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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Oct 19. 2017

남의집 독립출판 1

초보의 순간들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아녔다. 이번엔 한 남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카카오에 처음 출근하던 날 사내 카페에서 환영의 모닝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서 박성환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서비스 기획자였던 그는 헤이브레드라는 스타트업을 통해 매일 아침 다양한 빵을 배송받아 먹는다며 나에게 '아기궁댕이' 라는 이름의 빵을 건넸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좋은 사람'이라는 지론을 가진 나에게 그는 호감형으로 다가왔다.


그 후로 아주 느슨한 관계로 5년간 알고 지내 왔는데, 그는 호기심이 왕성하여 관심 분야는 독학을 해서라도 크던 작던 결과물을 내놓았다. 개발을 배우더니 독립서점 메타사이트 어나더북스(http://www.anotherbooks.kr/)를 만들고, 스타일쉐어로 이직해선 결제 시스템을 붙이는 PM까지 소화했다. 얼마 전엔 그의 PM업무를 퍼블리 오프라인 행사에서 설파해 티켓을 완판시켰다. 그 와중에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서 북페어까지 참가하더라. 내 눈엔 르네상스맨였다.


탐났다. 저 남자를 남의집 무대에 올려 보기로. 평범해 보이는 내 주변 직장 동료의 범상치 않은 사생활을 콘텐츠로 만들어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면에서 그의 독립출판 경험은 아주 매력적이였다. 게다가 책 이름이 '초보의 순간들' 이란다. 수줍은 30대 소년의 감성까지 겸비했다니 남의집 프로젝트로 풀기에 최적의 호스트였다.


꼬셨다. 당신의 독립출판 이야기를 남의집에서 풀어보자고. 예상대로 그는 검정 뿔테 안경 너머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껌벅이며 재밌겠다 했다. 근데 누가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들으러 용인까지 오겠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고 보자고 답했다. 소소한 일상도 콘텐츠로 소구될 수 있다는 남의집의 가설을 당신이 증명해 줄거라고. 그리하야 아래와 같은 남의집 6호 홍보 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어느새 여섯번째 남의집이라니!)


[네이버 예약] 남의집 독립출판

최근 독립출판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는 작가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독립서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동네서점도 인기를 끌고 있죠. 이쯤되면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나도 책 한권 쓰고 싶다. 그런데 독립출판은 어떻게 하는거지?'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직장생활 틈틈이 써내려간 글을 독립출판을 통해 직접 집필, 편집, 디자인, 인쇄 그리고 유통까지 책임지며 북페어에도 참가한 박성환 호스트.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그의 독립출판 스토리를 그가 사는 집 거실에서 전해 드립니다. ㅇ 이벤트 개요 일시: 10.14(토) 오후 3시~5시 장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882-8 - 기흥역에서 택시로 10분 거리 - 주차 가능 ㅇ 참석자 정원 - 최대 6명 ㅇ 참여 대상 -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보고 싶은 분 - 독립출판의 프로세스가 궁금하신 분 - 독립출판의 에피소드를 듣고싶은 분 ㅇ 이벤트 상세 - 저자의 독립출판 스토리 강연 (궁금궁금) - 저자와의 대화 (소근소근) - 저자 사인회 (뭐래뭐래) * 희망자에 한해 본행사 종료 후 뒷풀이 진행. ㅇ 입장료 금액: 1만원 용도: 음료/간식/선물 준비 비용 (선물은 비밀~) *뒷풀이 비용은 별도 ㅇ 호스트 소개 이름: 박성환 나이: 30대 초반 경력: IT 업계의 르네상스맨 - (現) StyleShare Product Manager (제품 책임자) - Kakao 서비스 기획 - Thinkreals 마케팅/운영 ㅇ 신청 방법 1) 예약하기 - 마감일: 9월 17일(일) 2) 예약확정받기 - 9월 18일(월) 예약 확정문자 발송 - 수용인원 초과 예약시 신청동기 등을 고려해 선정 3) 입장료 1만원 입금 - 예약 확정자에 한해 입금 계좌 전달 - 입금 마감일: 9월 19일(화) - 해당일까지 미입금시 예약은 취소되며, 다른 분께 참석권이 주어집니다.

booking.naver.com

 


반응은 폭발(이라는 표현보다 한단계 아래 표현이 있으면 좋겠다만)적였다. 정원의 3배가 넘는 이들이 신청했다. 장소가 용인 동백지구여서 멀고, 대중교통도 꽝이라 찾아오는 게 만만치 않을텐데 이다지도 많은 이들이 몰렸다. 나에게 독립출판은 박성환 호스트를 남의집에 올리는 수단에 다름아녔기 때문에 독립출판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좀 얼떨떨했다.


