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다음 시간 뭐야?”
여름 장마철이 시작되어 후덥지근한 날씨에 짜증 나는 말투로 나는 나의 짝에게 묻는다.
“수학이야.”
자주 묻는 말에도 귀찮다 하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하여주는 나의 짝 상국이가 참으로 착하다.
“아~~~ 씨, 미치겠네. 지긋지긋한 수학이야! 땡땡이도 못 치잖아.”
나의 푸념에 상국이는 씩 웃는다.
때는 48년 전인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73년 6월 말, 장소는 내 고등학교 교실이다.
출석부와 우리에게 가르칠 교과서와 교재를 옆구리에 끼고서 교실에 들어서는 수학 선생님은 키가 유난히 작다.
150cm를 넘을까 말까 하는 매우 작은 키에 머리숱이 많이 사라져 거의 대머리에 가깝고 통통한 모습을 한 선생님은 30대 후반이었다.
모교 선배이며, 당시에는 모교에서 들어가기 힘들었던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던 약간은 소심한 선생님이시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반장의 구령이 떨어지자, “안녕하십니까?” 우리들은 힘차게 인사한다.
키 작은 선생님이 가질 수 있는 갖은 별명들을 학생들에게 붙여진 선생님은 교단 앞에 서니 머리만 나온 듯이 보인다. 선생님은 출석부를 들고서 우리를 휙 둘러보신다. (붙여진 별명은 땅꼬마, 딸보, 땅보, 또ㅇ자루, 난쟁이또ㅇ자루 등등...이다)
“최용주 어디 있니?”
제기랄, 오늘도 나를 먼저 찾으신다.
“최용주 여기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한 친구가 웃으면서 검지 손가락을 편 손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래, 그럼 땡땡이친 놈들은 없구먼.”
싱긋 웃으면서 출석부를 교단 밑으로 집어넣으신다.
선생님에 따라 출석을 확인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들어오자마자, 출석부를 펼치고 1번부터 60번까지 학생들 이름을 다 호명 후 수업을 시작하시는 비효율적 소심한 선생님,
직접 호명하기 귀찮으면 반장이나 학생들에게 호명을 시키시는 게으른 선생님,
시간을 아끼려 아예 출석 체크를 하지 않으시는 방임형 선생님,
땡땡이칠만한 학생들만 체크 후 수업을 시작하시는 효율적 선생님,
수업 종료 시에 가끔 출석 체크하는 기습적인 선생님,
정해진 룰 없이 수업 시작 시 체크하시다가 갑자기 바꾸어서 종료 시 체크하시거나, 평상시에는 체크를 하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체크하시는 예측 불가형의 선생님.
땡땡이치기 가장 어려운 선생님은 문제아만 확인하는 선생님이고(수업 시작 시와 종료 시에 확인하신다), 다음은 예측 불 가형인 선생님의 수업이다.
시작할 때 호명하시면, 호명 후 뒷문으로 기어나가면 되고, 종료 시 호명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은 끝날 즈음에 뒷문으로 살짝 들어와 뒷자리 앉으면 된다.
나만 딱 찍어놓고 관리하셨던 수학 선생님은 1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당시에는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시절로 학교별로 일류, 이류, 삼류로 분류되었다.
나는 1차 입학 전형에 떨어진 관계로 삼류로 분류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당시는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고향인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였던 관계로 부모님은 나에게 신경을 써 주실 여건이 안 되었고, 나 또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맘에 안 차서 공부에 등한시하였다.
따라서 입학 후 나의 성적은 반에서 밑바닥에 맴돌았다.
또한 불량 학생들이 하였던 흡연과 음주를 1학년 때부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학년이 올라갈 때 성적이 아주 안 좋아 반에서 꼴찌에 가까운 학생들에게는 낙제를 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나도 거의 낙제 지경에 이르렀는데, 학년말 시험에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공부하여 반에서 등수에 들어 낙제는 면하였다.
이 마지막 시험에 나는 내 노력과 실력으로 좋은 성적을 낸 것이지만 담임 선생님은 내가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오해하셨다.
따라서 수학 선생님은 2학년 올라와서도 나를 계속 집중 관리하셨다.
나는 당시 인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반항심이 가득 찼던 시기로 이러한 선생님의 나에 관한 관심을 사적인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당시에 나는 수학 선생님을 어떻게 피할까 고민하였지만, 선생님은 반에 들어오시면 제일 먼저 ‘최용주 있나 없나 ‘ 를 확인하시니 정말 엄청 화가 났으며, 선생님의 행동에 대하여 악감정이 생겨,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학이 싫어졌다.
