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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an 16. 2017

연희동 마을 사람들

코드명 470

작년 9월경으로 기억한다. 연희동 곳곳에 '선영아 사랑해' 마냥 정체불명의 포스터, 엑스배너, 현수막이 출몰했다. '연희동 100인의 마을계획단 모집'이라는 다소 촌스러우면서도 정감가는 카피의 유인물에 첨엔 "뭐야?" 하고 별감흥없이 지나쳤다. 이후 몇주가 지나도 이 유인물들은 사라지지 않고 출퇴근길 시야에 들어왔다. 이 정도 노출량이면 봐줘야 인지상정이겠다 싶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연희동 마을의 문제점을 주민들이 나서서 바꾸어 가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마을'이란 단어가 날 설레게 만들었다. 평소 '어디살아요?' 라는 질문에 'OO동이요~' 라고 답해봤지 '어디어디 마을에 살아요.'라고 얘기해 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연희동 마을이란 단어가 참 좋았다. 괜시리 나까지 순박해지고,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한마디 더 건네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단어다.



지원해볼까 말까 고민하던 즈음 신청서가 담긴 소개 책자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여기 홍보 담당자는 내 몸에 쿠키(cookie)라도 심어둔걸까? 이렇게 정확하게 타게팅하다니. 소개 책자에 기재된 진행 일정을 보니 아주 타이트하지도, 루즈하지도 않은 적당한 페이스의 프로젝트였다. 오호라~ 진짜 지원해볼까?



요래 생긴 신청서를 슥슥슥 채운 다음에 사진을 찍어 마을 계획단 옐로아이디로 전송하니 신청 완료. 마을행사에 옐로아이디까지 활용하는 걸 보니 더더욱 매력도와 기대가 커졌다. 관심분야란은 마을문화로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 단위 플리마켓이나 운동회 등의 문화 이벤트를 하면 재밌겠다는 큰 고민없는 선택였다.


그리고 몇주뒤 연희동 주민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마을 계획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본교육을 이수해야하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였다. 오~ 이제 시작되는구나. 마을 계획단에 어떤 분들이 참석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시간여서 큰 기대를 안고 기본교육에 참석했다. 참석하신 분들은 예상보다 연령대가 높았다. 동네 반상회 느낌이랄까? 약간 늦게 도착한 탓에 자리를 못잡고 서성이고 있자니 어떤 아주머님께서 나를 강하게 끌어 당기며 "총각, 여기 앉아!!" 그렇게 날 옆에 앉히시고는 흐뭇해 하셨다.



이름이 적힌 명찰이 있고 거기에 본인의 별명을 적으라고 했다. 뭐라고 하지? 이 마을과 연관된 나의 별명이어야 하는데.. 고민 후 '470'으로 별명을 정했다. 나의 출퇴근을 책임지는 버스가 470번이다.


각자의 별명으로 주변사람들과 자기소개를 나눈 후, 연희동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30년 넘게 연희동에 살아오셨다는 토박이부터 나같은 뜨내기까지 연희동 내공의 정도가 달라서였을까? 서로 알고 있는 연희동에 대한 정보가 각양각색였다. 무엇보다 연희동에 대한 다양한 공간 지각이 흥미로웠다. 나에게 연희동은 사러가마트 일대였지만, 다른 주민에게 연희동은 홍제천이요, 누군가에겐 안산였다.



교육의 마지막 순서에는 연희동 지도가 등장했다. 연희동 내에서 추천하고 싶은 명소는 지도 위에 노란색 포스트잇으로 표시하고, 불편한 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장소는 주황색 포스트잇으로 붙여서 그 이유에 대해 상세히 적은 후 조원들에게 공유하는 시간였다. 난 추천하고 싶은 명소로는 지금은 없어진 '루엘드파리'라는 크로아상 전문 빵집을, 개선이 필요한 곳은 연세대의 통행료 징수를 꼽았다. 출근길에 가끔 택시를 타는데 연세대를 가로길러가려면 통행료만으로 3천원을 내야한다. 고작 10분 지나가기 위해 징수하는 요금치고 너무 과하다 싶었는데 이번 기회를 빌어 그 불만을 표출해봤다.


기본교육 이후에는 발대식, 포틀럭 파티 등 다양한 일정들이 진행되었지만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게 2017년을 맞이할 때 즈음 분과를 나눠서 본격적인 마을 계획 의제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선택할 수 있는 분과는 이랬다.


네트워크: 주민 모임, 커뮤니티 공간, 교육, 장터, 행사, 소식지 발간 등

교통: 신호체계, 주차, 대중교통 점검 등

환경: 에너지 자립, 쓰레기, 생태지키미, 반려동물, 청소 등

문화예술: 예술활동, 예술행사, 미디어, 지도 만들기 등


 호기심에 지원할 당시만해도 재미있어 보이는 문화예술쪽에 지원의사를 표했는데 본격적으로 참여할 때가 되니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고, 계획단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과에 관심이 갔다. 바로 교통분과. 카카오택시 업무를 맡고 있기에 연희동 지역의 교통 문제를 풀어보며 업무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내 전문성을 연희동에 기부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였다.



첫 분과 모임이 열린 1월 5일. 10여명의 마을 계획단원들이 연희동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모였다. 뮤지컬 배우이신 한 단원의 사회로 각자를 소개하는 레크레이션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았고 연희동 마을계획단에 오게된 동기 등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분과장과 간사를 선출하는 시간. 난 간사 자리에 자원했다.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연희동 마을계획단 교통분과 간사가 되었다. 연희동을 스마트 모빌리티의 메카로 만들어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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