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지거나 쪼그라든 여론
'침묵의 나선 모델(혹은 이론)'이라는 여론 관련 이론이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 편에 속한다고 생각되면 입을 닫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다수 편에 서 있다는 확인이 되면 더욱 큰 목소리고 떠든다는 내용을 이 이론은 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다수 의견은 늘 실제 의견보다 더 다수처럼 감지된다. 당연히 소수 의견은 더욱 쪼그라들어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입을 닫는 경향 탓이다.
여론이 그런 식으로 형성되고 알려진다면 정확한 여론 파악은 힘들어진다. 다수 의견은 더 다수가 되고, 소수 의견은 없는 듯 처리될 게 뻔하다. 이른바 여론 독재가 발생하는 불행으로 이어지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적어도 이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이 이론에 대해선 후속 연구들은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특수한 상황이나 다른 변수의 등장으로 그 주장과 달라질 수도 있으나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대강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다. 그 처럼 현대 여론 형성 과정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여론 형성 과정에서 생기는 그 같은 착시 현상이 곧 미디어의 필요성을 받침해준다. 다수 여론이 더 크게 요란스럽게 들리는 것을 막고, 소수 의견 조차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미디어가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바로 그 같은 사회적 책무를 지닌 존재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자주 빚나간다. 미디어는 여론 형성 과정에서 여론 질곡을 교정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진 못했다. 오히려 정확한 근거 없이 떠도는 지배적 의견을 진실의 영역인 것처럼 부풀리는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부동산, 주택 보도와 저널리즘
꼼꼼히 근거를 따지고 지배적 의견의 지배성을 점검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언급할 때 그 비판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는다.
2022년 하반기 이래 부동산 경제 위기를 알리는 경보가 울리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온 사회가 목도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술이다. 곳곳에서 신규 아파트의 미분양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전세 거래 등도 얼어붙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부동산 경제는 생활 경제이긴 하지만 금융 대출, 건설경기, 자산가치 등 거시 경제와도 연결된 중요 사회 의제다. 부동산 경제 위기는 나라 경제 전체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태다.
미디어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 일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아무리 늦더라도 늦은 때가 빠른다며 열을 올렸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드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아파트 공급 정책을 강하게 주문했고, 금융의 탈규제를 강조했다. 그런 조건의 형성으로 부동산 붐이 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늦어서는 안 된다며 미 주택자의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당장 집을 사야 한다는 의견이나 주장은 더 과잉으로 포장해 냈다. 엄격한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미디어 잘 전달하지 않거나 그에 불온의 낙인을 선사하였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 한파가 오면서 미디어는 급격히 얼굴을 바꾸고 있다. 폭등을 폭락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공급 과잉에는 미분양속출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영끌의 성급함을 나무라는 대신, 이삼십 대의 곤혹을 대변해 주며 그 위기를 크게 떠든다. 세금을 줄이고, 더 규제를 풀 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미디어가 부동산 경기 과열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억은 그 어디에도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동산 가격 하락의 불안 심리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번 위기에는 비구매자의 불안이 아니라 소유주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켜가고 있다. 그를 기반으로 정책과 여론에 새로운 일타 강사를 자임하고 나서고 있다.
시민들끼리 더 많은 코칭을
머잖아 경제 위기를 실감하게 될 거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경제 위기가 그 시발점이라는 데도 이견이 없는 듯 보인다. 특정 의견만 나선 모양으로 키우거나 줄여나가는 현 미디어 조건으로는 슬기롭게 그를 대처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부동산 경제 위기를 조절해 가며 경제 전반을 가늠해 가야 하는 영리함이 필요하지만 미디어가 그 경로에 버티며 훼방꾼 노릇을 할 것 같아 걱정이다.
미디어를 새롭게 바꾸어내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이는 만큼 시민들의 영리함은 너무도 소중한 선결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읽어낸 여론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과거에도 옳은 전망을 했던 나만의 코치를 찾아내는 수고로움을 행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끼리 코치받은 의견을 나누고 더 떠들어야 하는 작업도 펴야 한다. 여론의 형성이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라며 숨어들기는커녕 더 목소릴 높이며 제 이익을 챙겨갈 일이다. 큰 목소리와 침묵의 결정을 결코 미디어에 맡겨둘 일은 아니다. 요즘 같은 위기에선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