일단은 땡땡이를 못 치니 맨 뒷자리에서 수학책 밑에 만화책을 놓고 보거나, 영어 단어집을 놓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식으로 2학년 1학기를 지내니 수학의 진도가 엄청나게 떨어졌으며, 2학기 말에는 도저히 수학의 진도를 따라가지를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3학년이 되니 수학의 진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으며, 이때는 1학년 때 배웠던 과정도 거의 다 까먹어 수학 자체는 완전히 포기하여야만 하는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나는 국어는 평균적인 점수가 나왔으며, 영어는 전체에서 석차를 다툴 정도로 좋았지만, 수학은 완전 밑바닥이었다.
주관식인 수학시험은 백지를 내야 했고, 객관식은 확률적인 점수(25점 내외)이니 이 실력으로 좋은 대학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결론은 원하였던 대학은 못 들어가고 원하지 않았던 대학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학만 잘했으면 다른 친구들이 들어갔던 상류 대학에 들어가 떳떳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나는 열등감에 쌓인 대학 생활을 하였다.
군대 제대 후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여 남들이 들어가고 싶어 했던 대기업에 들어가 좋은 부서에서 30년 이상(퇴임 말에는 인사보복을 받아 힘들었지만)을 근무 후 정년으로 퇴직하였으며, 그동안 착한 아내와 결혼하였고, 예쁜 두 딸을 잘 키워서 결혼시켰으며, 지금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나는 그런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가꾸어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1, 2학년 시절에 성실하지 못하였던 일에 대해 아쉬움이 4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의 깊은 내면세계에 남아 있다.
원하는 대학 진학 시험을 앞두고 수학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 수학시험 시간에 시험지를 기다리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등 수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현재에도 꿈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제가 선배님을 추천하여준 한전에서 선배님 이력서 보고 아주 흡족하여 선배님을 면접하겠다고 합니다. 관련 법률을 좀 공부하시고 면접에 임하시면 되겠습니다. 공부하실 자료는 선배님의 이메일 주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법률 자문 자리를 추천하여준 후배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엄청 흥분하였다.
퇴직 후 이제껏 딱히 할 일 없이 지내기가 너무 무료하였는데 나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매우 기뻤다.
후배가 보내준 자료를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딱히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하였던 것에 대한 법률이었기에 이해하기 쉬웠으며 나를 면접할 사람들도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휴대폰이 “삐리릭” 울린다.
후배에게서 온 전화다.
“어 나야, 웬일이야? 면접 시간이 잡혔나?”
기쁘게 전화를 받으니, 저쪽에서 약간 뜸을 들인 후 , “선배님, 한전 인사 담당 임원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면접 전에 선배님께서 수학시험을 치셔야 한다는데요.”
“뭐, 무슨 소리야? 법률 자문 자리하고 수학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웃기는 소리 아냐?”
어이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후배는 “아니 그쪽에서는 ‘선배님께서 수행하실 법률자문이 수학과 관련된 업무이기에 선배님의 수학 실력을 알아야겠다.’고 합니다.”라 말한다.
“아니, 지금 이 나이에, 웬 수학이야.”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니, 후배는 “아주 고차원의 수학이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정도이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아 아니, 수학 중에서 필요한 범위가 있을 것 아냐. 그 범위 좀 파악해서 알려줘. 나도 너무 오래된 내용이라 한 번 살펴봐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그 범위를 받은 후 급히 작은딸에게 전화한다.
아빠에게 수학 과외를 시켜달라고 부탁하려는데 딸은 전화를 안 받는다.
아 정말 당황스럽고 황당하다.
이 나이에 수학시험을 치러야 한다니. 더군다나, 이런 짧은 시간에 수학을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
엄청 마음을 졸이면서 작은딸이 전화를 받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여보 왜 그래요?” 옆에서 아내가 뭐라 한다.
“어휴, 꿈이네!”
실제로 이틀 전에 꾸었던 꿈이다.
사춘기 시절 2년여 동안 방황하면서 나태하였던 일이 4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나의 깊은 내면에 남아있어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나에게 훈계한다.
“용주야, 선생님을 존중하면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수업 땡땡이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특히 수학은 단계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므로 중간에 나태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그 후의 진도를 전혀 나갈 수 없으니 긴장을 놓치지 말고 열심히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한자가 대학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소홀히 하면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지식인 될 수가 없으니 한자 수업도 절대 땡땡이치지 말고 열심히 해라. 그리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쓰기를 습관화하여라. 마지막으로 조언하는데, 틈틈이 시간을 내서 책을 많이 읽어라. 좋은 책은 가능한 두 번 이상 읽고서 좋은 부분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라.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작가의 길로 가기 위한 좋은 습관이니 잘 명심해라.”