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며칠 전 우연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TV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의 시선은 쉽게 화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 주제는 '나는 승리자다. 제국을 뒤흔든 사나이'로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한 이야기였다.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풀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선인에 대한 집단 학살이 자행됐다.
일본 곳곳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질 때 도쿄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박열이었다.
일본 정부는 폭동 혐의를 독립투사에 뒤집어 씌우려 했는데 그중에 박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열은 일본 황태자 테러를 이유로 체포됐다. 당시 일본인에게 있어 황태자는 신과 같은 인물로 황태자를 처형하려 한 것만으로도 사형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열은 그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당당하게 일본 재판부에 4가지를 요구 조건을 걸었다.
1. 조선 관복을 입겠다.
2. 조선어를 사용하겠다.
3. 재판장과 동등한 좌석을 설치하여라.
4. 죄인 취급하지 말라.
재판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재판은 시작됐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박열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열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인으로써 자존심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장에서 만세를 외치며 재판장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나의 정신은 당신이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사형이라는 결과를 알았음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고 이를 통해 민족의 단합을 원했던 박열.
과연 우리는 죽음이라는 결과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아무리 숨을 쉬려 해도 나의 심장과 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 순간 내가 느껴야 할 공포.
살면서 지은 수많은 잘못으로 환생은커녕 평생 지옥에서 이를 갚아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후 세계에 대한 의문과 그것을 혼자 느껴야 하는 외로움.
사랑하는 이를 잃고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슬픔.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는 현실.
이러 저런 이유로 나는 죽음이란 단어가 무섭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때론 죽음이란 두려움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의 육신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소신을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 2001년 지하철에 선로에 추락한 이를 구하려 선로에 뛰어들어 자신을 희생하고 생명을 구한 故 이수현 씨, 그리고 2016년 발생한 원룸 빌라 화재 당시 20개가 넘는 원룸 초인종을 눌러 주민 21명을 살리고 홀로 세상을 떠난 故 안치범 씨, 추락하는 전투기를 인가가 없는 곳으로 비행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는 공군 장교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죽음이란 공포 속에서 불길을 헤집고 들어가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등과 같이 말이다.
아버지 일기장을 읽던 중 죽음에 관한 내용을 발견했다.
성인이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다음 순간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면서 육신의 만족과 향락, 쾌락에 도취하여 깨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생활할 것이고, 인간의 가치를 상실하는 결과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걱정을 두지 않는 것. 자기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며, 죽음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1983년 5월 어느 날의 일기 중에서-
오래전 박열 선생이 하신 선택,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인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옳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강한 정신을 갖기 위하여 노력했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당신이 갖고 있는 옳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강한 정신을 갖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