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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an 07. 2017

택시 자격증 따기2

필기시험

다음 단계인 필기시험을 위해 따로 공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참 애매했다. 택시기사님들께 슬쩍 물어보면 공부 안하면 떨어진다, 뭐 그런 걸 공부를 하냐 등 각양각색의 답변이 돌아왔다. 


같이 자격증 준비하는 팀원들은 "일단 네가 시험치는 거 보고 결정하겠다"는 관망모드. 결국 난 공부해서 남주겄냐? 싶어 공부를 택했고 총정리까지 구매했다.

총정리를 구매한 게 얼마만인가?

필기 시험은 크게 아래와 같이 4개의 과목(?)으로 나뉘며 총 80문항이 출제된다.

여객자동자운수사업법

안전운행 및 LPG 자동차 관리

운송서비스

지리

법규관련 내용은 업무상 숙지된 터라 큰 어려움없이 술술 넘어갔다. 근데 LPG 관리 부분부터 어라? 싶다가 마지막 지리문제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런 문제들이 나온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리 문제들을 마주하니 그간 내 삶의 궤적을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서울 곳곳을 열심히 싸돌아다녔는지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는 느낌? 흥미로웠던 건 특정 지역에 관한 문제를 풀다보면 그 장소에 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는 거. 그럴 때면 잠시 감상에 빠진다. 다들 그런 장소들 한둘 있지 않나?


총정리에 담긴 문제들 중 가장 인상적이고 어려웠던 문제는 단연 이 문제! 여러분도 풀어보시길. 정답을 댓글로 달아주신 분 중 추첨을 통해 용기사 탑승권을 선물합니다ㅎ


출퇴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이런 문제들과 부대끼길 일주일. 드디어 필기시험날이 밝았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시험 장소인 잠실 교통회관에 도착. 시험장 입구에서 마주한 예상치 못한 광경에 흠찟했다. 택시기사 리크루팅을 위해 서울 내 지역별 운수사의 관리부장님들이 자리를 잡고 러브콜을 날리고 계셨는데 그 열기가 너무도 뜨거웠다.


드루와~ 드루와~


이분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 해봤으나 역부족. "어디 살아요?" "영어는 좀 해요?" 의 폭풍 질문을 무력화할 요량으로 "연희동이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알기론 연희동엔 운수사가 없다. 근데 왠걸. "어!! 우리 차고지가 연희동에 있어요!" 라며 한 분이 날 덥썩 무셨다. 그리고는 내 수험표를 보며 이름과 수험번호를 알아서 수집하시고는 "김성용씨, 공부 좀 했어요? 이게 족보인데 그대로 나오니 꼭 훑어보고 시험봐요!" 라며 A4뭉치를 전해 주셨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해 막판 벼락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분은 손등에 가득 컨닝페이퍼를 만들고 계시고 내 옆자리의 아저씨는 내가 받은 족보라는 문서를 뚫어지게 보고 계셨다. 곧이어 시험 감독관의 훈화 말씀이 솰라솰라 이어진 후 바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정말 총정리에 나온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었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덕분에 OMR카드에 정답을 옮기는데까지 15분이면 충분했다. 약간 허탈하기는 했으나 시험 통과는 무난할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였지만 무언가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하고 치른 시험이라 그런지 뿌듯하기까지. 


시험을 마치고 2시간 후에 같은 장소에서 합격자 발표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합격 여부를 확인하러 시험장에 돌아오니 아까 내게 족보를 건네셨던 연희동 운수사 부장님께서 손짓하며 "김성용씨~ 합격했어! 합격!!" 이미 입사 후보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대기 중이셨던게다. 점수가 궁금해서 확인해 보니 74점이란다.(만점이 몇점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운수사 아저씨를 통해서 합격통보를 받은 탓인지 별 감흥없이 합격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이후의 절차에 대해 안내를 받고 나오니 또다시 연희동 운수사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성용, 운행은 언제부터 할거야?" 직전까지는 김성용씨라더니... 이미 난 그분의 택시운전사였다.


그리고 2주뒤 택시운전자격증을 발급받았다. 실제로 받아 보니 괜한 든든함이 생긴다. 이제 운행할 일만 남았다.


면허를 딴 후 다른 팀원들도 일제히 필기시험을 치루었다. 그 누구도 공부하지 않고 합격했다. 게다가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팀원도 있다. 괜히 공부했어. 괜히 공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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