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냉장고 내부 램프가 먹통이 되었다. 옮기는 과정에서 문을 해체하더니 조립하면서 문제가 생긴 듯하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짐을 채 정리도 하기 전 잡혔던 갑상선수술로 연락시기(이삿짐센터)를 놓쳤다.
퇴원 후 나무늘보가 되어 세상 가장 적은 에너지로 숨을 쉬었다. 해가 뜨지 않는 밤처럼 까만 나날. 문을 열면 반짝 환해지던 가로로 긴 등이 먹통인 것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램프가 꺼져도 냉장실 작동에 문제는 없었다. 문을 열 때마다 갇혀있던 차가운 냉기가 달아날 뿐이었다.
삶이 흐렸다 개었다 하는 동안 시간은 흘렀다. 의지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속도로.
6개월쯤 지났을까? 더 짧거나 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냉장실 램프가 불쑥 켜진 것이다. 그날 냉동실에서 뭔가 꺼내다 문을 연채 냉장실 문을 열었다. 식재료를 확인하려 한 것 같다. 순간 내부등이 환하게 들어왔다. 램프가 나간 게 아니었다. 일단 반가웠다. 다시 수개월이 지났다.
하루 맑고 일주일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졌다. 호기심에 손목닥터에 올라온 여러 심리검사를 했다. 대부분 높은 수치다. 처음이었다. 활성화된 연결하기(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를 누르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익숙해진 어둠이 오늘따라 싫다.
'답답해'
일 년이 지난 게 믿기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램프가 나간 건 아닌데 이유나 알자 검색으로 확인하니 이러쿵저러쿵 정보는 많다. 가장 그럴싸한 걸 찾았다. 냉동실과 연동되고 문을 분리한 적 있으면 재설치하면서 선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단다. 친절하게 이미지(흐릿해서 알아볼 수 없던)도 첨부했다.
'여기가 어디지?'
일단 문을 열고 살핀다. 여기저기 꾹꾹 눌러도 본다. 못 찾겠다. 이러다 또 일 년 지날 것 같다. 하루 맑은 날이었는지 어두운 냉장고가 참아지지 않는다.
냉장고 바탕 큐알코드를 찍는다. 접속하니 무슨 설명이 그리 많은지. 수많은 가전에 적으라는 것도 많다.
'아...피곤해'
창을 닫고 구글에서 연락처를 찾아 연결. 늘 느끼지만 상담사는 참 친절도 하다. 다행히 두 시에 방문 접수됐다.
"의자 좀 써도 될까요?"
검은 마스크를 쓴 삼성맨이 식탁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안 되는데요."라고 했을 리 없다. 의자를 냉장고 앞으로 옮긴 그가 짐작대로 훌쩍 올라섰다. 자그맣던 그가 거인이 되어 냉장고 문 위 연결부위를 드라이버로 열기 시작했다.
"다행히 선이 있네요. 접촉불량입니다"
그가 뭔지 모를 전선을 보여주며 말했다. 몇 시간 전 가장 그럴싸해 꾹꾹 누르며 찾았던 곳이 저기였을 줄이야.
의자에서 내려온 그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반짝 램프가 빛난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마음이 후련하다. 문을 여닫던 그가 소음이 난다며 아래쪽 나사도 조여준다. 한결 부드럽다. 몇 번의 조작으로 스마트폰과 연결도 시켰다.
"스마트폰에서 조정할 수 있어 편하실 겁니다."
순식간에 일을 마치고 출장비(28,000)만 달라는 그에게 식탁에 둔 커피맛 사탕을 한 움큼 건넸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여태 못했나..'
그를 배웅하고 일도 없이 냉장고를 여닫는다. 이렇게 좋은 것을.
문득, 사람도 관계가 불편할 때 센서등처럼 이어주는 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느슨할 때 드라이버로 조여주면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서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접촉불량입니다."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