박성환 호스트가 사는 남의집 6호 전경


박성환 호스트는 같은 회사 동료가 직접 짓고 사는 단독주택의 2층에 전세로 입주해 살고 있다. 호스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기에 집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었는데 도착해 보니 왠걸. 집이 예쁘다. 게다가 동백지구의 고요함과 나른함이 더해지니 정말로 러브러브 하우스 그 차제였다. 그곳에 그는 혼자 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동네에서 1인 가구는 본인이 유일할 거란다.


행사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보니 그는 열심히 청소 중였다. 화장실 바닥과 거울에 물기가 흥건한 것이 지금 막 물대포를 수차례 쏜 흔적이 역력했으며, 의자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거실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호스팅을 하다보니 모든 게 벅찼을테지 하며 그를 도와 강연을 위한 세팅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행사 시작 시간을 1시간 뒤로 착각하고 있었단다.



첫번째로 도착한 손님, 희영님이 맥주캔 두개를 건넸다. 얼마전에 일본 여행을 가서 사온 맥주라며 박성환 호스트와 나를 위해 리본까지 달아 주었다. 감동. 남의집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기한 현상 중 하나가 요 선물이다. 분명 유료 결제를 하고서 남의집에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오기 좀 뭐해서' 라며 선물을 사오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 경험의 근저에는 집들이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까?


뒤이어 하나,둘 손님들이 도착하고 여느 남의집과 마찬가지로 어색한 기운이 맴돈다. 그 때 손님 중 누군가 조심스레 묻는다. '집좀 구경해도 되요?' 박성환 호스트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손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가 집안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니즈 중 하나가 집구경인 것은 이미 이전의 남의집들을 통해 여러 차례 발견했지만 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집을 보는 손님은 처음 봤다.


남자 혼자 쓰는 침실 구석구석을 살피는 낯선 이들


집구경 시간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남의집 독립출판을 시작했다. 박성환 호스트, 나와 주세요~!


박성환 호스트와 그의 처녀작


첫만남의 어색함을 더욱더 극대화하는 자기소개 시간부터 진행했다. 자기소개만큼 뻘쭘하고 인위적인 것도 없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서로를 알 길이 없기에 꾸준히 밀어 부치고 있다. 이렇게 어색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나중에 서로의 친밀도를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럼 박성환 호스트의 본인 소개를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큐!


어색한 이 순간


남의집 프로젝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모이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여러 케이스가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엔 별생각없이 호기심에 신청한다. 그러다 점점 관심을 갖게 되고 빠져 드는 것이지. 아래의 주연님처럼.



주연님의 남의집 신청 동기

손님들의 자기소개까지 모두 마친 후 박성환 호스트가 본인의 독립출판 스토리를 들려 주었다. 처음에는 독립서점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곳곳에 있는 독립서점을 방문해서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들을 사서 읽고, 독립서점들이 주최하는 북페어에 놀러가서 기가 차고 진귀한 독립출판물들을 보며 시나브로 나도 한번 써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박성환 호스트.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서로의 유년시절 추억들을 나누었는데 유독 본인이 꺼낸 추억들은 처음으로 본 영화,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었던 날,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이였다는 걸 발견한 박성환 호스트는 본인의 첫경험들을 글로 써서 독립출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을 '초보'라고 한다. 인간이 태어나고 삶을 마감할 때까지 걷는 수많은 걸음 중에 가장 어려운 걸음을 뽑아보자면 첫번째로 내딛는 걸음 즉, 초보이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무언가에 대해 처음 시작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고 가장 많은 고민을 들게 하는 걸음이다. 그렇기에 '초보'라는 딱지를 쓰로 붙이고 다니는 행위에 대해서는 낮게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닌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 '초보의 순간들' 중



6개월에 걸친 지난한 집필과정. 회사생활과 병행하며 틈틈이 글을 써야 했기에 주말에 집중적으로 글쓰기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공간. 집에서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유혹의 그림자들이 널려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서 글을 쓰려했고, 유일한 대안은 카페였다. 한데 카페도 익숙해지면 글이 써지질 않아서 서울 구석구석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글쓰기를 위해 방문한 카페만 50여곳.


독립출판은 글만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디자인과 편집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편집 도구, 예를 들어 인디자인같은 프로그램을 익혀야 하는데 박성환 호스트는 이것을 독학으로 익혀서 직접 디자인과 편집을 해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막히는 것이 있으면 남들에게 부탁을 하거나, 돈을 지불해서 해결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박성환 호스트같은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배우고 익혀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게 저의 학습 방법이에요."라는 겸손까지 겸비한 그가 독학으로 익힌 디자인의 첫작품은 어땠을까? 본인이 디자인한 표지로 인쇄한 샘플본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부끄러워한다.


무슨 바퀴벌레가 책위에 놓여져 있는 줄 알았죠.


