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장수로 돈맥경화에 걸리다
2025년 1년간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았다. 과일, 계절가전, 공산품 등을 쿠팡, 지마켓, 당근마켓, 네이버, 쇼피파이 등등에 올려서 한국, 호주 등에 판매했다. 나처럼 파는 사람을 셀러라고 부르는데, 제품과 판매 방식(플랫폼)의 조합에 따라 셀러마다 위탁 판매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지난 1년은 나에게 맞는 판매방식을 찾기 위한 학습과 실패의 연속이였다. 때문에 무자본 창업 아이템이라고 불리는 위탁판매에서 적잖은 손실을 보면서 판매의 기술을 익혔다.
이후의 글은 2025년 9월부터 2026년 1월까지 나에게 맞는 판매 방식을 찾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 제품을 판매하며 겪었던 일들의 월간 기록이다. (2025년 1월부터 2025년 8월까지의 경험은 이전 브런치글에 정리해 두었다.) 정말 처절하게 실패했고, 좌절했고, 그럼에도 계속 나에게 맞는 판매 방식을 찾기 위해 도전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이렇게 난 파는 사람이 되어갔다.
2025년 9월
동생은 과일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홍로사과가 히트를 쳐서 하루에 2천만원 매출을 찍었다. 극도로 경도된 동생은 나에게도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하겠노라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에 난 이미 과일판매는 마음이 떠나서 유튜브 쇼핑에 집중할 생각였지만 유튜브가 바로 매출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돈이 될 수 있다는 동생의 방식을 따라보자는 생각에 다시 신선신품에 살짝 발을 걸쳐보기로 했다.
동생이 터득한 마케팅 노하우를 적용할 상품으로 단감과 귤을 정했다. 마케팅 방법이 확실하니 가장 시장이 큰 과일을 고른거다. 그리고 동생의 노하우가 적중하려면 공급가를 최대한 싸게 가져와야 하고 물량도 충분히 가져올 수 있는 공급처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듯이 도매처에서 물건을 가져오기 보다는 농가와 직접 컨택해야했고 이를 위해 발로 뛰어 전국의 농가를 찾아 다녔다.
인터넷을 뒤져서 100군데도 넘는 농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우리 소개를 하고 잘 팔아드리겠다고 읍소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농장주분들은 귀찮아 하면서 거절하거나, 위탁판매 개념이 생소해서 소통이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저찌 손가락에 꼽을만큼의 농가는 검토를 해보겠다고 하여 직접 찾아뵈겠다며 들이댔다. 그렇게 9월 초에 진주/구례에 단감 농가 출장을 다녀왔고, 그 다음주에는 제주도로 가서 감귤 농가 출장을 계획했다.
진주/구례에서 단감과 태추단감 농가를 두군데 방문해서 얘기가 잘되어 판매하기로 했고 제주 출장에서는 예전부터 알고지냈던 과수원 대표님을 통해 다량의 귤을 공급받기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직접 산지와 일하게 되니 갑자기 업무량이 많아지고 여기서 공급받은 과일로 매출을 폭발시키게게 하는 일련의 작업 준비에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특히 구례의 태추단가 농가에서는 바로 추석 선물로 판매하기로 결정이 되어 내가 직접 임직원 대상 선물을 타겟으로 한 추석 선물세트 판매 영업을 뛰게 되었는데 이게 반응이 좋아서 영업 초반부터 200박스를 팔아치웠다. 구례 농가 사장님이 내 판매력에 놀라서 주문을 그만 받으라는 말을 하는 웃픈 상황이 펼쳐졌는데 이때 처음으로 과일판매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영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간 조용히 셀러 활동해 오던 것을 지인들에게 알리게 되고 SNS에도 올려서 공개했다. 그러니 일단 지인들 구매가 따라와주었고, 지인들의 회사에 명절선물로 구매해주니 쏠쏠한 성과를 냈다.
이렇게 9월엔 예상과 달리 과일판매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되다보니 부득이 유튜브에 시간을 거의 쓰지 못했다. 더 해야하는데 생각은 계속하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2025년 10월
태추단감 판매 성과에 자신감을 얻어서 다른 과일도 판매 준비에 몰입하게 되었다. 바로 극조생귤. 제주 출장에서 공급받기로 결정한 농가를 통해 귤판매를 시작했다. 이참에 당근마켓에서의 판매도 재개하였다. 올 3월달에 당근판매를 했을 때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쇼피파이에 정신이 팔려서 후순위로 밀렸던 당근도 계속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과일 가격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니 당근에서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에 운영을 재개했다.
