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아버지를 못 만난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지난해 추석 한시적으로 면회가 허용되었을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다. 요양원 문자에 따라오는 아버지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어르신은 잘 계신다는 글이 무색하게 볼 때마다 말라가는 아버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두 손을 가즈런히 앞에 둔 그 식탐 많던 아버지의 두 볼은 점점 야위어 간다.
이십오 년 전, 내 생애 첫 집을 장만하여 친정 식구를 초대했을 때 아버지는 작은 화분을 하나 들고 오셨다. 돈이 술술 붙는다는 금잔화였다. 표현을 잘하지 못했던 아버지. 남동생이 "누나는 6남매 중 아버지가 고른 화분 받은 유일한 사람이야."라고 했을 만큼 아버지의 화분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가족 중 나 뿐이다. 아버지는 금잔화가 돈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고 고르셨을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잊고 지내다 불쑥불쑥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아버지,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엄마 아버지를 갈라놓은 자식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요양원에, 거동이 가능한 엄마는 홀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내 생활이 버거운 나는 질끈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러다 한 번씩 이리저리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도 하고 다시 질끈 하는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 못난 딸이다.
내가 더 늙어 거동이 힘들 때 의지와 상관없이 요양원에서 낯선 이에게 몸을 맡긴 채 살다가 죽어간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서러울까. 아버지.. 나는 다만 아버지의 시간이 좀 더 많이 남아있기를 빌고 있다.
나를 딸처럼 여겨주신 시어머님이 요양원에서 6개월 만에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면회 간 날 남편이 아닌 내 손을 잡고 "집에 언제 가." 하시던 어머니. 간절히 바라던 그날 이후 입을 닫으신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후회로 남은 그 날을 떠올리면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 않기를 그저 바라고 있을 뿐이다. 내가 모실 수 있을 때까지 버텨 주시기를. 미안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