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렸는데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늦은 시각 찾아온 이는 우체부였다.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거기엔 ‘부친 사망. 급상경. 형’이라는 세 단어가 전부였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확인했지만 부친 사망이란 글은 변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나의 입술은 바르르 떨며 경련이 일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눈물을 보일 수도 없었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성경책을 들었다. 교회로 가는 도중 방범대원을 만나 어디 가느냐는 질문에 아무 소리 없이 전보를 보여줬다. 그러자 “죄송합니다. 안됐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라며 보내줬다.
나의 생각은 무감각 상태였다. 지난 일들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피곤할지라도 새벽 4시면 일어나셔서 일과를 시작하시던 아버지였다.
언젠가는 내가 얼마 동안이라도 부모님을 모셔야지 생각을 해왔고, 엄마 회갑 때는 제주도 관광을 보내 드리려고 계획했었는데 후회스러웠다.
슬픔에 흐르는 눈물은 내 가슴을 적시고 또 적셨다.
……아버지는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향 땅에 흙과 함께 조용히 묻히셨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뼛속까지 적셨다. 그렇게 아버지를 뒤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1981년 10월, 1년 전 그날을 회상하며 적은 아버지 일기장 중
아버지는 40여 년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고향을 떠나 마산에 정착하셨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부모와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는 세월이 흘러 타향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어야 하는 기고한 운명을 만들었으며 임종의 순간을 지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짐을 남겨 버렸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머니가 몸이 불편하실 때 어머니에게 간병을 부탁하셨을 것이다. 그때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후회(後悔)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 -출처: 다음 백과사전
후회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겠노라’ 수 없이 다짐하며 산다.
하지만 살면서 알게 된다. 후회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소중한 것은 떠나고 난 후 그제야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얼마 전 지역 극단 불씨촌의 작품 ‘다녀왔습니다’를 봤다. 1980년대 초반 세 딸을 둔 한 서민 가정의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공연 내내 지금의 일상과 달리 잔잔히 흘러가는 장면 속 다섯 식구의 일상을 보며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하나 둘 겹쳐졌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된 막내딸이, 떠나간 가족을 회상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혀졌다. 이별을 하고서야 당연시 여겼던 것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눈물 흘리는 막내딸의 모습 속에 40년 전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지도 그렇게 자책하며 후회를 했을 것이라…
그리고 어쩌면 40년 후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쓰려왔다.
극 중 아버지의 대사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지나간 것에 대해 잘못을 후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오래된 기억은 퇴색되니깐…”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이름인 ‘가족’.
가장 소중한 존재지만 떠나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존재 역시 가족이다.
그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뒤늦은 후회로 가슴 아파하지 않기 위해 남편과 아내, 자녀 그리고 언제나 자식을 기다려 주는 부모님에게 우리가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가야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