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감정은 근무 중
인간에게 있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 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나는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다니면 그저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소위 SKY, 좋은 학교에 가는 사람이 부러웠고, 대학 졸업 후에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도, 직장에 들어가서도, 행복이란 이름 아래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채찍질하며 살았다. 남들처럼 되기 위해 아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노력에 취업난에도 지역의 작은 언론사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2번의 이직을 통해 방송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꿈에 가까워졌다.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자 평소 연락하지 않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순간이 좋았다. 라이브 방송을 할 때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고 괜히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내가 너 만큼 연봉받으면 난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겠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사람은 언제나 행복을 꿈꾼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생각하는 행복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이 꿈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사랑일 수 있으며 명예, 성공, 부 등등 그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한 때 내 삶의 기준은 성공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성공이란 것에 다다랐을 때 그 속에 나란 존재가 없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꼈다.
열심히 사는 만큼 통장에 숫자는 늘어났지만, 몸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피폐해지고 정신은 지칠 때로 지쳤다. 늦은 밤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응급실은 내 인생에 있어 행복의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돌이켜보니 내 행복이자 내 삶인데도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 내가 아닌 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성공이라는 것에 나의 행복을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속에 나를 지워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배우 김대명 2014년 인터뷰 중-
그런 생각 끝에 나는 다시 한번 이직을 결심했다. 이번엔 스카우트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이직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방송 기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지역의 작은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연봉도 크게 줄어 팍팍한 삶을 살게 됐고, 갑에서 을로 사회적 지위가 내려왔지만 대신 나를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보상받았다. 선거날 개표 현장이 아닌 방송으로 선거 결과를 즐겼고, 명절 연휴에는 처음으로 가족과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됐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출동해야 하는 긴장감이 사라졌고 그렇게 하나 둘 마음에 여유를 찾았다. 이제 연간 목표에는 언제나 새로운 곳에 여행 가는 것과 독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행복의 기준을 성공이 아닌 나로 바꾸자 생긴 작은 변화다. 그리고 지금은 공부를 하며 새로운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고 쓰고 싶은 글도 이렇게 쓰며 여유를 즐긴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기준을 세우든 그것은 자신의 삶이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의 주인공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일기장(1982년 11월)에서 찾은 행복에 대한 조언을 남긴다.
세상은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웃음보다는 눈물이
괴로운 일이, 어려운 일이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은 곳
행복이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괴로움보다 웃음으로
이해하며 사랑하며 살 때
이 세상에 행복은 내게 있는 것
건강한 마음, 건강한 육신
이것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행복을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