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오야붕이 될 수 없는 이유

by 지안

영화 '말모이'등장인물 중에 문맹이었던 김판수라는 사람이 나온다. 김판수는 아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가방을 훔치는데 가방 주인이 '조선어학회' 대표였다. 말은 하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김판수는 그 인연으로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말을 모으던 '조선어학회' 잡다한 심부름을 하게 되고 필요에 의해 한글을 배우게 된다. 일제시대 실존했던 '조선어학회'를 모티프로 한 영화 속 캐릭터 김판수를 보면서 나는 친정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문맹이다.


내가 열예닐곱쯤 되었을 때 "글만 읽을 줄 알았어도 공사판을 지키는 오야붕은 되었을 텐데."라는 엄마의 한숨 섞인 말을 우연히 듣고 아버지가 문맹인 걸 알았다. 오야붕이 소원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야붕은 막일꾼 보다 월급이 많았다. 공사장에 숙소를 두고 자재를 지키는 오야붕이 되려면 글을 알아야 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키울까 애가 닳았을 엄마. 아버지는 문맹을 벗지 못하고 평생 공사판에서 등짐을 날랐다. 그렇게 오랜 기간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오야붕은 커녕 목수도 미장도 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주 힘자랑을 했다. 문맹인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체력뿐이었다. 등짐을 나를 때마다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남 보다 더 많은 모래를 가득 채운 통을 거북이 등딱지처럼 메고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그러나 성큼성큼한 걸음으로 철로 골격만 얼기설기세워 구멍이 뻥뻥 뚫린 가파른 공사장 계단을 오르내렸다.


행여 모래가 새어나갈까 손에 잡은 줄을 움켜쥐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이리저리 돌아 올라 마침내 줄을 느슨하게 풀어 폐 속까지 짓눌렀을 모래를 바닥에 부려놓았을 때 아버지의 속이 얼마나 후련했을까.


등짐을 나른 세월만큼 막걸리를 입에 달고 사신 아버지는 나이 50쯤 되어 백내장 수술을 하고는 그리도 좋아하던 술 담배를 단번에 끊더니 50대 중반부터 긴 노년의 세월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은 것처럼 시력이 약해지면서 힘을 잃어갔다. 힘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초라한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젖은 모래로 가득한 등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동안 삶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본격적인 고행의 삶이 시작되었다.


우리 6남매 대부분은 여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일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은 일을 놓은 것이 아니라 일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나누어진 삶이 버거웠다. 가족이 나누어도 힘겹던 무게를 홀로 지다가 마침내 자유를 얻은 아버지는 아침마다 넘치는 시간을 쓰기 위해 집을 나섰다. 너무 일찍 등짐을 마음에 옮겨 담은 아버지는 그 무게로 가빠오는 숨을 못 이겨 매일 밖에 나가 숨을 고른 것 같다. 힘들고 외로웠을 아버지의 삶.


아버지는 하루벌이라도 구해질까 하며 목적도 없이 무작정 다니다가 저녁이면 모래 대신 해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 아침보다 볼이 꺼져 지친 얼굴이었다. 화장실에 있던 작은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쪼그려 앉아 거친 수세미로 발바닥을 벅벅 문지르던 아버지 등에는 화석이 된 거북이 등딱지가 얹혀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 한참을 더 살고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릴없이 집 밖을 뱅뱅 돌아다니다 해를 지고서야 지친 몸을 누이러 들어온 아버지의 외로움이 등짐을 메던 날의 고됨 보다 못할까. 참 힘들고 외로웠을 시간.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 '말모이'의 김판수처럼 아버지에게도 글을 가르쳐 줄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라도 그리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긴 어둠을 지나 또 다른 어둠 속에 멈춰있는 아버지의 삶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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