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 닥터

대통령실 대변인과 저널리스트

by 원용진

스핀 닥터


자신의 편에 유리하게 정보를 가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스핀 닥터(spin doctors)라 칭한다. 관공서, 기업,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조직이 이 역할을 해내는 부서와 인력을 두고 있다. 더 많은 자기편을 끌어오는 여론 전쟁을 매일같이 펼치는 정치 조직에서 스핀 닥터는 정치인 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실 정치를 담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이들은 핵심 인물로 묘사되며 온갖 정치적 행동을 펴며 관심을 끈다.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TV 토론 이후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 후보(당시 대통령)와 월터 먼데일 후보 간 토론이 끝난 후, 양 후보의 공보 담당자들이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하였다. 뉴욕 타임스가 사설에서 그 행위를 묘사하려 그 용어를 고안했다고 한다. 정보에 회전(to spin)을 걸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끌고 오려는 모습을 시각화하면서 그 용어를 고안하였다.


대통령실 대변인

2025년 6월 새 대통령 맞은 한국에서도 스핀 닥터를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대통령실의 대변인이 새로이 정해졌고, 전에 없던 기자회견 방식의 도입도 있었다. 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수의 매체가 출입하고 경쟁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어 스텝핑을 한다며 너스레를 떨다가 중단했던 이전 대통령실에 비해 활기가 있어 보인다.


전과는 달라졌다며 들리는 소문은 흘려들을 만큼 중립적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비언론인 출신이 대통령실 스핀 닥터가 되었다는 불만 섞인 소리도 슬그머니 흘러나왔다. 질문하는 기자들에 카메라를 조준하여 질문을 위축시키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질문하는 기자들이 여론의 표적이 되어 곤란을 겪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질문하는 저널리스트와 스핀닥터 간에 너무 날이 서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통령실에서 스핀닥터를 둘러싸고 들리는 이 같은 소리가 싫지만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관심을 가질 직업인 만큼 스핀 닥터가 존재하는 곳에서 이러저러한 소리가 들리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로소 스핀 닥터가 공적 의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실 출입 저널리스트들의 스핀 닥터를 대하는 행태도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스핀닥터의 공론화라 생각하면 그곳의 소음은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스핀 닥터를 마주하는 저널리스트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얼굴없는 기자이던 때 보담 훨씬 더 책임감 지닌 듯 보여서 반가웠다.


스핀닥터는 정치인일까?

스핀 닥터를 보는 인식에는 미국, 영국과 한국 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백악관이나 영국의 총리실 대변인을 정치인으로 인식하려 한다. 그러므로 공보, 대변 행위 자체를 정치적 행위로 이해한다. 현 백악관 대변인인 캐롤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은 저널리스트 경험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FOX News에서 인턴 기자 생활을 짧게 했을 뿐이다. 역대 최연소(1998년생) 대변인인 레빗은 여러 정치인의 홍보 담당 보좌관을 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브리핑 실에서 펴는 그의 대변인 활동은 트럼프가 언론인을 대하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거침이 없다. 이름 그대로 트럼프의 입을 대신하며 정치인 노릇을 하고 있다.


백악관 내에 있는 언론 브리핑 공간을 "James S. Brady Press Briefing Room"이라 명명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브래디를 기념하고 있다. 브래디 역시 비언론인 출신 대변인이었다. 여러 상, 하원 의원들의 공보역을 맡았던 경력을 지니고 있다. 레이건 암살 사건 때 총격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백악관은 그를 높이 사 그에게 그런 영광을 부여하였다.


가장 유능했던 대변인으로 알려진 마이크 맥커리 Mike McCurry 또한 정치인 출신이다. 1995년에서 98년 사이에 클린턴 대통령을 보좌하였다. 정치자금 스캔들, 성추문 등에 시달리던 클린턴 대통령을 임기까지 버텨내게 했던 힘의 원천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미국 전현직 대변인에 대한 평가는 주로 그들의 정치적 역할에 맞추어져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해 정보에 회전을 넣는 실력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 스핀 닥터를 더 선호하고 스핀 닥터를 아예 정치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스핀 닥터에게서 찾으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대통령의 의중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정치에서 대변인은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가, 그의 철학, 장기적 비전, 현재의 정치 전술의 발휘를 잘 알고 있는가가 기본 자격이 된다. 브래디, 맥커리, 레빗이 각자 자신의 대통령과 닮아 있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대변인을 두고 대통령의 "또 다른 자아(extended self)"라고 부르는 이유다. '대통령이 편할 수 있도록 정보에 회전을 넣어 전달하는 정치적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맘에 들지 않는 쪽엔 아예 질문 기회를 주지 않거나 말을 자르는 무례함을 저지르는 것도 그런 탓이다 (개인적으로 현 대변인인 레빗을 보며 저런 버르장머리없는 공적 인물이 있나라고 몇 번이나 분노한 적이 있다).


신설 스핀 닥터 극장

한국으로 오면 스핀 닥터에 대한 생각은 약간 달라진다. 대통령실 대변인을 대통령과 언론 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 경주의 인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여러 형태의 편의를 제공하는 존재가 된다. 언론에 좋은 취재 여건을 제공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하고, 받아 적기 쉽게 또박또박 읽어주어야 하고, 시간이 나면 대통령과 만남도 주선해야 하는 그런 직무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된다. 언론인 출신 대변인이 선호되는 이유다. 그리고 비정치적인 인물이 되어야 하고, 언론 규범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실 스핀 닥터의 행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재명 정부의 스핀 닥터는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언론 개혁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음에 비추어 대통령실의 스핀 닥터도 정치적으로 날이 서 있고, 언론 친화적이기보다는 냉기 어린 관계 유지를 의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모습에서 지켜보는 대중은 '다툼'으로 혹은 '정쟁'으로 혹은 '활극'으로 묘사하며 재미를 취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조회수와 수입으로 연결시키려는 수 많은 유투버들의 욕망의 갈퀴에 걸려 들었다.


2025년 뜨거운 여름날 용산의 대통령실, 새로운 스핀 닥터 극장에서 스핀 닥터와 저널리스트는 선의의 경쟁한 판을 벌이고 있다. 의제 설정, 프레이밍, 프라이밍(priming), 크롤링, 초점화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 경쟁에 관객으로만 머물지 않고 수용자까지 무대에 올랐다. 스핀 닥터 무대가 소란스러워졌고, 그 연행이 벌이는 풍경이 흥미로워진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대변인실도 정치의 한 복판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 반갑다. 스핀 닥터도 정치 행위자이며, 저널리스트도 그 범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음을 축하하고 싶다. 스핀 닥터가 회전을 넣어 힘껏 던지는 공(a ball)을 방망이로 치는 저널리스트는 불가피하게 같은 놀이 규칙 안에 들어간 게이머(gamers)다. 스핀 먹은 볼을 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배팅에도 회전을 먹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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