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을 꿈꾸며
인도에서의 생활비 마련 방법으로 온라인 위탁판매를 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친동생이 10년간 온라인 유통업을 본업으로 해서 돈을 짭짤하게 벌고 있서 수익성을 확인했고, 동생의 사업 노하우를 바로 배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였다. 그래서 동생에게 "나를 거상으로 만들어 달라"며 1:1 밀착 멘토링을 부탁했다.
동생이 10년간 체득한 사업 노하우를 한번에 받아들이려니 과부하가 걸릴 때가 많았다. 동생 입장에서 익숙한 내용을 읊어주면 난 이미 초장부터 '뭔소리여..' 싶어 감을 못잡고 눈의 초점이 나가있다. 그러면 동생은 항상 말했다. "형. 지금 이해안되도 그냥 해. 내가 세팅해 준 걸로 몇주 운영하면 나중에 이해할거야." 라며 쭉쭉 진도를 뺐다. 내 멱살을 붙잡고서 나는 뭔지도 모르는 곳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입벌려~ 먹어! 말하며 "이렇게까지 떠먹여 주는데도 못먹으면 형 책임이야." 하는 형국였다. 그러곤 대거리할 수 없게 말을 맺는다. "인도 가야지?"
그렇게 동생의 밀착 멘토링을 받으며 2025년 1년간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팔았다. 과일, 선풍기, 온풍기, 공산품, 요가제품, 해외 공산품 등을 쿠팡, 지마켓, 당근마켓, 네이버, 쇼피파이 등등에 올려서 한국, 호주 등에 판매했다. 나처럼 파는 사람을 셀러라고 부르는데, 제품과 판매 방식(플랫폼)의 조합에 따라 셀러마다 맞는 위탁 판매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지난 1년은 나에게 맞는 판매방식을 찾기 위한 학습과 실패의 연속이였다. 때문에 무자본 창업 아이템이라고 불리는 위탁판매에서 적잖은 손실을 보면서 판매의 기술을 익혔다.
이후의 글은 나에게 맞는 판매 방식을 찾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 제품을 판매하며 겪었던 일들의 월간 기록이다. 정말 처절하게 실패했고, 좌절했고, 그럼에도 계속 나에게 맞는 판매 방식을 찾기 위해 도전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이렇게 난 파는 사람이 되어갔다.
2025년 1월
동생의 가이드를 받으며 법인을 설립하고 쿠팡 셀러 등록부터 했다. 어차피 길게 보고 시작하는 거면 처음부터 법인으로 설립하라는 동생의 권유가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개인사업자로도 간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데 법인설립이라니. 그래도 배우기로 했으니 스승의 말을 따라야지 싶어 법인을 설립했다. 사명은 agoy이다. 딱히 생각나는 법인명이 없고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사업이 아녀서 지금 결정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yoga를 스스로 떠올리고 싶은 마음에 yoga 스펠링을 거꾸로 해서 agoy라고 이름을 정했다. 쓰고 보니 발음이나 보기에 나쁘지 않다.
이후에 통신판매업 신고, 사무실 계약, 쿠팡 셀러등록 등등 지난한 행정절차와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행정 시스템이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편하고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하는 일인지라 느리고, 불필요한 절차 투성에다가 결정적으로 맥북에서 안되는 게 넘 많다. 뭐 때문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자주 빡쳐서 책상을 꽝꽝치며 소리지르며 화냈던 장면의 기억이 여럿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낼 일이 많을 일들이 아녔을텐데. 뭐 때문에 빡쳤을까?
그외에 셀러 업무를 위해 뭔지 모를 무수한 사이트와 오픈카톡방을 동생이 전해주었고 가입했다. 오픈카톡방이 이렇게 활발한 줄 몰랐다. 뭔 정보랑 질문들이 많은지 처음엔 모두 정독했는데 며칠 그러다가 포기했다. 필요할 때 보거나 운명처럼 얻어걸리는 정보의 타이밍에 기댈 수 밖에.