그리고 동생이 터득한 마케팅을 극조생귤로 처음 시도했는데 나도 일매출 700만원 정도가 나올 정도로 잘나왔다. 동생과 둘다 흥분되어 드디어 답을 찾았다며 좋아했는데 그뒤로는 약발이 안먹히는지 매출이 잘 안나왔다. 그렇게 10월에는 여러번 동생이 터특한 방식을 재검증하며 최적화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2025년 11월
귤매출이 예상만큼 늘어나지 않고 동생의 마케팅 전략이 안먹힌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자 의욕이 급감하게 되었다. 극조생이 끝나고 조생귤로 넘어가며 공급가가 크게 올라가면서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게 되니 귤판매의 실적은 좋아질 기미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겠다면 동생이 고안한 마케팅 방법을 이리저리 변형해 가며 많은 돈과 시간을 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과는 없었다. 뭔가 임팩트없이 꼼냥꼼냥 시간만 축냈던 하루하루로 기억한다.
이제 곧 한해가 끝나가는데 이렇게 결국 난 커머스에서 성공의 단초를 못찾았다는 생각에 업무 의욕이 점점 떨어져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11월에 뭔가 바쁘긴 했지만 무기력하게 한달을 보낸 건 아닌가 싶다. 캘린더를 다시 봐도 유독 11월에는 기록에 남긴 것이 없다. 그만큼 계획하며 일하지 않고 운영성 업무만 쳐내며 뭔가 침잠해 있지 않았나 싶다.
2025년 12월
가만히 있어도 호흡이 힘들다. 특히 들숨이 어렵고, 계속 공기가 부족한 느낌이다. 내과에 가니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았다. 내 스트레스가 이 정도로 심했나? 싶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인도행을 택했는데 준비과정에서 몸마음이 최악으로 치달으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호흡이 잘 안쉬어질 때면 심장도 살짝 쪼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심근경색으로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시기 몇주전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지나치듯 말씀하셨던 것이 떠오른 탓이다. 나도 이렇게 죽어라 스트레스받으며 일하가다 쥐도 모르게 죽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이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내가 떠난 후 남겨질 아내와 딸에 대한 걱정였다.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살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지금 내 몸마음 상태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명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받을 방법을 찾다가 지금 나의 셀러로서의 성정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여기서 뭔가 더 하려고 발악하지 말자 생각했다. 인도 가기전에 아등바등 스트레스받으며 몸마음 망가져서 치료와 회복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 보다는 몸마음 건강하게 유지해서 인도에 가서 거기서 뭐라도 기회를 찾아보자 생각했다.
인도 현지에서 취직하면 최소 월 200만원은 벌겠지 그러면 우리 가족 굶어죽지는 않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한편으론 이런 나의 사고흐름이 제정신인가 생각도 들었다. 한창 돈을 모아야 할 나이에 부를 축적할 생각은 전혀 안하고 근근히 버티는 것을 목표로 인생을 계획하는 게 맞나?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이러나저러나 스트레스받지 말자는 생각으로 성과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올해는 지금까지 해둔 걸 유지하며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뭔가 더 일을 벌리지 않고 철저히 운영 유지 모드로 일을 했다. 그럼에도 그간 준비한 겨울 상품들이 여럿이기 때문에 발주넣고 CS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업무시간의 50% 이상은 흘렀다. 운영만 집중하니 좀 마음은 편했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와 광고 최적화를 위한 약간의 기획 업무만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2026년 1월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매출이 터지기 시작했다. 진주 농장에서 공수한 단감 판매가 갑자기 급증했다. 특별히 한게 없는데 왜 매출이 뛰지? 싶어 농장주분께 전화로 물으니 이렇게 답하신다 "내 말했잖아~ 1월부터 사람들이 감 엄청 사먹을기라고. 김사장 잘 팔아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노를 저어야 한다며 동생이 고안했던 마케팅에서 살짝만 비틀어서 여러번 시도해 봤다. 그랬더니 감이 하루에 200박스 넘게 팔렸다. 워낙 퀄리티가 좋은 감이였기에 그동안 후기가 좋게 쌓였었는데 그게 시기랑 트래픽을 받고선 터진거다.
