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두 그루

by 최용주

추석 아침이다.

몇 단지 떨어져 사는 큰딸이 시댁에 가 있기에 큰딸이 키우고 있는 루루(암고양이의 이름이 ‘루비’, 수고양이의 이름이 ‘루렁이’이기에 ‘루루’라 칭한다)를 돌봐주러 가는 길이다.

사는 아파트를 나와 뒤편의 신정중학교, 연송고등학교, 명선초등학교와 포스코자사고, 4개의 학교 정문 앞쪽으로 쭉 이어진 긴 길을 잰걸음으로 지난 후, 작은 건널목을 지나니 상가에 접어든다.

저 멀리 길 위에 넓게 퍼져있는 노란 것들이 보인다.

‘저것들이 뭐지?’하는 호기심에 걸음이 빨라진다.

가까이 가 보니,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은행(gingko nut)들이 보도와 차도에 너부러져 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으깨진 은행과 밟히지 않아 온전한 은행들이 섞여있다.

‘아 저것을 가져다가 물을 부어가며 북북 문지른 후에 껍질을 까서 프라이 판에 볶으면 쫄깃하고 쌉쌀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맛있는 간식거리가 될 텐데.’ 하는 생각에 주워갈까 잠시 생각하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거슬리고 주어 담을 용기 구하기도 마땅찮아서 줍지 않기로 하였다.

잠시 몇 걸음 가다 보니 전에 너부러져 있던 것보다 많은 양의 은행이 땅에 떨어져 있다.

딸의 아파트 앞의 벤치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고 아련히 떠오르는 초등(국민)학교 5학년 시절로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집 앞에 있는, 현재는 전주한옥마을에 인접한, 전동성당의 정문 왼편 안쪽으로 60미터쯤 들어가면 어른 2명 이서도 안기 힘든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 밑에는 겉이 매끄러운 하얀 큰 바윗돌이 있었다. (위에 누우면 나의 몸을 거의 채울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여름의 햇빛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때로는 주변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던 매우 쓸모가 있었던 바위였다.

나는 성당에서 뛰놀다가 지치면 이 바위에 누워 쉬곤 했었다.

눈을 감고 쉬다가, 눈을 뜨면 여름의 하늘은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져 있었으며, 가을에 보는 하늘은 온통 노랑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바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성당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덩그렁, 덩그렁, 덩그렁……”

약간의 수면 상태에 있었던 나는 종소리에 눈을 뜨니 샛노란 하늘에서 노란 잎들이 떨어지면서 나의 몸을 덮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노란 손길이 나의 온몸을 어루만지면서 “용주야, 착하게 살아야 한다!”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성당 앞의 신작로를 건너서 내가 다니던 초등(국민)학교가 있었다.

3층 건물의 앞에 성당에 있는 나무와 거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은행나무가 있었다.

건물 3층에 나의 교실이 있었기에 나는 등하교 시에는 이 은행나무를 지나쳐야 했다.

학교에서의 긴장감 때문인지 나는 은행나무가 거기에 있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였으며, 간혹 그 나무가 있음을 의식하였을 때에는 성당의 은행나무에서 느꼈던 친밀감과 애착을 느끼지 못하였다.

교정에 가을이 왔다.

하루는 등굣길에 은행나무 밑 운동장에 노랑 은행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며칠 동안은 은행을 줍는 재미에 푹 빠져 수업 시간에 지각하여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을 감내하였다.

성당의 은행나무가 주지 못하였던 기쁨을 학교의 은행나무가 주는 것이었다!

어느 가을 오후였다.

일찍 수업이 끝난 저학년(2, 3학년) 학생들이 은행을 주워갔기에 운동장에는 은행이 거의 없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가지에 은행들이 알알이 달려있다.

‘저것들을 어떻게 땅에 떨어지게 할까?’ 고민하다가 가방에 있던 신발주머니를 빼내어 그곳에 신고 있던 고무신을 넣어 나뭇가지에 달린 은행을 향해 던지니 무게가 부족하여 미치지 못한다.

작은 돌 몇 개를 신발주머니에 넣어서 던지니 무게가 딱 맞아 은행이 달린 나뭇가지에 도달한다.

신발주머니에 맞아서 떨어진 은행을 줍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제는 생각한 만큼의 양을 채웠으니, 그만 집에 갈까 생각하였다.

하지만 나뭇가지에 알알이 맺혀있는 은행을 보니 욕심이 생겨, 한 번만 더 던지기로 하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이라고 적당히 챙기고 갔으면 될 것을 ‘마지막이다’ 하고 던진 것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가지에 낀 신발주머니를 떨어뜨리려고 밑에서 돌을 여러 차례 던져도 맞지 않는다.

한 벌뿐인 신발이었기에 맨발로 등하교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신발주머니를 떨어뜨려야 한다.’라고 고민하다가 돌을 가방에 한가득 담아서 3층에 있는 교실로 갔다.

다행히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나서 사람들이 밑에 없다.

3층 교실에서 약간 밑에 있는 가지에 걸려있는 신발주머니를 향하여 힘껏 돌을 던지던 기억이 난다.

고무신을 성공적으로 떨어뜨렸는지 기억은 안 난다.

부모님에게 혼난 기억과 맨발로 등하교를 한 기억이 없으니 분명 성공적으로 떨어뜨렸다고 추정을 한다.


수나무(male tree)였던 성당의 은행나무 밑에서 하느님의 포근한 사랑을 느꼈으며, 암나무(female tree)였던 학교의 은행나무 밑에서 삶의 투쟁심을 키웠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현실에 잠시 왔던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전동 성당에 들어가니 성당의 부속 건물의 배치가 바뀌고 새로운 주변 시설들이 생겼지만 그 자리에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은행나무와 바위가 있다.

너무 반가워 그 은행나무를 힘껏 안아 본 후, 바위에 누워보려 하였으나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 그 연인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안고서 맞은편 학교로 간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유적지인 ‘경기전’을 일제 강점기 중에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 본 유적지의 일부를 잘라내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만들었기에, 내가 학교를 떠난 후 나라에서 이를 본래 모습의 경기전으로 복원하였다.

기억을 더듬어 나의 교실이 있던 건물과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로 갔지만 그곳에는 보지 못했던 숲으로 조성되어있다.

그 자리 주변의 돌 위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건다.

“왜 그렇게 처량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거야?”

“참새야, 나 어릴 적에 나와 재미있게 놀아주던 은행나무를 찾아왔는데 없어졌네. 혹시 너 저 건너편에 있는 성당의 큰 은행나무와 사랑을 나누던 이쪽 은행나무를 아니? 크기와 모습이 둘이 거의 같아.”

“ 아 그 나무! 이쪽에서 왼편으로 7~80 미터 내려가면 그 나무가 있어. 아마 그 나무가 맞을 거야. 거기에 내 집이 있는데….”

참새의 말이 마치기 전에 참새가 가리키는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나의 그리운 친구 은행나무가 어릴 적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있다.

내가 커진 탓에 은행나무가 그때처럼 크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은행나무가 분명하다.

나무 밑에는 노란 은행들이 흩어져있지만 주워가는 사람들이 없어 그대로 너부러져 있다.

오랜만에 보는 딸을 안아주듯 나무를 덥석 안아주면서 전에 나의 신발주머니가 걸렸던 가지를 보니 색이 바랜 거무튀튀한 흰색 운동화 한 짝이 걸려있다.

그 운동화 속에 둥지를 튼 참새의 새끼들이 엄마를 기다리면서 '짹짹'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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