첫번째 판매제품으로 동생이 꼬막을 권했다. 그래서 꼬막 상세페이지 작업을 위해 꼬막을 주문해서 집에서 요리조리 예쁘게 촬영하고 그 사진을 디자인해 줄 디자이너 알바 공고를 올려서 포폴분석하고 처우 제안하는 일련의 채용과정을 거쳤다. 채용을 하니 자연히 회사 소개를 써야 했는데 딱히 쓸말이 없더라. 돈벌라고 만든 회시지 뭔 소개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세페이지 기획이 참 낯설었다. 꼬막이 꼬막이지 뭘 더 쓰란 말인가. 아무리 특별해 봤자 꼬막이요, 다른 셀러도 같은 공급업체에서 받아서 쓰니 차별성이 있을리 만무하니 뻔하고 흔한 내용으로 가득찼다. 영 흥미없는 일이다. 그래서 GPT에게 기획을 맡길까 하다가 그래도 첫 작업이니 내가 직접해야 일을 배우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기획해서 디자인이 나왔다.
동생의 멘토링과 별개로 온라인 커머스에 대한 독학도 병행했다. 동생이 모든 커머스 영역을 경험한 것이 아녔기에 나 스스로도 개척할 영역을 찾아볼 심산였다. 주로 GPT랑 대화하며 이런저런 영역을 탐색하던 중 '드랍쉬핑'이라는 것에 눈길이 갔다. 쉽게 말해 중국산 제품을 미국이나 GDP높은 나라에 판매하는 중계무역이다. 이를 위해 자사몰을 만들어야 하고 대부분 쇼피파이라는 플랫폼으로 자사몰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카페24보다 훨씬 고도화된 툴인데, 어느 정도의 학습이 선행되어야 실전에 써먹을 수 있어 보였다.
이런 니즈 때문에 고가의 온라인 강연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광고하기 위한 강사들의 미끼 콘텐츠가 유튜브에 여럿 있었다. 그때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한 유튜버의 드랍쉬핑 콘텐츠를 유심히 봤고,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신규 수강생 모집 공고를 봤다. 소수정예로 4개월간 빡시게 가르친다는 내용였다. 수강료가 어마어마했는데 당시엔 셀러로서의 빠른 학습이 필요했고, 동생이 커버하지 못하는 글로벌 시장 타겟 커머스라 잘만하면 훨씬 큰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의욕이 일었다. 투자다. 배워서 남주냐 등의 생각으로 질렀다. 당시에 드랍쉬핑이 국내엔 익숙치 않고, 이걸로 돈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선점해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첫 수업을 앞두고 1월이 끝났다.
2025년 2월
배움의 달. 쇼피파이 수업을 재밌게 듣기 시작했다. 이론상으론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초집중 모드로 수업에 임하고 빠릿빠릿 과제하면서 진도를 쭉쭉 뺐다. 동생이 당근에서도 물건이 잘 팔린다며 당근판매 수업을 추천해서 신청했다. 어떤 유튜버의 강연인데 나름 진정성이 느껴졌고, 쇼피파이 강연보다는 저가여서 이 역시 투자다라는 생각으로 결제했다.
쿠팡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꼬막에 이어 태국 망고와 대저토마토도 상품페이지에 올려서 수익을 내기로 하니 자연스레 광고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노하우가 필요해서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를 여러개 들었다. 대부분 유료 강연으로 꼬시기 위한 무료 강연들여서 유료 강연을 들을까 하다가 동생이 일러주는 가이드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슬금슬금 매출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때가 제일 에너지가 높았다. 본격적인 운영 전의 학습 단계여서 현실과 괴리된 이론상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빨리 배움을 마쳐서 실전에 들어가서 떼돈을 벌 생각에 흥분의 나날을 보냈다.
2025년 3월
매출이 나기 시작하니 기장 처리가 필요해서 세무사를 결정했다. 세무통이라는 앱에서 의뢰를 올리시 수십명의 세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중 가격도 좋고 대응방식이 좋았던 소규모 세무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선정산을 받기 위해 선정산업체랑 계약도 하고 법인통장도 개설하며 법인카드도 발급받았다. 때마침 이때부터 드랍쉬핑 메타광고를 집행해야 해서 광고비 지출이 용이해졌다. 물론 그만큼 돈이 쭉쭉 빨리겠지.
드랍쉬핑 첫 상품은 블루투스 자물쇠였다. 광고영상 촬영도 용이해 보였고, 수업때 배운 것을 빠르게 적용하기 좋은 아이템같았다. 물건 사용 영상을 촬영하고 캡컷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편집해서 상품 광고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을 배우고, 이후엔 메타 광고를 올리고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전부터 메타 광고를 제대로 익히고 싶었는데 정말 디테일한 부분까지 학습할 수 있어서 너무 흥미진진하게 몰입해서 수업을 들었다.
