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 사람도, 가라는 사람도 없었다
가족들과 인도에서 살기로 했다. 2026년 6월부터 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Pune라는 도시로 이사가서 온가족이 인도살이를 할 계획이다. 인도에 가면 아내는 요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요가 수련에 매진하고, 딸아이는 인도 초등학교를 입학한다. 나는 돈을 번다. 인도에서.
우리 가족의 인도살이 모의는 2024년 연말에 시작되었다. 당시 난 몇년간 운영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오랜만에 직장인으로 돌아가니 이전 창업가로 일하던 것과 비교해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지는 일상을 마주했다. 스타트업의 C레벨로 합류했기에 창업했을 때에 준하는 에너지로 일하기를 기대했으나 그게 안되었다. 나도 성에 안차고 조직의 기대에도 못미치는 나날였다.
반면에 아내는 그 당시 회사생활 중 짬짬이 요가 수행하며 요가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요가에 열심였고,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두 눈이 반짝반짝이며 총기가 더했다. 아내가 멋졌고 부러웠다. 한가지에 미쳐서 몰입하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아내에게서 전해졌다. 그 에너지 때문였을까? 연말에 한해를 마무리하는 담소를 나누던 중 여느 때와 달리 무기력해 보이는 내가 안타까워하던지 아내가 물었다. "여보는 뭐하고 싶은거 없어?" 그러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널 요가 스타로 만들어 주고 싶어"
당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명확해져 가기에 부부 중 한사람이라도 꿈이 생기면 그 꿈을 전적으로 밀어주자는 생각에 툭 튀어나온 말였다. 7년 전 결혼할 당시 난 막 창업해서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일에 미쳐 있었는데 아내는 당시에 내 꿈을 지지하고 물심양면 내가 꿈꾸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에 대한 감사함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트이니 의식이 그 말이 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내를 요가 스타로 만들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아내가 뭘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아내가 요가를 더깊이 공부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에 요가의 발원지인 인도가 자주 등장했다. "인도에서 몇주간 요가 수행하는 수업이 있더라. 여보가 집에서 딸을 봐주면 내가 잠깐 인도에 가서 그 수업듣고 와도 좋을 것 같고. 아님 잠깐 다같이 인도로 여행가는 것도 좋구" 식으로.
이렇게 딸이 대화에 등장하자 사고의 초점이 아내에서 딸까지 확장되었다. 당시 5살였던 딸에게 슬금슬금 사교육이 시작되던 때였다. 어린이 영어, 어린이 체육관 등등의 학원에 등록을 했고 내가 라이드를 도맡았다. 하루는 영어 학원에 딸아이를 등원시키고 부모님 대기실에 앉아서 수업실 내 CCTV를 통해 수업에 참여하는 딸아이를 모니터로 쳐다보고 있으니 좀 짠했다. 좁디 좁은 학원 강의실에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애기들이 앉아서 수업받는 게 여간 답답해 보이는 게 아녔고, 내 딸도 이렇게 틀속에 갇히게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며 미안했다.
그렇게 딸생각이 나니 10여년 전 대학생 때 휴학하고 1년간 배낭여행으로 지구 한바퀴를 돌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유독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던 것이 인상적여서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을 보며 나중에 나도 자식이 생기면 꼭 어렸을 때 세계를 경험시켜 주고 싶다. 나처럼 대학생 때 머리가 굳은 다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다양한 세계와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CCTV 속 작디작은 수업실에 앉아 있던 딸을 떠올리니 10여년전 내 바람이 고개를 들었다.
