 본질은 다르지 않은가? 참석자들도 남의집에 방문하며 단순히 강연만을 바라지는 않았을거다. 널린 게 강연 콘텐츠인데 부러 이 구석진 집까지 찾아온 데에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 사람과의 소통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거라고 본다. 근데 이번 특강 때는 그것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게다가 테이블엔 맥주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미안한 마음에 참석자들에게 강연 사진을 보내며 남의 집에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톡을 보냈다.


어느 덧 남의 집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지도 반년이 되어간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에 대해서 되새길 타이밍같다. 지금까지는 거실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많이 해보자는 취지로 이어왔다면 이제는 업의 본질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거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호스트와 손님간의 교감과 소통에 무게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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