쇼피파이가 워낙 잘 갖춰져서 픽셀을 심고 추척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전에는 이런 픽셀 심고 추적하는 걸 몰라서 마케터와 개발자들에게 쩔쩔대며 부탁하며 일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 뚝닥뚝닥할 수 있으니 만랩이 된 것 같아 스스로 뿌듯했다. 그리고 첫 주문도 받았다. 미국 아이오와에 사는 누군가가 결제를 했다. 진짜 신기했다. 정말로 미국인이 내가 올린 걸 구매하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글로벌 시장을 다 먹을 수 있겠다는 포부로 가득찼다.
유통사이클을 몇바퀴 돌리는 경험을 하니 동생이 그 다음 단계로 대량상품 등록해서 판매하는 세팅을 추진했다. 몇천건을 대량으로 등록하고 판매하는 건데 처음 프로세스를 들으니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동생이 하라는 대로 그냥 따라했다. 내 멱살잡고 하드캐리 한 건데, 지금 돌이켜보면 동생이 인내하며 날 잘 끌고 갔구나 싶은 고마움이 인다. 기존에 동생이 판매하던 제품과 충돌되면 안되기 때문에 안겹치는 상품으로 고르다 보니 B급 브랜드의 제품들 위주로 소싱이 되었다. 상품을 등록할 당시엔 누가 이런 걸 사나 싶었는데 왠걸 판매를 시작하니 팔린다.
2025년 4~5월
계절가전 제품으로 확장했다. 계기는 쿠팡 셀러의 유료강연였다. 동생이 평소 역량이 좋다고 평가한 쿠팡셀러가 강연을 오픈해서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셀러는 우리가 판매해 보지 못했던 계절가전을 주로 판매했다. 덥고 추운 날씨만큼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에 확실한 제품이 없다는 것이 이 셀러의 모토였다. 그래서 곧 시작될 여름을 겨냥한 다양한 냉방제품 혹은 장마를 겨냥한 제습제품을 소싱하고 유통하는 것에 대한 강연였다. 그동안 과일은 도매 판매자를 통해 어렵지 않게 소싱했기 때문에 가전제품은 어떤 프로세스인지 궁금했는데 강연 덕에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하게 되었고, 이를 잘 팔수 있게 자체 브랜드화하여 판매하는 팁까지 배웠다.
배운대로 여름에 판매될 제품들을 소싱하여 접이식 선풍기 공급처에서 소싱을 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자체 브랜드화하여 판매하기 위해 상품페이지를 아고이라는 브랜드를 가전제품으로 포지셔닝해서 디자인까지 했다. 그렇게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왠걸, 이 공급처에서 누군가 다량으로 구매를 하는 바람에 초기 재고가 판매게시 하루만에 소진되어 재고 재입고까지 한달의 공백이 발생했다. 지금이 한창 팔아야 하는 시즌인데 재고가 없다니..
부랴부랴 다른 선풍기 제품을 소싱했는데 가격대가 너무 비쌌다. 한대에 17만원 정도하는 신일 브랜드 제품였다. 신일 브랜드여서 내 자체 브랜드화도 안되는 제품였기에 꿩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큰 기대없이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이게 생각보다 잘 팔린다. 고가의 선풍기라서 자금 회전에 부담이 갔지만 그래도 매출이 늘어나는 경험에 목말랐던터라 열심히 팔았다.
이렇게 계절가전으로 확장되던 것과 동시에 드랍쉬핑 실적은 지지부진했다. 트럼프가 갑자기 관세전쟁을 시작하면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세금이 붙고 세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중국의 셀러들이 미국으로의 배송을 꺼리거나 공급가를 큰 폭으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드랍쉬퍼 입장에선 상품의 종류가 줄어들고 마진률이 떨어지니 수익성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것보다 본질적으로 드랍쉬핑의 한계를 체감했다. 처음 1~2개 파는 경험을 짜릿하게 했지만 다량의 판매를 통해 유의미한 볼륨의 수익을 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드니 난항였다. 일단 메타 광고액 대비 매출액 즉 로아스를 수익성 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마켓, 쿠팡 등등의 플랫폼에서는 이미 고객들이 물건을 살 생각이기 때문에 광고비 효율이 잘 나오지만, 페이스북 인스타 유저들은 구매만을 목적으로 체류하는 유저가 아니기 때문에 구매 전환율이 낮을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로아스를 끌어올려서 수익성을 맞추는 것이 고난이도의 작업이라는 것을 그제사 깨닫게 되었다.
