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 이상의 것을 만날 수도 있다.

by Jake

다행인 것은 샌프란시스코가 굉장히 넓어 보이기는 하지만 짧은 방문 기간에 가봐야 하는 곳들은 대체적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사실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며 샌프란시스코가 이런 곳이구나 하며 걷다 보니 지도를 통해 Coit Towel라는 바로 옆에까지 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지만 구글 지도상에 관광명소로 나와있으니 관광객인 나는 가봐야겠지 하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사실 특별히 다른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신히 날이 밝았을 뿐 아직 한참 아침 절이라 갈만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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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길을 만났다. 전망대라니 당연히 높은 곳에 있겠거니 했지만 이런 계단이 기다릴 줄은 몰랐다. 차도 다닐 수 있는 오르막길이 따로 있기는 했지만 지도를 보고 최단 거리로 방향을 잡으니 광광객들에게 보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친숙할만한 주택가 좁은 길을 만난다. 스쳐가는 방문자이지만 지나는 길에서 이 지역을 조금이라도 더 세밀하게 느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걷는 이에게 만 주어지는 특권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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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랐지만 특별한 경치는 없다. 실망도 없다. 이런 곳이 있는지도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몰랐으니까. 타워 위에 오르면 좀 더 확실히 보이겠다 싶지만, 개장시간이 아직 1시간 넘게 남았고 얼핏 보니 입장료도 선 듯 낼 만하지도 않다. 가격 대비 기대감이 별로라고 할까? Coit Towel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갈 차례다. 샌프란시스코가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 길이 심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자동차 추격신을 하며 왜 그리도 차들이 출렁대며 달렸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이 낯익은 이름의 길 이름을 발견한다. Lombard st. 한마디로 얻어걸렸다. 망설일 것 없다. 이 길이 그 길이라면 가보는 거다. 항상 말하지만 어차피 특별히 가보려 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지도상에도 친절하게 이 길을 한참 따라 내려가면 유명한 꼬불꼬불한 길, Lombard st.이라고 이름 지어진 관광명소가 나온다고 잘 그려놓았다. 길이 꼬불꼬불하니 지도상에도 꼬불꼬불하게 그려놓았는데 그게 왜 그리 신기한지. 길은 항상 반듯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도 어쩔 수 없는 머리가 고정관념으로 굳어버린 어른이 되어 버린 건가? 머리가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육체 나이는 들었다는 사실이다. 내리막 끝에 있겠지 싶었던 Lombard st. 은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끝트머리에 있었다. 다시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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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Lombard st. 문득 영화보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는 예고편 보면 다 본 것이라고. 영화의 재일 재미있는 장면은 예고편에 다 나와 있다고. 나는 Lombard st. 의 예고편만을 보고 왔던 것이다. 그나마 영화는 예고편에 나온 장면이라도 다시 볼 수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1년 365일 중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울 때의 사진들은 세상에 넘치게 뿌려져 있다. 그것만을 보고 그것만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지만 항상 그런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긴 1년의 시간 중 내가 봐온 사진과 같은 장면이 나타나는 기간은 지금 내가 보는 장면이 나오는 기간에 비하면 훨씬 짧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이 없어서 최상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난 보편적일 뿐 운이 좋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 아니면 미리 준비하고 잘 계획해서 시간에 맞춰 오는 사람들이던지. 그래도 주변이 단조로워 가운데 있는 "DO NOT ENTER" 일방통행 표지판은 잘 보인다. 운전할 일도 없으면서 별게 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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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반쪽만 본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다. 그렇게 길 위까지 올라가니 내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위로를 받는다. 그냥 봐도 좋을 만한 장면이지만,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내 발로 직접 걸어왔기에 괜한 감격이 더해져 그런 것 같다. Lombard st. 을 방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이 길에 대한 기억 속 Snap Shot이 나와는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feet 단위겠지만, 나에게는 mile 단위로 남을 이 길. 남들과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괜한 자부심. 결국 모든 것은 화려한 꽃 길을 보지 못한 나의 자격지심.


생각해보면 Coit Towel를 벗어나 한참을 내리막 오르막으로 걸어온 이 길 자체가 Lombard st.인데 결국 이 짧은 구간의 그 전체 이름을 빼앗겼으니 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구간을 특별한 다른 이름을 붙여놓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이 짧은 구간 하나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이 길 전체 이름이 알려졌으니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걸으면 생각이 정리된다던데 뭔 쓸데없는 생각이 이리 느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얼마나 생각이 많아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