표지 디자인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박성환 호스트


세상에. 표지 디자인을 마우스로 일일이 그려서 완성했단다. 상상도 못했다. 으레 친한 디자이너에게 부탁을 했겠거니 짐작했던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졌다. 왜 그는 굳이 직접 본인 손으로 완성한 디자인을 표지로 쓰고 싶었을까? 그것이 독립출판 정신이라고 답한다면 그 정신은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편집까지 마치니 이번엔 판매부수를 정해야 하는 난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문제는 내 글을 누가 봐줄 것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더해 안팔렸을 때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재고 처리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이슈였다.


그의 지인들은 대부분 500부를 권했지만 그는 "내 글을 500명이나 사서 본다는 게 말이되냐?"며  초판으로 200부만 찍기로 결심한다. 안팔리고 방안에서 함께 숨쉬고 있을 재고에 대한 부담이 컸던 그는 인쇄소 아저씨가 보너스로 50부를 더해주겠다고 했을 때도 격하게 손사레를 치며 200부!를 외쳤다 한다. 그랬던 그의 초판은 한달만에 다팔렸고, 3쇄까지 인쇄하여 현재 총 1,300여권이 판매되었다.


처음으로 내 책을 받아볼 때의 감격


책을 처음 받아봤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내가 온전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이랑 종이 재질까지 골라가며 만들었던 그 10개월간의 결과물이 책이 되어 제 앞에 놓여져 있는거에요. 되게되게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죠.


인쇄된 초판을 처음 받아봤을 때의 감흥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엔 이전과 다른 종류의 화색이 돌았다. 되게되게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는 반복 부사만큼이나 설렜던 당시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 듯 한 그는 이어서 독립출판물의 유통 과정에 대한 경험도 들려 주었다.


작가가 먼저 관심있는 독립서점에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 입고요청을 하고, 서점으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작가가 직접 혹은 택배를 통해 본인의 책을 배송하는 식으로 입고가 진행된다. (첫입고 물량는 보통 5~6권 정도)


그가 글을 쓸 때부터 꼭 입고하고 싶은 서점은 해방촌에 있는 '스토리지 북앤필름'과 신촌의 '퇴근길 책한잔'였다. 이곳에서 입고 승인을 받은 후에 직접 책을 들고 서점 주인분들을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는 경험 또한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본인의 책이 누군가의 서점에 가지런히 놓여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글쓴이의 심정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어찌 알 수 있으랴?



입고 후 1)내 책이 팔리는 경험과 2)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한다. 매일매일 책 제목의 해쉬태그를 검색해 보며 확인하는 독자들의 감상평이 그렇게 달콤하다고. 얼마 전에는 부산 아트북페어라는 독립출판행사에 작가로 참여했는데 본인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이 부산까지 찾아와 그에게 사인을 요청했을 땐 정말 황홀했단다. 그 때 처음으로 카드사가 아닌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봤는데 뭐라고 적어야 하는지 몰라 어버버했다는 추억도 전했다.


독립출판이 그에게 준 영향을 전하는 호스트박



독립출판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스스로 생각한 것을 마무리 짓는 경험이라고 한다. 별게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본인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해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생각만으로 하고 싶은 몽상들은 정말 많잖아요. 근데 그런 몽상들을 실제로 이루면도 일상이 유지가 되고, 그렇게 하고 싶은 걸 이루면 참 행복하구나는 경험을 했죠.


생각만 하지말고 구리더라도, 별로일지라도 일단 해보면 뭐라도 된다며 참석자들에게도 '뭐든 하세요!'라고 전했다.




그의 독립출판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의 첫 출간 경험이 떠올랐다. 10년전 대학생 시절 1년간 배낭여행을 다녀와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여행책을 한권 썼었다. 당시 나는 장기간 여행에서의 영감을 온전히 하나의 책에 담고자 머리 속의 생각을 종이에 쏟아 내듯이 글을 써내려갔고 만족스러운 초고를 냈다. 출판사에서도 대학생 특유의 거친 느낌이 좋다며 큰 수정없이 맞춤법 정도의 교정만 진행했다.


문제는 편집이였는데,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니 글 쓴 이후 모든 프로세스의 역할과 권한은 출판사에게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책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와, 상품을 만들고 싶은 출판사간의 힘겨루기가 반복되었다. 결국 나의 처녀작 표지와 제목은 상품에 가깝게 나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첫번째 책의 제목을 소개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319994


그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니 박성환 호스트의 책은 그의 작품였다. 나는 책을 쓴 것이고, 그는 책을 만든 것이다. 그가 쓴 글을 그가 디자인하고, 직접 시장에서 고른 종이 재질을 인쇄소 사장님에게 넘겨 책 인쇄를 의뢰해 택배로 받은 결과물.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롯이' 그의 손을 거친 마스터 피스. 그것이 독립출판인게다.





이렇게 그의 독립출판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고, 손님들과의 Q&A 그리고 뒷풀이가 이어졌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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