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주 Jan 17. 2024

Counter Punch(2)

 현실 적응력 갑들

2막 명재의 서재

명재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팔을 받치고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씩씩 거리고 있다. 


명재: (독백으로) 아니 이런 개뼈다귀 같은 새끼. 이걸 어떡하지? 소비자보호센터에 신고해서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하나. 아냐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단골이라고 믿고서 보관증도 안 받아 두었잖아. 아니면 이 새끼가 설설 기는 마누라에게 말해서 해결해야겠군. 하지만 그 여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가장 좋은 방법은 턱 쪼가리 한 대 갈겨 놓고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인데, 어휴 그러기는 상대가 너무 무서워. 이걸 어떻게 하지...


추여사가 서재 문을 톡톡 노크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온다.


추여사: 아들, 밥 먹으라고 해도 안 내려오고 무엇이 그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그래? 아니 신명이가 시집을 간다고 식음을 전폐하는 거야, 뭐야? 이제는 그런 계집 다 잊어버리고 심기일전해서 더 좋은 아가씨 만나기로 엄마와 약속했잖아. 아니 잘생긴 내 아들이 어디 제대로 된 여자 하나 못 얻을까...

명재: 엄마, 그 일은 마음의 정리가 끝났다고 했잖아. 괜히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집어던지지 마. 더욱 큰 도약의 길을 준비 중인 사나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마.

추여사: 아이고 내 아들. 그럼 그렇지.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려고 하남?

명재: 아니 우리 단지 앞 세탁소 사장이란 새끼가...  조폭출신 세탁소주인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어. 

추여사: 아니 왜? 

명재: 아니 됐어. 남자들 문제에...

추여사: 아니 남자들 문제라니? 이래 봬도 엄만 아빠와 결혼 전에 삼송그룹의 법무팀에 근무했다는 거 알고 있지. 남자들 각자의 기분에 휘말려 해결하지 못하는 거 이성적으로 해결한 적 많이는 아니어도 여러 번 있어. 자 아들아, 엄마가 여자라는 편견을 버리고 너의 고민을 알려다오.

명재: 에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 신명이 결혼식에 입고 갈 제일 멋진 양복을 세탁소에 맡겨 놓았는데, 지 마누라가 나한테 호감을 보이는 것을 질투하는 멧돼지 같은 사장 놈이 세탁공장의 드라이 기계가 고장 났다고 공갈치면서 양복을 제 때에 못 주겠다고 하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어. 

추여사: (깜작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다.) 뭐야. 아들, 너 왜 이러니? 신명이 년 결혼식에 네가 왜 가니? 가서 훼방이라고 놓겠다는 거야? 확 뒤집어 놓겠다는 거야 뭐야?

명재: 에이 엄마. 왜 이래. 이럴 줄 알고 내가 말 안 하려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분노의 순간에도 이성적으로 사물을 바라다보는 지혜를 가져야 된다고 옛날의 현자들이 이야기했잖아. 

추여사: 무슨 개풀 뜯는 개똥철학을 말하려고 하니? 너, 그거 아니면 예식장 한 구석에서 10여 년 동안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그 년의 결혼식을 바라보면서 비련(悲戀)의 눈물을 질질 흘리는 로맨스를 연출하려는 거야, 뭐야. 내 아들이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나는 절대 용납 못해. 절대 가지 마!  

명재: 에이 꼭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추여사: 뭐, 또 할 말이 있어? 해봐.

명재: 신명이가 규재의 프랑스 유학 중인 5살 어린 여동생을 결혼식장에서 소개해주기로 했거든...(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긁는다.)

추여사: 규재? 규재가 누구니? 

명재: 신명이 신랑.

추여사: 뭐야! 이게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말이야? (히스테릭한 표정을 짓는다)

명재: 에이 씨, 이럴 줄 알고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추여사: 미친놈. 이런 게 어떻게 내 배속에서 나왔지?

명재: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봐. 나도 처음엔 신명이의 제안에 화들짝 했어. 그렇지만 신명이의 현실적인 생각에 내가 크게 감명을 받았어. 

추여사: 현실적인? 또 감명까지 받으셨어? (비꼬는 표정을 짓는다.)

명재: 그래. 신명이가 나를 떠나 규재에게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편모슬하에서 알바하고 학생들 가르치면서 능력 없는 오빠와 어린 동생들 학비 등 뒷바라지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다, 나라는 평범한 가정의 얼굴만 반반한 놈을 만나서 결혼하면 자기 홀어머니, 오빠, 동생들 뒷바라지에 힘이 드는 팍팍한 생활이 보장되는 거지. 하지만 모든 물질적인 것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규재가 나타났어. 이 순간에 구태여 나 같은 평범한 놈을 택하겠어, 아니면 자기 집안을 다 책임져 줄 수 있는 규재를 택하겠어? 나도 순결과 진실한 사랑과 현실적인 면을 다 생각해 봤는데 신명이의 선택에 돌멩이를 던질 수가 없더라고. 

추여사: 요사이 젊은 놈들 생각은 저따위이니. 신혼여행 돌아오는 길에 이혼장에 도장 찍어가지고 온다더니... 쯧쯧쯧 

명재: 기성세대의 잣대를 우리에게 대지 말아 주셔. 말나온 김에 다 말할게. 규재의 동생과 결혼하면 신명이와는 동서관계가 되니 자주 만날 수도 있어. 자제해야겠지만 계속적으로 정을 나눌 수가 있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이 말도 안 하려 했는데...

추여사: 안 하려고 했던 말이 왜 이리 많아?

명재: 심각하게 들어주세요, 추여사님! 내가 규재의 집안에 들어가면 퇴직 후 사업에서 친구에게 배신당하여 술로 지새우는 아빠에게 큰 무역회사의 고문직 하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또한 계약직으로 설움에 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예쁜 정은의 취직 문제도 고민할 필요 없잖아.  그리고 추여사님의 미용실을 허름한 아파트단지 한 구석에서 압구정동 H백화점의 로열층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지 않겠어.

추여사: 요사이 젊은 놈들 대가리에는 도무지 순결과 윤리가 없어.


추여사는 서재문을 꽝 닫고 나간다.


30여분 후 명재는 책상을 등지고서 의자에 앉아 머리는 의자의 머리받이에, 발은 앞의 발걸이의자에 얻어놓고 팔짱을 끼고 컴퓨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비발디 사계의 겨울을 듣고 있다. 

이때 문을 열고 추여사가 들어온다. 


추여사: 너 결혼식에 입고 갈 양복이 어떻게 되었다고? 그 자식에게 counter punch를 먹일 방법을 찾았는데... 그건 그렇고 이것은 구두티켓인데 아빠가 쓸려고 아껴 놓은 거야. 이번에 가서 멋진 걸로 구해서 신고 가.

명재: (벌떡 일어나 추여사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아이고 우리 추여사님! 현실 적응력이 이리 뛰어날 줄이야! 역시 명재의 엄마다워.

추여사: 아니 이놈이! 아이 징그러워. (매우 만족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 3막으로 이어짐 -


작가의 이전글 Counter Punch(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