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꿈이 할머니

by 최용주


물질이 풍부한 이 시대에 10년 이상을 신은 헌 구두의 주인은 두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한 부류는 경제적인 여유는 있으나 구두 한 켤레로 10년 이상을 버티는 전형적인 구두쇠이다. 물질이 부족하였던 시절에는 구하기 힘든 물건을 아낌으로써, 그 물건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구두쇠의 사회봉사적인 정신이 높이 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상품의 생산이 소비를 훨씬 초과하는 이 시절에는 마땅히 비난받을 부류의 사람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과 연합하였다가 대선 바로 전날 연합 무효를 선언하였던 정** 씨에 대한 홍보 기사 중 이런 기사가 있었다. “정** 회장은 재벌의 유력한 후계자로서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일반 서민과 같이 50만 원대의 양복을 입고 다닌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서 정** 씨는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정** 씨는 50만 원대의 양복을 입는 우리보다 몇백 배 몇천 백, 몇만 배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재력가이다.

이러한 재력가가 우리와 같은 서민과 똑같이 소비하는 것이 무슨 자랑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한참 떨어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5백만 원, 천만 원짜리 양복을 입음으로써 자기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위 구두 주인의 다른 한 부류는 진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오직 이 한 켤레의 구두로 10년 이상을 버티는 사람으로서 사회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서울역 근방의 노숙자이거나 달동네의 판자촌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두 부류의 사람의 저소비 행위는 자신의 경제에는 도움을 줄지언정, 사회 경제에 이바지하는 행위라 생각하기 어렵다.

진정한 구두쇠 정신인 검약 생활은 생산이 소비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결핍의 사회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초등(국민)학교 2학년일 때다.

당시 부모님은 2~3개월 전에 그토록 원하시던 여동생이 태어나 육아와 하시던 사업인 연탄공장의 운영에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음 해에는 여동생이 또 태어나 6남 2녀의 대가족을 이루었기에 손자 6명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와 신발을 사러 전주 남부시장에 있는 신발가게에 가던 중 나는 할머니에게 다짐한다. “할무이, 이번에는 꼭 흰 고무신 사줘야 혀. 검정 신은 절대 안 살 거여.”

할머니는, “오야, 알았다. 일단은 가보잔 게.” 하신다.

신발 가게에는 남자 고무신과 여자 고무신을 구분하여 가지런히 정리하여 놓았다.

여자 신발은 가게의 왼편 바닥에 흰색 신과 꽃신으로 구분되어 진열되어있고, 그 오른편에는 남자 신발이 넓은 바닥에 펼쳐져 있는데 공간 대부분을 검정 고무신이 차지하고 있고 안쪽의 한쪽 구석에 흰 고무신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다.

나는 무조건 흰 고무신 있는 곳으로 가 내 발의 크기에 맞는 것을 고르고 있지만, 할머니는 검정 고무신 쪽에서 신발을 고르신다.

당시 검정 고무신은 고무를 한 틀에 넣어서 찍어내는 통고무신으로 여러 조각의 고무를 덧 대여 접착제로 붙여 만든 흰 고무신보다 값은 엄청 싸고 질기기는 2~3배였다.

내가 골라놓은 멋진 흰 고무신을 무시하고 검정고무신 값을 치르고 그 신발을 들고서 할머니는, “야, 용주야! 가자잉~” 하신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들고 계시는 검정고무신을 뺏어서 길거리에 내 팽개치면서, “아 x발, 난 다시는 할무이랑 신발 사러 안 온당게.”하며 울부짖는다.

할머니께서는 내 팽개쳐진 신발을 주우면서 나에게 소리치신다, “야 이 썩을 눔아, 니네 애비·애미가 심 들게 돈 벌어서 니네들 키우니라 애쓰는디 돈 함부로 쓰면 되것냐!”

나는 할머니 앞으로 휙 지나가면서 큰소리로 외친다.

“나, 진짜 앞으로 빠꿈이 할무이하고 신발 사러 다시 절대 안 올꺼여.”

* 빠꿈이: 1. 영리한 사람을 이르는 말. 2. 인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