드랍쉬핑을 처음 배울 때는 프로세스를 익히고, 스토어를 세팅하고 광고를 돌아가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였기 때문에 실적에 대한 부담보다는 진도를 나가는 것이 주된 것이여서 신나게 배웠지만 이제 실제 수익을 내야 하는 단계로 오니 큰 벽을 실감하며 좌절하기 시작했다. 드랍쉬핑 강연 수강생들 5명이서 매주 온라인 스터디를 하며 각자의 레슨런을 공유하기는 했으나 우리 수강생 중 그 누구도 수익을 내지 못하니 서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한두명이라도 수익이 빵빵 터지면 되는구나! 라는 기대라도 할텐데 만날 스터디 때 만나면 왜 안되죠? 라며 서로의 우울과 실망감만 마주하게 되니 의욕이 떨어져갔다.
당시 드랍쉬핑 1:1 멘토링의 멘토는 이 수업을 듣게된 계기였던 유튜버였는데 최선을 다해 본인이 아는 지식 그리고 내가 궁금해 하는 것에 성실히 답변해 주었다. 그 과정에 보너스처럼 미국 틱톡 계정을 만들어서 미국인들 대상으로 틱톡으로 SNS 채널을 운영하며 커머스로 확장하는 경험치를 전수해 주었다. 그가 큰 돈을 들여 시행착오를 거치며 습득한거라며 아주 은밀하게 전수해 주었고 그 방법으로 어떻게 하다보니 미국 틱톡 계정을 갖게 되었다.
근데 이 틱톡에서 뭘 올려야 하지? 고민하다가 나랑 아내가 요가하는 영상을 올려보자 생각했다. 방에서 로프동작하는 것들이랑 아내가 아사나 하는 동작들을 큰 편집없이 올리기 시작했다. 틱톡은 팔로어가 없어도 조회수가 1천건 안팎은 수월하게 잘 나오더라. 댓글도 종종 달렸는데 의외로 우리 로프랑 프레임을 보고 어디서 사냐며 구매 의사를 내비치는 댓글이 종종 등장했다. 틱톡이 커머스 친화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유저의 직접적인 반응을 접하니 어라? 이거 우리가 계속 요가하는 영상 올리면서 요가 도구들을 팔아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6월
얼래벌래하다가 벌써 일년의 반이 지나고 있더라. 그런데 난 아직도 유의미한 매출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몇십만원 정도 선에서 그치고 있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올해 초에 매출 계획했던 월수익은 고사하고 마이너스 적자다. 매출도 크지 않은데 이마저 광고비 조절을 못하고 있어서 광고비가 마진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여름 시즌에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복숭아와 자두를 잘 준비해서 매출을 크게 키워보기로 했다. 큰 매출은 쿠팡에서 날거라는 동생의 조언으로 신비 복숭아 판매를 빨리 준비해서 마케팅에 거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쿠팡 상위 노출은 실패했고, 매출도 미진해서 적자액만 커졌다
반복되는 실패에 의욕이 저하되었고 무기력해졌다. 당시 내 심정을 끄적여 둔 것을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막막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걸까? 수개월째 수입은 없고 야심차게 시작한 셀러로서의 성적표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진짜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남들은 부업으로도 월 몇백씩 번다고들 하던데 난 회사 때려치우고 전업으로 하는데 왜 이따위 성적을 받을까?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날 던져두고 억지로 일하며 고통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허우적대니 올초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인도행을 생각했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창 일하며 몸값을 띄울 나이에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 성과도 나지 않는 이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가족과 인도로 가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인데.. 차라리 빨리 인도로 가서 거기서 새로운 돌파구 혹은 모멘텀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근데 이게 결국 현실도피는 아닐까? 현재의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환경을 바꿔서 태세를 지켜보자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2025년 7월
상반기를 결산해 보니 이래저래 과일 판매에선 큰 재미를 못봤고, 드랍쉬핑은 메타 광고비로 엄청난 적자를 봤으며 그나마 계절가전과 가공식품 매출이 상쇄를 해서 상반기 누적 적자액은 500만원였다. 그간의 성적을 숫자로 마주하니 정신이 또렸해졌다. 힘들다고 징징 짜지 말고 잘한거 못한거 솎아내서 다시 도전하자 마음먹었다.
