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빠는 풍각쟁이

<저고리 시스터즈> 이야기

저고리 시스터즈와 김정구, 왼쪽부터 이준희, 김능자, 김정구, 이난영, 장세정, 박향림, 서봉희)

동아일보 1972년 3월 20일 자엔 한국 최초와 관련된 기사가 실린다. 그중 한국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이라며 <저고리 시스터즈>를 소개하고 있다. 1935 년에 결성되었다고 한다. 

그를 단서로 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저고리 시스터즈>와 관련된 많은 언급들을 찾아보면 이야깃거리가 넉넉하다. 최근의 걸그룹의 인기와 관련시켜 최초의 걸그룹이라는 언설부터 해서 그 그룹에 참여했던 개개인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한 보따리는 족히 넘는다. 

하지만 화려함보다는 슬프고 눈물 어린 이야기가 더 많으니 너무 화려함만을 기대하진 말기 바란다.  아직 이 사회는 풍각쟁이 오빠 마냥 여성 연예인들에게 충분한 경의와 배려를 전하지 않았으므로. 

이철 오빠

<저고리 시스터즈>와 현재의 걸 그룹을 연결시켜 보는 일은 억지스럽지는 않다. 이 그룹을 만든 이는 일제 시대 최고의 쇼의 최고 흥행사였던 이철(본명 이억길 1903-1944)이었다. 그는 오케 레코드사와 조선악극단을 운영하면서 이를 조직했다.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이철(이억길) (1903-1944)

여러 문서들의 구성원에 대한 소개는 들쑥 날쑥이다. 이난영, 장세정, 유정희, 홍청자, 서봉희, 김능자, 박향림, 이준희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공연 때마다 그룹핑이 달랐던 모양이다. 

위에 소개한 기사에는 이난영, 장세정, 임순이가 <저고리 시스터즈>의 구성원이었다고 소개한다. 같은 신문의 1973년 3월 21일 자 ‘연예수첩 반세기’에는 이난영, 장세정, 이준희, 서봉희, 김능자 등 다섯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사에 딸린 사진에는 박향림도 들어가 있다. 다른 글에서는 홍청자도 핵심 멤버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정에 따라 들고 남이 심했던 모양이다.

모르긴 해도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획이었다. 여가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저고리 시스터즈>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리라 짐작된다. 이를 조직한 이철이 뛰어난 수완가였음은 장세정의 데뷔 무대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가수 장세정

장세정은 원래 가수로 픽업되어 있었다. 하지만 극적 데뷔를 위해 이철은 그를 평양 방송국 개국 기념 노래자랑에 출연시킨다. 짜고 쳤던 일이니 장세정은 입상하고, 이벤트는 성공한다. 아이돌 스타들에 하나 씩 따라다니는 스카우트 에피소드도 이미 이때 쓰이고 있었다.  

<저고리 시스터즈> 멤버들 하나하나가 다 이름 있는 가수였고, 이후 이름을 날리는 가수가 되는 것으로 미뤄 이철은 수완있게 연예 시스템을 꾸렸고 시스템의 근대화를 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이철은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 그의 사업 동료이자 처남 매부 지간인 김성흠과 함께 연희전문 시절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했었다. 

그 이전에는 극장의 악사 노릇도 했고, 배재고보 시절엔 음악서적을 출간하기도 한다. 다양한 연예 배경을 가진 그의 연예계(레코드 업계) 진출은 그의 부인인 현송자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송자는 원래 고위 관료(대한제국 학무국장 윤치오)의 후실이었다가 이철과 교회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이르렀다. 현송자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친구의 부친이 운영하던 레코드 회사와 다리를 놓아 이철이 조선에서 <오케 레코드>사를 열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일본 레코드사의 지점이었던 셈이나 수월한 판매를 위해 일본 회사 이름 대신 오케라는 이름을 택하였다 (다리를 놓은 현송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인 '요화 배정자’의 딸이다).

현송자의 도움으로 이철은 연예계의 큰 손으로 등장한다. 사업이 점차 번성해갔다. 이철은 <저고리 시스터즈>의 장세정과 염문을 뿌린다. 장세정이 왕성히 활약 중에 잠깐 일본으로 건너가 잠적하는데 이철이 스캔들을 면하고려 꾀한 일이라고 한다. 

이미 이름을 떨친 여가수와 연예계의 큰 손과의 염문, 장안의 곳곳에서 얼마나 입에 올렸을까 짐작이 간다. 장세정은 이철 사이에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은 장세정이 이후 결혼한 기타리스트 조지 한(한두식)의 성을 따랐다. 

그중 한 명이 60년대를 풍미했던 히 파이브, 히 식스에서 활약한 한웅이다. <저고리 시스터즈>를 구성한 이철, 그의 손에 이끌리어 데뷔하고 가수가 된 장세정, 장세정을 열렬한 팬으로 사랑했던 조지 한, 그리고 60년대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약했던 한웅. 

<저고리 시스터즈>가 걸그룹과 한참을 떨어진 안드로메다쯤일 거라는 짐작은 오산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그들의 발자국, 흔적, 목소리가 곳곳에 남겨져 있고 우리 눈과 귀를 맴돌고 있다.

