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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May 19. 2018

남의집 서재를 시작하며

호스트와 손님 거기에 운영자인 나까지 3자가 얽힌 구조는 남의집이 프로젝트를 벗어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데 큰 걸림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명의 호스트가 부담없이 여러 차례 남의집을 오픈하고, 호스트와 손님이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남의집 모델을 그려보자 마음먹고 두달여가 흘렀다. 이번엔 그 두달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지난 1년여의 남의집 사례 중에 좀더 라이트하게 운영될 수 있는 레퍼런스가 있는지 돌아보니 남의집 도서관이 떠올랐다. 초창기에 남의집 프로젝트를 알리는데 일조했던 기획으로 당시 살던 연희동집 거실에 꽂혀 있던 집주인형의 책을 미끼로 우리집에 책보러 놀러 오시라며 생면부지 남들에게 거실을 오픈했던 프로젝트였다. 


장난처럼 오픈했는데 정말로 모르는 사람들이 책을 보러 우리집 거실에 왔고, 심지어 다들 푹 빠져서 책을 읽는 게 아닌가. 본인의 책을 가져와서 읽기도 하고,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아래 영상은 작년 4월말에 오픈했던 남의집 도서관 현장 스케치 영상인데 보시면 거실의 분위기를 감잡을 수 있다.

 

남의집 도서관 현장 스케치 영상


호스트였던 난 옆에서 카페 주인마냥 (스스로는 공유라 최면을 걸었다) 커피를 내려주고 음악을 고르거나 책을 읽으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손님들에게 콘텐츠를 전하기 위해 용을 쓰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도 호스트인 나보다 공간과 책들에 더 관심을 갖고 집중했다. 그러니 호스트 입장에선 부담이 덜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호스트가 부담없이 여러차례 남의집을 운영하는데 남의집 도서관 사례를 좀더 뾰족하게 파고들면 어떨까 싶었다. 남의집 도서관을 따로 떼어내서 기획하고 브랜딩하는 스핀오프를 해보는거다. 그렇게 생각의 타레를 타고타고 올라가다가 남의집 도서관에 방문한 손님들이 보였던 카페에서의 행동패턴이 떠올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던 손님들이 향유했던 건 거실의 책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였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에 남의집이라는 낯선 어색함이 묘한 긴장감을 더해 손님들이 본인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거다. 의도한 기획은 아니였으나 결과적으로 그랬다. 


나도 집에서 책이 읽히지 않으면 으레 카페로 향하는데 이 카페라는 장소가 혼자만의 장소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단 말이지. 조용히 앉아서 내 일을 하고 싶어 카페에 왔는데 갑자기 옆자리에 단체 손님들이 우르르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략 난감. 이어폰을 끼고 별의별 방어를 해보지만 옆손님들의 대소사가 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다른 카페로 가자니 이미 난 커피를 구매했고. 뭐 망한거지. 


그런 불확실성을 남의집 도서관은 깔끔히 제거해 주고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거다. 남의집 도서관을 찾았던 손님들에게서 발견한 니즈. 카페 외에 대안이 없던 나를 위한 대중의 공간, 그걸 남의집으로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브랜딩

그런 공간으로 소구하기에 도서관이라는 단어는 아쉬웠다. 대신 서재가 떠올랐다. 보통 집안에 나만의 동굴을 떠올릴 때 다락방 혹은 서재를 언급하곤 하는데 어른들의 공간으로선 서재가 적합하겠다 싶었다. 남의집 서재, 남의집 서재. 뭔가 입에도 착착 감기고 여기서 무얼할지 직관적으로 전달이 잘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제 널 남의집 서재로 칭하노라.


운영구조

서재라는 컨셉으로 호스트의 운영 부담을 줄였으니 이젠 문지기라는 운영의 주체가 빠지고 호스트와 손님이 직접 연결되고 만나는 구조를 짜보기로 했다. 답은 간단하다. 남의집은 중개역할에 머무르고 운영과 진행을 호스트가 직접 하게 만드는 거다.


