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퇴원할 때까지만

by 지안

"이거 누군지 알아?"

"큰딸."

"이름이 뭐야?"


아버지는 내가 그까짓 거 모를까 보냐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 한 번, 엄마 얼굴 한 번 번갈아 보더니 허공에서 시선이 멈춘다. 기대로 들뜬 얼굴은 이내 희망을 버린 얼굴로 변할 것이다.


지난 추석 엄마가 쓰러져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두 달여를 보내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이끌려 요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 엄마가 많이 아파서 그래. 퇴원할 때까지만 여기 계세요. 엄마 퇴원하면 그때 집에 가자."


기저귀를 사용해야 하는 아버지를 자식들이 계속 돌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한 우리는 달콤한 말로 아버지를 설득했다. 명절에 쓰러진 후 집에 못 오고 있는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불안함이 느껴져 산소마스크를 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 사진도 찍어 보여드렸다. 아들은 물론 딸자식에게도 치부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러 날 지난 후에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낯가림이 심한 아버지의 흔들리는 눈빛을 모질게 뒤로 하고 나선 요양원은 우리가 문턱을 넘자마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잠겼다. 층마다 비밀번호가 걸려 아버지 혼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저 문. 아버지의 감옥..


병원에서 두 달여 사경을 헤매던 엄마는 겨우 정신을 차리자 병원 규정상 강제로 퇴원해야 했다. 근육이 다 빠져 걸을 수 없던 엄마는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처음엔 휠체어를 타고 더 지나서야 보조기를 밀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야 하는 좁은 복도에서 매일 보조기를 밀던 엄마는 다시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거추장스럽던 기저귀를 떼고서야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누워만 있으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고 근육이 다 사라지는 것을. 근육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걸을 수 없으면 집에 올 수 없다는 것을. 기저귀를 뗀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집에 올 수 있다는 것을. 걷지 못하면 내 맘대로 내 집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혼자 몸을 추스리기가 버거운 상태였다. 걸음도 불안정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보살피던 씩씩한 엄마는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온 것이다. 자식들은 또다시 모의했다. 아버지는 그냥 요양원에 계시는 게 좋겠다고. 엄마가 퇴원할 수 있기를. 그래서 집에 갈 수 있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했을 아버지. 엄마는 퇴원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올 수 없었다.




올해 설날 아버지는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요양원에서 하루 외출을 한 것인데 아버지는 엄마가 퇴원해서 이제 집으로 왔다고 마음을 놓은 것 같다.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어 오빠와 남동생이 아버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버지는 버티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데 왜 다시 가는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차에 안 타려고 다리에 힘을 풀고 주저앉다시피 했지만 자식들은 안간힘을 쓰며 아버지를 차에 태웠다.


엄마는 지팡이도 없이 가방까지 들고 부랴부랴 밖으로 따라나섰다. 엄마 집 문 앞 골목길은 보도블록으로 울퉁불퉁했다. 내가 지팡이를 가지러 간 사이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가기 위해 불편한 걸음을 급히 옮기다가 보도블록 위로 그대로 넘어졌다. 고개를 든 엄마 얼굴은 입술이 찢어져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병원에 가야 돼. 오늘 잠깐 나온 거야.


엄마는 짐짝처럼 구겨져 차에 실린 아버지를 보며 아직 집에 온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는 엄마 입술을 감싼 손수건 위로 빨간 핏물이 계속 배어 나왔다.


아버지는 체격이 크다. 체격이 큰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슬프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 앉아 있었다.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버지를 태운 차가 출발했다. 나는 이후에 아버지를 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차를 안 타려고 주저앉던 아버지 모습이 마음을 괴롭혔다. 아버지를 만나고 오면 며칠 동안 아버지의 얼굴이 환영처럼 따라다녔다. 집이 뭐라고 집에 가자고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 앉은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점점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엄마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한 번 가야겠다. 어제 누가 제일 보고 싶냐니까 용자 그러더라."

"보면 속만 상하지 뭐 집에 같이 올 것도 아닌데..."


아버지를 두고 나올 때 그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가기가 싫었다. 잘 걸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한 손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내 손을 아프도록 부여잡고 열심히 걷던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따라다녀서 아버지를 보러 가는 게 힘들었다. 어제 교회 다녀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들렀다.


아버지는 용자가 와서 좋다고 했다. 엄마가 웃어보라니까 정말 환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으면 우리 딸 용자하고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라도 했을까. 나는 어느 날 내가 아버지에게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할까 봐 두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와 같이 오고 싶은 마음과 아니야 아니야 하는 마음이 오가는 게 싫다.


'아버지가 화장실만 혼자 다녀도.. 기저귀만 안 차도...' 하면서 이랬다 저랬다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내가 싫다.


집에서 십여분 거리에 홀로 있는 아버지. 생판 모르는 아주머니에게 못 볼 꼴을 보이며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 식탐 많은 아버지는 이 긴 긴 시간을 어찌 채우는 걸까. 용자가 오면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6개월을 요양원에 계셨던 시어머니가 남편은 저만치 두고 내 손을 꼭 잡은 채 "집에 언제 가?" 했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도 그 마음으로 용자를 기다린 건 아닐까.. 집에 못 간다는 것을 안 시어머니는 눈을 꼭 감은 채 다시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급히 가실 줄 알았으면 손잡고 그 문을 나섰을 것을 하는 후회가 아버지에게 다시 반복될까 봐 두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 나랑 집에 가자'라고 속으로만 되뇌는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로 가로막는 마음이 쌈박질한다.


아버지는 알았을까. 지금은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을. 엄마가 퇴원해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 아버지.. 내 아버지.. 아버지가 찾는 용자마저도 "집에 같이 가자." 그 쉬운 한 마디를 못해서 미안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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