장세정은 2003년 미국에서 운명한다. 1970년 초 교민들이 고별무대를 마련해주었지만 그의 마지막도 힘들었던 것 같다. 고혈압으로 고생을 했고 그의 많은 노래가 월북 작곡자, 작사자에 의한 것이어서 제대로 알려지기조차 힘든 것에 대한 맘고생도 심했다. 

식민지 하에서 분발했던 이철이 레코드사를 운영하고, 악극단을 운영하며 동북아시아를 누비고 다니며 조선의 연예계를 주름잡는 기상으로 창작하고, 연행하던 이들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을 크게 고민해보았더라면 하는 생각은 장세정에 이어지자 더욱 새록새록해진다.

김해송 오빠

이철과 장세정의 염문은 <저고리 시스터즈>에서도 가장 이름을 날린 이난영을 꽤 괴롭혔다고 한다. 같이 노래하던 이가 악극 단장과 눈이 맞아 정신이 없으니 주변에서 부아가 치밀 수밖에. 

이난영과 김해송

하지만 다른 이유로 화가 났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이난영은 조선의 천재 음악가로 불리던 김해송(1911-1950)과 1936년 크리스마스 날에 혼인을 한다. 김해송과의 사이에 모두 12명의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서도 노래를 계속했다니 기적 같아 보인다. 

노래, 작곡, 작사, 연주, 춤, 연예기획 모든 방면에서 천재라 일컬어지던 김해송에 온갖 유혹이 있었을 터이고 그런 탓에 이난영의 속도 꽤 탔을 것이다. 그런 탓이었을가. 이난영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가수 홍청자

김해송은 해방 후 KPK 악단을 만들어 그의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동서양 음악을 맘껏 활주 하던 그로서는 해방 후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의 전성기에도 어김없이 스캔들이 뒤따른다. 김해송은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였던 홍청자와 염문을 뿌리기 시작한다.

 

이난영의 자살 소동이 났던 것도 이 시기였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연예를 학습하여 이른 시기에 무용, 노래, 연기까지 겸비하는 종합 연예인이던 홍청자는 박시춘 악단, KPK악단 등에서 활약했다. 

‘요화 배정자’의 조카이면서, 현송자의 이종사촌이던 배구자가 운용하던 배구자 무용단에서도 활동했다. 

홍청자는 해방 전후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홍청자는 나이가 먹고, 악극단의 인기도 옛날 같지 않게되자 연예계에서 일할 기회 조차 얻지 못한다. 홍청자는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다. 

그러다 1958년 4월 12일 자에 <동아일보>에 이름을 알린다. 서울 시경 수사과가 종로 돈의동 아편굴을 습격하여 마약 중독자를 체포했다는 기사에서 '왕년의 댄서 홍청자'도 포함됐다고 알린다.  

이때 홍청자 나이 34세였다. 홍청자는 이때 종로 쪽방에서 몸을 팔고 있었는데 그 수치심을 감추려 마약을 취하고 있었다 한다.  

그로부터 4년 후 다시 사건 기사에 홍청자는 이름을 올린다. 1962년 2월 17일 '왕년의 무희 홍청자'가 마약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홍청자는 그 이후로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도 없고 그가 이후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아는 이도 없다. 

이난영이 남편의 실종 이후 살아남기 위해 아들 딸들에 노래, 춤을 연습시켜 연예계로 데뷔시키는 일을 해야 했듯이 홍청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청자에 비해 김시스터즈, 김 브라더즈라는 유산을 남긴 이난영이 더 알려지고 값진 삶을 산 것 같으나 둘의 마지막은 비슷하게 힘들었고 외로웠다. 오빠들은 참으로 무심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2010년 김해송 탄생 100년을 맞아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 그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 전, 만요 공연, 콘서트가 열렸다. 

그를 기리는 행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있게 한 여러 사람들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이 고단했던 이유들을 찾고 더 이상 창작자들이 힘들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는지도 고민했으면 한다. 

아직도 오빠는 풍각쟁이

이난영에게 <목포의 눈물>을 선사한 작곡가 손목인은 가수 금사향에게 <눈물의 홍청자>를 부르게 한다. 설음이 많아 눈물이 일상사가 되었던 식민시기 이후에도 눈물은 여전히 가요의 중요한 메뉴였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트로트가 이처럼 생명력을 가진 것은 눈물의 일상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다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인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야’처럼 가끔씩 발랄 씩씩한 노래가 들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요 속엔 오랫동안 눈물 천지였다. 

걸 그룹의 노래에서 눈물을 찾기란 힘들긴 하지만 그들의 삶도 결코 녹록지 않고, 늘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에는 어김이 없다. <저고리 시스터즈>에서 걸그룹으로 이어지는 전통은 단절이라기보다는 연속이다. 

참으로 바람직해 보인다는 연예 시스템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언제나 그럴 것 같다는 우울함에 잠길 수밖에 없다. 가끔씩 들려오는 걸그룹 출신 가수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고리 시스터즈>로 시간 여행을 하면서 가져본 생각이다. 아직도 여전히 “오빠는 풍각쟁이”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몰라 난몰라 내반찬 다 뺏어 먹는거 난몰라 불고기 떡뽂기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실여 난실여 내편지 남몰래 보는것 난실여 명치좌 구경갈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때면 엄벙땡하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뱅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 오빠는 모주군이야, 머 난몰라이 난몰라이 밤늦게 술취해 오는것 난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두쟁이 오빠는 대표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