아내는 요가를 깊게 알기 위해 인도에서의 수련에 관심이 생겼고, 나는 딸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와 문화권을 경험하길 바랐으니 가족이 다같이 인도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다같이 인도에 가서 몇년 살다가 올까?" 그러자 아내가 큰 동요없이 "그것도 괜찮네" 라고 답한다. 연말에 한해를 마무리하던 중 약간 아무말 대잔치 분위기로 오고간 얘기여서 이 정도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로 며칠간 내 머리속에는 인도행에 대해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가족이 다같이 인도로 이주를 한다. 이민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내가 이민을 간다고? 뭔 팔자에도 없던 이민이란 말인가? 내 주변에 해외로 이주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주재원이다. 회사에서 보내주는거다. 우리 가족은 가라는 사람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는 인도로 가는거다. 이게 말이 되나? 요가를 공부하고, 자식에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 연고도 하나 없는 타국을 자비로 간다는 게 말이 되는건가 계속 반문했다. 무엇보다 인도로 가면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벌어둔 돈을 까먹으며 살 정도로 부를 축적하지 않았기에 막막했다. 요가는 한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고, 자식의 해외 경험은 단기 연수나 영어 유치원 보내면 되는거 아닌가? 라며 인도로 가지 않을 이유들이 생각의 한켠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말이다. 인도로 가면 안되는 이유 수십가지가 머리 속으로 밀고 들어왔지만 가슴에서는 묵직하게 인도행에 대한 확신감이 점점 차올랐다. 지금 다시 곱씹어 봐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가야할 것 같았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가면 어떻게든 길이 열릴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일었다. 머리는 가지 말라하고 가슴은 가라 한다. 그러면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머리에 이는 생각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내 현재 삶의 조건들에 맞춰서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부터 정하고 거기에 내 삶의 조건들을 맞춰보자 생각했다.
인도행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 문제였다. 내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그것도 인도에서 말이다. 인도 주재원으로 보내주세요. 라며 한국 기업에 지원을 해야 하나? 인도 현지 채용으로 취업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그건 최후의 보루로 미뤄두고, 우선은 조직에 속하지 않고, 거주지라는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으며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유는 이번 기회에 근로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틀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에 접어 들었던 내게 근로소득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이참에 우리 가족의 먹거리는 조직이 아닌 내 힘으로 가져오는 수렵 생활로 체질 개선을 하고 싶었다.
사실 이런 고민은 30대 후반에도 가졌기에 창업을 했었다. 스타트업이라는 프레임으로 창업을 하고 VC에서 투자를 받고, 직원을 채용하며 스타트업 대표로 6년여를 일했으나 창업가의 생계비 역시 급여소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주식 덕분에 비현실적인 금액으로 가치가 책정된 사이버 머니가 있지만 이것이 현금화될 확률은 정말 희박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유롭고 싶어 내가 스스로 조직을 만들었지만 나 역시 그 조직에 묶이고 조임을 당하는 경험도 아이러니했다.
내가 풀고 싶은 문제 혹은 미션/비전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비를 벌 수 있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없이 나홀로 사업소득을 벌어보기로 마음먹었고, 인도에서도 운영이 가능한 사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온라인 위탁판매를 떠올렸다. 내 친동생이 10여년간 온라인 위탁판매 사업을 해왔고, 몇년전부터는 나에게 부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으니 본인이 위탁판매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했기에 대략적인 사업 구조는 알고 있었다.
온라인 위탁판매란 온라인 커머스의 일종으로 제품 공급자를 대신해서 마케팅, 고객 CS를 도맡아서 소비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공급자에게 주문 내역을 넘기면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물건을 보내주는 구조다. 쉽게 설명하자면 쿠팡, 네이버 스토어 등에 셀러로 등록해서 판매 대행하는 업이다. 재고를 직접 쌓아두고 팔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지만 그만큼 마진은 박하다. 그래서 부담없이 소소한 용돈벌이 용도로 직장인들이나 주부들이 부업으로 많이들 하고 있다. 이걸 부업이 아닌 주업으로 올인하면 한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였다. 즉, 인도에 살면서 한국인들에게 한국 물건을 위탁판매하며 먹고살아보자는 생각였다.
이 생각이 현실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은 가족들 데리고 인도로 갈거야. 그리고 거기서 네가 가르쳐 준다던 온라인 위탁판매로 생계비를 벌거야.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자 자살행위라는 답변을 받았다.
- 다음편에 계속.
지난 1년치의 생각과 경험을 풀려니 글 하나로는 너무 길어져서 틈틈이 시간되는대로 나눠서 올릴 계획이다. 글만 쓰니 뭔가 훵해서 이 글에 어울리는 영상을 찾아보니 우리 가족이 틈틈이 집에서 요가하는 영상이 있어서 담아본다. 아내 덕분에 나도 요가에 입문해서 5년차 요가를 수련 중이다. 엄마아빠가 집에서 요가를 하니 딸아이도 제법 잘 따라한다. 인도에 가서 K요가패밀리라고 밀어볼까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