그럴려면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데 개발자를 어디서 꼬셔오리요. 그건 일치감치 포기하고 지금의 운영틀로 쓰고 있는 네이버예약을 좀더 들여다 봤다. 요놈으로 어떻게 직접 호스트가 예약을 받게 할까 고민하다가 네이버 예약페이지 제작까지는 지금처럼 내가 진행하고 모객 단계부터 관리자 권한을 호스트에게도 부여해서 호스트가 직접 운영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니 결제씬이 문제였다. 지금껏 신청자들에게 무통장입금으로 입장료를 받으며 운영을 했다. 매번 통장 내역을 확인하고 미입금한 신청자들에게 입금해 달라말라 조르는 형태의 비효율의 극치를 호스트에게 전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네이버페이를 붙이기로 했다. 신청단계에서 바로 네이버페이로 결제하게 하면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한번에 날라간다. 빠이 짜이찌엔~


호스트 섭외

이게 생각보다 난제였다. 기존의 남의집은 레퍼런스가 있으니 꼬시는 프로세스가 나름 세팅이 되어 있는데 남의집 서재는 미증유라 나부터 이를 어떻게 설명해고 어필해야 할지 난감했다. 지인 중에 호스트를 하실 이가 있을까 싶어 개인 계정의 sns로 서재 호스트 모집 글을 올렸다. 몇몇분이 반응은 보였으나 단순 호기심이였을 뿐 실제로 운영해 보자고 들이대니 도망가더라.


남의집으로 비빌 언덕은 남의집 계정의 SNS 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남의집 서재 호스트 모집 공고를 올렸다. 이번엔 반응이 좀 올라왔다.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로 신청을 받았는데 20여분 정도가 관심있다 궁금하다 알려달라는 톡을 보내와서 열심히 설명하고 어필하고 꼬셨다. 몇몇분과는 실제로 거실 방문 일정까지 잡았다. 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취소가 되었다. 


아..쉽지 않네. 라고 지쳐갈 때 즈음 지원군이 등장했다. 남의집의 든든한 지원군, 남의집 호스트분들! 아침을 주제로, 아침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아침 9시에 만나 씨리얼로 아침식사도 함께 했던 '남의집 아침' 의 윤진 호스트. 먼저 남의집 아침 현장 스케치 영상부터 감상하시라!


 남의집 아침에서 함께 한 시리얼 아침식사


아침 햇살을 가득 품은 그녀에게 서재 프로젝트 이야기를 전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곤 바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제 취향을 담은 공간이라 
많은 분들이 경험하면 좋겠어요.


윤진 호스트의 거실 테이블

아니 어쩜 이렇게 모범적인 답안으로 이쁜 의견을 주신다냐! 혹시나 변심할까 쫄아서 약속, 도장, 복사까지 한 후에 열심히 준비해 보겠다는 의지, 의욕을 불태우고 남의집 서재 오픈을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아침 햇살이 예쁜 공간에서, 아침에 대한 독립출판 'achim'을 발행하는 호스트의 취향을 담아 서재 이름은 achim으로 정했다. 집안에 가득한 아침 느낌이 잘 전달될 수 있는 사진과 글귀로 네이버 예약 페이지를 구성했다. 이를 위해 윤진 호스트는 부러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서 스캔본을 전달해 주었다. 잠시 감사하시라.





홍보 페이지 작성

원래 하던데로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다보니 가장 중요한 걸 놓쳤구나 싶었다. 바로 책! 명색이 서재이니 방문자들은 이 거실에 어떤 책이 있는지 궁금해 할테고 이에 대해선 자세하게 정보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윤진 호스트가 알아서 먼저 본인의 책과 매거진 리스트를 정리해 주었고 사진도 요래 이쁘게도 찍어 주었다.




