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을 나갔다
1. 남편이 집을 나갔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십여년 전에도 남편은 집을 나갔었다. 첫째가 열세 살, 둘째가 아홉 살이었다. 육아는 마쳤다고 생각한 순간 선물처럼 태어난 셋째 꼬맹이가 막 2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가끔 옷을 챙기느라 다녀가고 생활비는 꼬박꼬박 주었지만 일종의 첫 가출이었다. 남편이 나간 그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는 것은 그 후 해가 바뀌고 띄엄띄엄 들르던 남편이 집으로 완전히 돌아왔을 때 알았다.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듬해 슬금슬금 들어온 남편은 머쓱했는지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혼기념일이었던 그날 퇴근하고 온 남편이 외식을 하자고 했는데 내가 단번에 묵살해 버린 것이 이유였다고 했다. 나는 당시 저녁밥을 준비하던 기억만 어렴풋이 있을 뿐 상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엔 머리를 쥐어짠 궁색한 핑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이 정색을 하고 연거푸 얘기를 하니 진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고 밥하고 있는데 그냥 집밥 먹자고 툴툴댔나 싶은 게 나중엔 결혼기념일을 잊은 내가 오히려 미안해졌다. 어쨌거나 죽고 사는 일도 아니고 옳거니 그르거니 멱살 잡고 싸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돌아왔으니 됐다. 여전히 돌이 채 안 된 꼬맹이와 훌쩍 터울이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하루하루 정신줄 잡고 버티기도 힘겨운 시간이었다. 제 발로 나간 남편이 제 발로 돌아와 준 것이 그저 고마웠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랐고 남편이 집을 나갔을 때 나 보다 야무진 동생이 형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조언을 해서 살고 있는 집을 내 명의로 바꾼 것뿐이었다.
원래 키가 훤칠한 남편은 그때 유행이던 헤어스타일(머리에 잔뜩 젤을 바른)을 하고 청바지에 제주의 물빛처럼 푸르른 폴로 카디건을 즐겨 입어선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세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열 살 터울의 동생은 육아에만 정신없는 나(누가 봐도 앞집 혹은 옆집 아줌마였던)와 달리 남편이 집을 나간 것을 예사롭지 않게 느꼈다. 결혼 칠 년 만에 맞벌이로 저축한 돈과 일수를 하던 친정오빠와 동생이 모은 결혼자금을 빌려 함께 장만한 작은 아파트를 달라고 했을 때 남편은 한 마디도 묻지않고 절차를 밟아 내게 증여했다. 덕분에 없는 돈을 빌려 세금을 내야 했지만 등기권리증에 적힌 내 이름 석자가 남편의 빈자리를 다소 채워주었던 것 같다.
첫 가출 후 돌아온 남편은 예전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동안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예전처럼 주말에 자신의 시간을 갖는 대신 평일엔 일찍 들어와 아이와 놀아주었다. 주말이면 등산을 했는데 나중엔 백패킹을 가거나 사이클을 탔다. 이런 남편의 생활은 처음부터 늘 해온 일이었다. 나는 결혼할 때부터 주중에 열심히 일했으니 남편에게도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의 시간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인 내가 이해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혼 전부터 부부란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 나는 믿었다.
연애결혼이지만 알고 보니 남편은 나 보다 세 살이나 어렸고 고작 스물다섯에 결혼한 나이 어린 남편이 안쓰러웠다. 스물일곱에 아빠가 된 남편이 무게감으로 힘들지 않게 때때로 자신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결혼했다고 해서 서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지금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지나친 내 오만이며 착각이었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드라마처럼 그리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그 시간(남편이 집을 비웠던)이 어떻게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 일은 내게 남편에 대한 그동안의 신뢰가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자연스레 남편의 시간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아이들이 태어나도 남편에게는 자신의 주말이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오히려 주말에 가족에게 시간을 내는 것이 뭔가 억울한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주말에 늘 일정이 있었다. 때때로 가족동반을 했지만 계속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산행코스를 남편에게 맞추면 아이들이 벅찼고 아이들에게 맞추면 남편에게 인내가 필요했다. 따라나선 산행이 아이들에게 힘든 기억이 되자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남편은 차츰 휴일의 자유를 다시 찾았다. 처음엔 일요일 하루였다가 나중엔 1박 2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혼자이거나 동호회와 함께였다. 남 보기엔 평일에 일찍 와서 놀아주는 좋은 아빠였다. 나는 나대로 때늦은 육아로 늘 피곤했던지라 남편이 없는 휴일이 나쁘지 않았다. 후회는 늘 그림자처럼 온다. 그때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지나 보니 백 점짜리 부모는 아니었다. 흔히 쓰이는 말로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지만 대개 그렇듯 남편도 나도 부모가 처음이었다. 다시 그때로 간들 달라졌을까? 시간은 잘도 내달렸고 또다시 남편은 집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