아내에게 사업 보고 미팅을 제안했다. 반년간 내가 수입을 내지 못해 아내가 번돈으로 가계를 지탱하고 있었기에 나로선 아내가 이 사업의 주주라 생각했고, 인도에서의 생계가 이 사업에 걸려 있으니 가족 일원으로서 현재 진행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내에게 보여준 문서의 일부는 이렇다. (숫자가 적힌 문서는 공개를 못하는 점 양해를. 넘 부끄럽)
사업보고를 들은 아내는 의연했다. 수고했네. 라며 본인의 업무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들은 거들테니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카드를 건네며, 앞으로 이걸로 식비랑 교통비 등을 쓰라고 한다. 나의 초라한 사업 성적표에 옐로카드를 받을 줄 알았는데 신용카드를 받다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2025년 8월
사업보고 마지막 회고장에 적힌 바와 같이 그간 학습이라는 명분으로 제품과 플랫폼을 확장하는 것을 멈추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고, 추가로 동영상 마케팅 채널 구축에 힘쓰기로 했다. 그래서 8월 정말 더웠던 올여름엔 요가를 주제로 열심히 영상 촬영하고 편집하며 마케팅 채널을 구축해서 요가 제품을 판매하는 시도를 했다.
아내와 딸을 동원해서 요가 동영상을 기획 촬영해서 올리고, 요가 제품 판매를 위해 인도 회사에 연락해서 드랍쉬핑을 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서 자체 쇼핑몰도 쇼피파이로 구축해서 열심히 마케팅 퍼널을 만들어 미국시장을 타겟으로 메타 광고도 집행하고, 유튜브로도 운영했다.
유튜브 레퍼런스가 쌓이니 좀더 잘 기획하고 싶은 욕심이 났고 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 유튜버의 콘텐츠를 봤는데 너무나 일목요연하게 유튜브 운영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 등을 정리한 것을 봤고 그의 유료강연까지 듣게 되었다. 여기가 또 신세계였다. 주먹구구식으로 감에 의존해서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기획하고 리뷰하며 개선해 나가는 일련의 프로세스에 감탄했다. 좋아! 나도 이렇게 해보자 마음먹었다.
그 타이밍에 500만 유튜버 지인인 한솔님을 만나서 조언을 구했다. 그간 내가 만든 영상을 보여주며 장단점과 개선점 등의 의견을 들었다. 요컨데, 요가 콘텐츠가 쇼츠랑은 안맞는다. 쇼츠는 단기간에 이목을 끌어야 하는데 그간 내가 만든 요가쇼츠는 넘 느려서 금새 이탈할 거라 아예 롱폼이 맞을 거라고 한다. 그외에 이런 저런 조언을 들으니 요가로 콘텐츠를 지속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인도에 가서 롱폼으로 하는 것이 콘텐츠 퀄리티나 반응면에서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방향으로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수업을 통해 다양한 쇼츠 레퍼런스를 찾다가 해외 틱톡으로 추정되는 콘텐츠를 공정사용으로 가져와서 짜깁기로 영상을 만느는 레퍼런스가 인상적이라서 이걸 내가 쇼피파이를 공부하며 접했던 사이트를 활용하여 쇼츠를 제작해 봤다. 학습과 병행하면서 하니 시간이 꾀나 걸렸지만 영상 작업이 적성에 잘 맞더라. 전공이 신방과라 적성을 찾은 느낌도 들었고. 그렇게 썰형으로 쇼츠를 만드니 자연스레 제품 판매랑도 연결시켜서 유튜브 쇼핑으로 매출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돌고 돌았지만 쇼피파이 공부할 때 배운 걸 써먹어서 아직은 블루 오션으로 보이는 유튜브 쇼핑에 집중해 보자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튜브 쇼핑에 집중하려던 때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나 과일로 매출내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라며 당일 날짜 주문량을 보여줬는데, 사과가 하루에 1천 박스 이상 판매되고 있었다. 과일로 하루에 몇천만원대 매출을 낸다는 셀러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실제로 동생이 주문받은 걸로 보니 이게 되는거구나 싶었다.
"형, 일단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자."라며 또다시 내 멱살을 붙잡고 과일판매로 동생이 끌고갔다. 계획을 세우자마자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나 흘러가는대로 따라가자 싶어 유튜브 쇼핑은 잠시 멈추고 과일판매를 위해 발로 뛰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