시스템 시스템 그리고 시스템

다음 과제는 운영방안. 호스트가 직접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운영을 위한 부담감을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좀더 시스테믹하게 알아서 남의집이 운영되는 프로세스를 잡아야 한다. 사실 그동안 운영한 남의집 운영은 몸빵의 극치였다. 한땀한땀 운영한다고 표할 정도로 잔무가 많다. 


하나의 남의집이 오픈하기 위해 신청자 확인, 선별, 참석여부 안내, 입금 요청, 입금 확인, 미입금자 독촉, 플러스친구로 찾아오는 길에 대해 일일이 카톡답변하기, 노쇼 체크 등등 글로 쓰는 지금도 생각만 하면 숨이 턱 막힌다. 근데 이걸 호스트에게 넘긴다? 나라도 안한다.


우선 입금과 취소의 다양한 잔무를 네이버페이 적용만으로도 깔끔하게 해결했다. 그외의 자잘한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나름의 방안으로 해결했는데 자세한 건 영업 비밀.


여튼 호스트들이 귀찮은 잔무없이 호스팅에만 전념할 수 있게 그간의 난잡했던 업무 프로세스들을 시스템화하는데 적지 않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별도의 개발없이 네이버와 카카오가 만들어 놓은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려고 잔머리 굴리느라 용썼다. 이 과정에선 익명의 조력자가 큰 도움을 주었다. 땡큐 K군!


메뉴얼

호스트가 직접 예약을 받고, 현장에서 나없이 알아서 손님 맞이와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운영 메뉴얼을 작성해야 했다. 네이버 예약 관리자 어드민의 요모조모를 담고, 현장에서 어떻게 손님을 받고, 정산을 어떻게 하는지 등등의 일련의 프로세스를 문서화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게 또 만만치 않더라. 이 작업은 익명의 조력자, K군이 전부 맡아주었다. (@K군 자넬 소개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만 좀더 참는 걸로ㅎ)






이렇게 남의집 서재 준비를 마쳤다. 예상한 시간보다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새로 옮긴 직장에 적응하느라 이전만큼의 시간을 남의집 일에 할애하기 녹록지 않았다. 역시나 스타트업에는 할 일이 어마무시하더라. 그럼에도 회사일에 매몰되지 않도록 발버둥치며 짬을 내서 여기까지 왔다. (칭찬해~ 문지기)


남의집 서재를 통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낯선 공간과 시간을 전하고 싶다. 집안에 각자의 동굴이 있을테지만 이내 익숙해지면 긴장감이 떨어져 생산적인 생각, 작업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불확실성이 충만한 카페에 나서기 주저하게 되는 이들을 위한 중간값. 그걸 남의집으로 풀어보고 싶다.


'집'의 온기가 주는 안락함에 더해 '남'이라는 낯섦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남의집 서재가 전하는 가치다. 남의집 도서관을 운영하며 엿본 일말의 가능성을 남의집 서재로 더 뾰족하고 깊게 파고 들어 끄집어 내고 싶다. 


이는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낯선이들의 커뮤니티'라는 그동안의 남의집 프로젝트와는 결을 달리한다. 전자는 모임이고, 이번엔 공간에 집중하는 프로젝트다. 당분간 이 둘을 동시에 진행해 볼 생각이다. 남의집 거실을 중심에 놓고 함께 누리는 모임과, 혼자 누리는 서재를 오픈하는거다. 그걸 남의집 프로젝트라는 큰 그림에 담고 싶다.


남의집 서재_achim


이렇게 탄생한 첫번째 남의집 서재, achim을 소개한다. 아래 링크를 누르고 나를 위한 남의 거실을 누려 보시길. 낯선이의 거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탐닉하고, 내가 보고 있는 책을 가져와서 읽어도 된다. 물론 글을 쓰거나 낙서를 하고 멍을 때려도 좋다. 읽다 지쳐 쓰러져도 괜찮다. 여기는 남의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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