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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진 Aug 03. 2023

아파트 이름의 계보학

세상일을 시간 계열에 올려두어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고고학적 접근이다. 또 다른 접근은 계보학적이라 부른다. 


앞의 것은 특정 현상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꼼꼼히 따져 기술하는데 주력한다.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그에 비하면 계보학적 접근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를 따져 묻는데 주력한다. 계보학적 접근은 특정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동기나 그 현상이 낳은 결과를 추적한다.    

  

고고학적 접근에서 계보학적 접근으로 옮겨가는 일이 쉽지는 않으나 의외로 수확은 많다. 세상을 읽는데 큰 힘이 된다. 고고학적 접근은 특정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밋밋한 묘사에 그친다. 반면 계보학은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 구조화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사건이나 현상의 이면을 읽고 그 정치성이나 사회성을 부여하게 된다. 


세상일을 두텁게 읽고자 하는 이들은 까다롭다는 계보학적 접근을 택해 현상을 손으로 만져보는 듯한 효과를 얻으려 한다. 성공만 한다면 계보학적 접근은 세상 보는 눈을 개안시켜 줄 생산적 계기가 된다.   

   

아파트 이름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읽으려 계보학이란 무거운 단어를 꺼내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최초의 아파트들은 마포 아파트 등과 같은 지명을 문패로 달았다. 


이어 시공사의 이름을 단 아파트들이 등장한다. 주공아파트, 삼성아파트, 현대아파트, 삼익아파트, 삼호아파트 그런 식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다 시공사들은 브랜드를 내걸고 자신의 이름을 숨긴다. 래미안, 푸르지오, 캐슬, 서밋 등과 같은 이름들이 아파트 벽에 붙기 시작한다. 이름은 점차 더 다양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가지 패턴에 맞추어 이름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파트 이름 변화 패턴 첫 번째는 이름의 길이에서 찾을 수 있다. 시공사의 이름에다 온갖 좋다는 영문 수식을 덧붙이다 보니 생긴 일이다. 무려 19자나 되는 긴 아파트 이름도 등장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패턴은 재벌 시공사만 시공사 이름을 붙이는 것을 지속한다는 점이다. 압구정 현대, 마포 삼성 등등. 로컬 시공사가 아파트 담벼락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좀체 찾기 어렵다. 

영어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심지어 한자말이나 순 한국말도 살짝 비틀어 영어처럼 보이거나 들리게 만든다. 푸르지오, 래미안이 그 예라 하겠다. 그 변화 패턴 이면에 도사린 욕망, 그를 이루기 위해 질주하는 힘에까지 언급이 미쳐야 계보학적 접근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름의 변화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굵은 줄기는 ‘아파트는 사고파는 물건’이란 점이다, 작명법의 변화는 마케팅을 위한 결과일 뿐이다. 


어느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얼마나 잘 지었는지를 보여줄 만한 힌트는 결코 이름에 담지 않는다. 지은이가 얼마나 큰 회사이고, 그래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더 몰두할 뿐이다. 


영어 잘하는 이가 이 땅에서 떠받들어지는 버릇에 맞추어 영어 이름을 선호하여 아파트에 부가가치를 더한다. 점차 이름이 길어지는 것은 합성어를 만드는 탓인데 어이없는 합성어로 희소가치를 부여하려 한다. 기존의 브랜드에 의미 미상의 용어를 붙이기도 하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상품이길 바라는 기원에 다름 아니다.  

아파트 이름은 늘 플러스로만 변경되진 않는다. 과감하게 이름을 지우는 일도 벌어진다. 광주 아파트 건설 붕괴사건이 있은 후 특정 브랜드, 시공사 이름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한다. 


재벌 시공사 이름을 붙이고, 프리미엄을 챙기겠다던 욕망으로 이글거리던 동네에서 이름을 손절하고, 가리는 마이너스 마케팅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모습을 본다. 아파트 이름의 계보학적 접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고 해둘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듯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은 것은 ‘아파트는 사고파는 물건’ 임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수급정책이 번번이 실패하는 일은 계보학적 접근으로 읽을 수 있는 큰 흐름을 무시하는 탓에 벌어진다. 아파트로 한몫 잡아야 하고, 적어도 손해 보며 파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아파트를 편한 살림살이하는 곳, 내 삶이 이뤄지는 우리 동네라는 개념과 연결시키는 마음의 흐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주거 정책은 신이 강림한다 해도 실패하고 만다. 


짧은 기간 동안의 정책 흐름이 아니라 긴 세월의 사회 운동에 주택, 주거, 아파트 문제가 얹혀야 함을 시사한다. 적어도 아파트 이름의 계보학적 접근으로 보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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