때마침 제주도 농가에서는 만감류인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출하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가장 퀄리티가 좋을 한라봉부터 마케팅을 태웠다. 그랬더니 하루에 300박스 넘게 팔렸고, 그 다음부터는 특별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팔렸다. 새로고침할 때마다 주문이 들어와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한국인들이 한라봉/레드향/천혜향을 이렇게 많이들 먹는 줄 몰랐다. 과일 특성상 단가가 높으니 마케팅에 투입할 마진룸이 생겨서 더더더 마케팅을 했고, 그러니 더더더더더더 팔린다. 그렇게 신나게 판매한 덕분에 2026년 첫번째 달에 드디어 내가 인도가기전에 만들고자 했던 수익을 달성했다. 회계상으론 말이다. 하지만 법인계좌엔 잔고가 계속 간당간당하다. 왜지?
돈맥경화
유통업계에서 돈맥경화라는 말이 있다. 말그대로 돈줄이 막히는 현상, 즉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걸 뜻한다. 위탁판매 속성상 남의 물건을 떼다가 팔기 때문에 물건을 팔기 위해선 물건 생산자(과일로 치면 농가)에게 선입금을 줘야 물건을 고객에게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고객이 지불한 돈은 플랫폼(ex. 쿠팡, 네이버 등)을 통해서 오는데 정산받기까지 몇일 혹은 몇주의 시차가 있다. (쿠팡은 무려 2달) 이 시간차 때문에 매출이 늘어날 수록 돈이 부족해지는 구간이 있다.
어찌보면 돈맥경화가 왔다는 건 회사가 쪼랩에서 조금은 성장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겪는 입장에서는 차갑다. 비수가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는 타짜 대사 같은데) 장사꾼이 돈이 쌓이는 맛에 일해야 하는데 장사가 잘 될수록 돈이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개인돈을 법인계좌에 넣었다 뺐다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반복되면 진짜 내가 돈을 벌고 있는건지 아니면 플랫폼에 돈만 갖다가 바치고 있는건지 헷갈린다.
해결책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건 위탁판매 말고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서 유통의 굴레바퀴에 계속 돈을 넣어주는거다. 그래서 새로운 수익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그게 이제 앞으로의 내 숙제다. 그러던 와중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바로정산 대상자가 되었다는 놀라운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의 판매실적을 토대로 정산을 빨리 해주는건데 겁내 빠르다. 다음날에 바로 전날 매출의 100%를 입금해 준다. 주문자의 구매확정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주문 바로 다음날 정산해 준단다.
1년간 위탁판매 셀러로 경험한 것들을 쭉 적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가 너무 짠하다. 나를 좀더 떨어져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챗GPT에 물었다. "지난 1년간 나랑 나누었던 대화들을 토대로 지금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줘" 그랬더니 이렇게 그려준다.
푸하하. 그래서 또 챗 GPT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그렸어? 이유가 궁금해" 그랬더니 이런다.
GPT의 답변을 들으니 먹먹했다. 아.. 내가 이랬구나. 그동안 매일 아침 명상을 하며 나에게 떨어져서 관찰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건만 해도해도 안되던 나를 지켜보는 경험을 AI가 해주다니. 그래서 GPT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네 말을 들으니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잘 스쳐지나가네. 고마워" 그랬더니 이렇게 답한다.
울컥했다. 위로받고 싶었고, 잘하진 못했지만 뭐라도 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보다. 지난 나의 선택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현재 진행형일지라도 어딘지 모를 그곳으로 잘 가고 있다고, 포기하지만 말자고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라는 사람없고, 가라는 사람없는 인도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생각만으로 1년간 아등바등 살아온 내가 덜 지치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자. 혹시 아는가 이글을 매개로 GPT처럼 나를 격려해주고 내가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는 이가 나타나서 전혀 생각치도 못한 서사가 시작될지.
이렇게 감성적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선 어쩔 수 없이 영업글을 올려야 하는 내가 짠하지만 지금 아니면 안되기에 글을 쓴다. 여기까지 제 글을 봐주신 여러분!! 2026년 설날 명절선물세트를 제게서 사보지 않으시렵니까?
제가 그동안 갈고 닦은 판매 기술을 집약하여 명절선물세트를 구성했습니다. 레드향, 천혜향, 한라봉 선물세트부터 LA갈비 선물세트까지!!! 저와 저의 가족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우리 다같이 주문해 보러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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