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문자가 왔다.
짐작대로 어르신들의 면회 금지기간을 연장했다는 문자다. 코로나19가 막 시작되었을 때는 면회를 10분 이내로 제한했었다. 면회 제한 혹은 금지 문자마다 아버지의 사진이 따라온다. 제법 먹음직한 음식이 담긴 식판 사진이 따라올 때도 있다. 어르신이 이렇게 잘 드시고 계시니 보호자는 걱정 말라는 의미의 사진이다. 침대 위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이불을 들추면 근육이 빠져 약하기 그지없는 두 다리가 구부정한 채 놓여있겠지. 네모난 사진 속에 갇혀 소식을 전하는 아버지..
청년에서 징검다리 중년도 없이 훅 노년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굽이진 인생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음을 헤집는다. 낯가림이 심해서 친구 하나 없는 아버지가 낯선 사람들과 한 집에 산다. 매일 집을 나서던 자유로운 영혼의 아버지가 낯선 방에 놓인 한 뼘 침대에서 하루를 보낸다.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고 같이 잠을 잔다.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집을 두고도 낯선 사람 속에서 삶도 죽음도 아닌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계실까? 아무것도 모르고 자식들이 왜 안 오나 문만 뻐끔뻐끔 바라보는 건 아닐까?
엄마는 근육이 다 빠진 다리에 살을 찌워 병원 문을 넘었는데 아버지는 당신의 침대 모서리도 넘지 못한다. 다리에 찌울 살을 배로 보낸 아버지. 그 힘 좋던 아버지는 요양원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되어 걷기를 멈췄다. 요양원에 걸맞은 무기력한 노인이 되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을 보낸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끔찍했을까.
살아보니 쉰은 꿈도 꿀 수 있는 나이
면회가 금지되니 아버지가 더 보고 싶다. 청개구린가. 늘 반대로 행동하던 청개구리. 엄마가 죽자 그제야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유언대로 엄마를 냇가에 묻고는 비만 오면 운다는 동화가 떠오른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 이놈의 코로나만 아니면..
글이라도 알면 가끔 책이라도 읽을 텐데 남들 다 아는 그 흔한 것도 모르는 내 아버지. 평생을 문맹으로 힘들었을 아버지.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그 마음에 한은 오죽 깊을까? 아버지의 가슴팍에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다.
아버지는 쉰을 넘어갈 즈음 백내장 수술을 받더니 긴 노년으로 들어갔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일에서 손을 뗀 아버지. 아버지가 놓은 가장의 짐은 남은 가족에게 얹혔다. 어깨에 얹힌 짐이 버거울 때마다 아버지가 미웠다. 무능력한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의 아픔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글을 모르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살아보니 쉰은 꿈도 꿀 수 있는 나이였다. 그 젊은 나이에 아버지는 노인이 되었다. 개미지옥 같은 노년의 늪에 빠져버렸다. 아아.. 나의 아버지
유리창 밖으로 흘러가는 세월
아버지 방에는 벽 모서리를 따라 타원형의 커다란 창이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밖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한 자리 남았다는 침대가 이 방에 있었을 때 아버지의 작은 행운에 감사했다. 창으로 사계절을 느꼈을 아버지는 매일 무슨 생각을 할까? 핸드폰에 붙어온 사진을 다시 본다. 이제 막 밥이라도 드셨는지 부른 배를 찍힌 아버지. 굳이 이불을 들춰가며 들이대고 찍어야 했을까. 낯가림이 심한 아버지의 표정 없는 얼굴 너머 수만 가지 이야기가 읽힌다. 만날 수 없어 더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 그 무엇도 포기하지 마세요! 저 유리창 밖에서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